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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산울림 35년, 지난밤 달콤한 꿈이죠”
입력 2011.08.11 (18:50) 연합뉴스
삼형제 밴드 '산울림'(김창완, 김창훈, 김창익)이 등장한 지 벌써 35년.



1977년 '아니 벌써'와 '문 좀 열어줘'가 담긴 1집은 '순진무구한' 아마추어들의 반란처럼 당시 주류 음악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다. 동요 같은 노랫말, 서정적인 사운드, 정직한 보컬은 팝에 열광하던 세대에게 색다른 미각을 느끼게 했다.



이후 이들이 쏟아낸 약 20장의 정규 음반은 몇 장을 빼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대중과 격 없이 소통할 수 있었던 건 정치적인 이념, 통속적인 상업주의에 기대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 화법을 구사한 덕택이다.



11일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김창완은 "산울림이 그럴 수 있었던 건 '순진무구의 죄' 밖에 없다"고 '껄껄' 웃었다.



"우리 형제는 프로 뮤지션이 되겠다는 의도 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했어요. 이런 순진무구야말로 산울림이 수많은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죠."



그의 설명처럼 산울림의 출발은 작위적이지 않았다.



1971년 대학에 입학한 김창완이 기타를 잡자 잇따라 대학생이 된 둘째 김창훈이 베이스, 셋째 김창익이 드럼을 구비해 창작곡 합주를 시작했다.



1977년 삼형제는 '무이(無異)'란 팀을 만들어 '문 좀 열어줘'로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예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김창완이 졸업생이란 이유로 본선 진출이 좌절됐고 동생들은 학업에 전념하기로 하면서 기념 음반을 만든 게 1집이다.



"사실 친척, 친구들에게 들려줄 삼형제의 기념 음반이었죠. 우리가 자비를 들여 레코드사를 선정해 판을 찍어달라고 한 겁니다. 요즘 가수들처럼 레코드사에 발탁된 게 아니었죠."



이후 산울림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가지마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빨간 풍선' '산할아버지' 등 록과 발라드, 동요 등 장르를 과감하게 넘나들었다.



그는 수작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백일홍'은 음악적으로 흡족한 시도였는데 묻혔다"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런데 지금 들어도 '어떻게 이 노래가 안 알려졌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크게 웃었다.



꽤 안정된 포물선을 그리던 산울림에게도 3여 년 전 위기가 찾아왔다. 2006년 30주년 공연을 함께했던 막내 김창익이 2008년 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그해 김창완은 "더 이상의 산울림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전까지는 한번도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막내를 잃고 나서는 늘 2008년 1월 이전의 어느 시간으로 가고 싶더군요. 세월이란 게 죽 이어지는 아날로그 영상이 아니라 만화경처럼 단절된 그림이잖아요. 산울림의 그림은 삼형제가 행복했던 한장, 막내가 떠나 텅 비어 버린 한장, 딱 두 장입니다."



"하루의 무게나 35년의 무게가 다를 바 없다"는 그는 숫자에 대한 특별한 감상이 없다며 35주년 잔치를 열지 않는다.



대신 오는 16일 김창완밴드의 세번째 음반을 발표한다. 음반에는 타이틀곡 '단 잇(Darn It)'과 '잠꼬대 소리' '내 마음의 강' '녹슨 자전거' '아리랑' 등 6곡이 담겼다.



"김창완밴드를 시작하며 산울림과 구분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이번 음반을 통해 산울림을 초월하고 싶은 강박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산울림 음악이 밝으면서도 듣다보면 슬퍼지듯이 주위에선 이번 음반에 산울림의 서정성이 느껴진대요. '백 투(Back to) 산울림'인 셈이죠. 산울림과 김창완밴드 음악의 접점을 찾은 겁니다."



그는 신곡을 라이브로 들려주겠다며 인터뷰 장소 인근에 위치한 연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강윤기(드럼), 이상훈(키보드), 최원식(베이스) 등의 밴드 멤버들은 '단 잇'부터 흥겹게 내달렸다.



"'제기랄'이란 의미의 '단 잇'은 복잡한 정치, 사회 현실을 도피하는 '키덜트(Kidult)'의 자화상을 담은 곡이에요. 상실감에 빠져 사회에 부적응하는 어린 어른의 모습을 꼬집었죠. '바람 부는 대로 날려가는 휴지 조각 같은데'라는 가사는 자조적이죠."



