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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인간새’ 부브카 IAAF 부회장은 누구
입력 2011.08.14 (12:18) 연합뉴스
장대높이뛰기 세계대회 6연패 금자탑 주인공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인간새'라는 애칭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세르게이 부브카(48)는 미국의 스프린터 칼 루이스와 함께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배출한 불세출의 스타다.



부브카는 1983년 헬싱키 1회 대회부터 1997년 아테네 6회 대회까지 장대높이뛰기 세계선수권대회 6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현재까지 한 종목에서 세계대회를 6회 연속으로 제패한 선수는 부브카뿐이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유연한 체조 기술을 겸비한 부브카는 이 종목에서 누구도 깨기 어려운 이정표를 세웠다.



1984년 5m81을 넘어 세계기록을 세운 이래 1994년 지금도 세계기록으로 남아 있는 6m14를 뛸 때까지 부브카는 실외육상대회에서 17차례, 실내육상대회에서 18차례 등 총 35번이나 세계기록을 썼다.



1985년 인류 최초로 6m의 벽을 넘었고 개인 통산 49차례나 6m 이상을 뛰어넘었다.



6m10 이상을 넘은 유일한 선수이면서 실내(6m15)와 실외(6m14) 세계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독보적인 존재다.



1991년까지 소련을 대표했던 부브카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5m9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 한국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 1993년부터 조국 우크라이나 국기를 가슴에 달고 2001년까지 현역에서 뛰었다.



장대높이뛰기를 완벽하게 지배했던 1인자였지만 서울올림픽 이후 올림픽에서는 그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첫 세 차례 기회에 모두 실패해 충격의 실격패를 당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고질인 아킬레스건 통증 탓에 한 번도 뛰지 못하고 대회를 포기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자신의 최고기록에 한참 모자란 5m70을 넘지 못해 결선에 오르지조차 못했다.



그러나 현역 때 워낙 화려한 성적을 남긴 덕분에 은퇴와 동시에 거물급 체육 행정가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젖혔다.



2001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회에 합류했고, 2007년부터는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1999년 위원으로 선임돼