막내를 잃은 트라우마가 담긴 '내 마음의 강'은 몽환적이면서도 펑키하고, '녹슨 자전거'는 산울림의 서정성을 품었다. 그는 "자전거를 몇 차례 함께 탄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가 곧 한국을 떠나는데 이곳의 추억을 간직해달라는 뜻에서 최근 '녹슨 자전거'를 들려줬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곡은 단 한 번의 합주로 녹음한 '아리랑'. 드럼 비트가 강렬한 협주곡처럼 모던하게 편곡했다.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건 김창완밴드 출발 때부터 숙원 사업이었죠. 제가 음악에 은혜를 입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악의 뿌리를 '아리랑'에서 찾고 싶었어요."



그는 음반 재킷에 QR코드(다양한 정보를 담은 스마트폰용 격자무늬 바코드)를 직접 그려넣었다.



"QR 코드는 마치 미로 같지만 세상 어딘가로 소통하는 문이라는 게 아이러니컬하지 않나요. 우리 음악도 이러한 소통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그려넣었죠."



김창완이 이 음반 작업에 빠진 사이, 산울림을 존경하는 후배들은 35주년 헌정 음반 '리본(Reborn) 산울림'을 만들었다. 이달부터 크라잉넛, 이적, 알리 등의 후배들이 산울림의 명곡을 재해석해 한곡씩 발표하고 있다.



그는 "'인디 음악계의 제왕'인 크라잉넛이 35년 전 '아니 벌써'를 다시 부른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며 "산울림 음악의 펑크적인 요소를 잘 끄집어냈더라. 또 알리는 펑크 음악인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거야'를 호소력 있는 솔로 소화해 독창적이었다"고 칭찬했다.



산울림은 35년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김창완은 여전히 음악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책 '대답없는 질문'에서 처럼 아직 음악에 대한 질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게 산울림은 지난밤의 달콤한 꿈이고 김창완밴드는 밝아 오는 아침이니, 김창완밴드로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음악 실험은 계속 될 겁니다."


  • 김창완 “산울림 35년, 지난밤 달콤한 꿈이죠”
    • 입력 2011-08-11 18:50:09
    연합뉴스
삼형제 밴드 '산울림'(김창완, 김창훈, 김창익)이 등장한 지 벌써 35년.



1977년 '아니 벌써'와 '문 좀 열어줘'가 담긴 1집은 '순진무구한' 아마추어들의 반란처럼 당시 주류 음악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다. 동요 같은 노랫말, 서정적인 사운드, 정직한 보컬은 팝에 열광하던 세대에게 색다른 미각을 느끼게 했다.



이후 이들이 쏟아낸 약 20장의 정규 음반은 몇 장을 빼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대중과 격 없이 소통할 수 있었던 건 정치적인 이념, 통속적인 상업주의에 기대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 화법을 구사한 덕택이다.



11일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김창완은 "산울림이 그럴 수 있었던 건 '순진무구의 죄' 밖에 없다"고 '껄껄' 웃었다.



"우리 형제는 프로 뮤지션이 되겠다는 의도 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했어요. 이런 순진무구야말로 산울림이 수많은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죠."



그의 설명처럼 산울림의 출발은 작위적이지 않았다.



1971년 대학에 입학한 김창완이 기타를 잡자 잇따라 대학생이 된 둘째 김창훈이 베이스, 셋째 김창익이 드럼을 구비해 창작곡 합주를 시작했다.



1977년 삼형제는 '무이(無異)'란 팀을 만들어 '문 좀 열어줘'로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예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김창완이 졸업생이란 이유로 본선 진출이 좌절됐고 동생들은 학업에 전념하기로 하면서 기념 음반을 만든 게 1집이다.



"사실 친척, 친구들에게 들려줄 삼형제의 기념 음반이었죠. 우리가 자비를 들여 레코드사를 선정해 판을 찍어달라고 한 겁니다. 요즘 가수들처럼 레코드사에 발탁된 게 아니었죠."



이후 산울림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가지마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빨간 풍선' '산할아버지' 등 록과 발라드, 동요 등 장르를 과감하게 넘나들었다.



그는 수작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백일홍'은 음악적으로 흡족한 시도였는데 묻혔다"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런데 지금 들어도 '어떻게 이 노래가 안 알려졌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크게 웃었다.



꽤 안정된 포물선을 그리던 산울림에게도 3여 년 전 위기가 찾아왔다. 2006년 30주년 공연을 함께했던 막내 김창익이 2008년 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그해 김창완은 "더 이상의 산울림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전까지는 한번도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막내를 잃고 나서는 늘 2008년 1월 이전의 어느 시간으로 가고 싶더군요. 세월이란 게 죽 이어지는 아날로그 영상이 아니라 만화경처럼 단절된 그림이잖아요. 산울림의 그림은 삼형제가 행복했던 한장, 막내가 떠나 텅 비어 버린 한장, 딱 두 장입니다."



"하루의 무게나 35년의 무게가 다를 바 없다"는 그는 숫자에 대한 특별한 감상이 없다며 35주년 잔치를 열지 않는다.



대신 오는 16일 김창완밴드의 세번째 음반을 발표한다. 음반에는 타이틀곡 '단 잇(Darn It)'과 '잠꼬대 소리' '내 마음의 강' '녹슨 자전거' '아리랑' 등 6곡이 담겼다.



"김창완밴드를 시작하며 산울림과 구분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이번 음반을 통해 산울림을 초월하고 싶은 강박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산울림 음악이 밝으면서도 듣다보면 슬퍼지듯이 주위에선 이번 음반에 산울림의 서정성이 느껴진대요. '백 투(Back to) 산울림'인 셈이죠. 산울림과 김창완밴드 음악의 접점을 찾은 겁니다."



그는 신곡을 라이브로 들려주겠다며 인터뷰 장소 인근에 위치한 연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강윤기(드럼), 이상훈(키보드), 최원식(베이스) 등의 밴드 멤버들은 '단 잇'부터 흥겹게 내달렸다.



"'제기랄'이란 의미의 '단 잇'은 복잡한 정치, 사회 현실을 도피하는 '키덜트(Kidult)'의 자화상을 담은 곡이에요. 상실감에 빠져 사회에 부적응하는 어린 어른의 모습을 꼬집었죠. '바람 부는 대로 날려가는 휴지 조각 같은데'라는 가사는 자조적이죠."



막내를 잃은 트라우마가 담긴 '내 마음의 강'은 몽환적이면서도 펑키하고, '녹슨 자전거'는 산울림의 서정성을 품었다. 그는 "자전거를 몇 차례 함께 탄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가 곧 한국을 떠나는데 이곳의 추억을 간직해달라는 뜻에서 최근 '녹슨 자전거'를 들려줬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곡은 단 한 번의 합주로 녹음한 '아리랑'. 드럼 비트가 강렬한 협주곡처럼 모던하게 편곡했다.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건 김창완밴드 출발 때부터 숙원 사업이었죠. 제가 음악에 은혜를 입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악의 뿌리를 '아리랑'에서 찾고 싶었어요."



그는 음반 재킷에 QR코드(다양한 정보를 담은 스마트폰용 격자무늬 바코드)를 직접 그려넣었다.



"QR 코드는 마치 미로 같지만 세상 어딘가로 소통하는 문이라는 게 아이러니컬하지 않나요. 우리 음악도 이러한 소통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그려넣었죠."



김창완이 이 음반 작업에 빠진 사이, 산울림을 존경하는 후배들은 35주년 헌정 음반 '리본(Reborn) 산울림'을 만들었다. 이달부터 크라잉넛, 이적, 알리 등의 후배들이 산울림의 명곡을 재해석해 한곡씩 발표하고 있다.



그는 "'인디 음악계의 제왕'인 크라잉넛이 35년 전 '아니 벌써'를 다시 부른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며 "산울림 음악의 펑크적인 요소를 잘 끄집어냈더라. 또 알리는 펑크 음악인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거야'를 호소력 있는 솔로 소화해 독창적이었다"고 칭찬했다.



산울림은 35년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김창완은 여전히 음악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책 '대답없는 질문'에서 처럼 아직 음악에 대한 질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게 산울림은 지난밤의 달콤한 꿈이고 김창완밴드는 밝아 오는 아침이니, 김창완밴드로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음악 실험은 계속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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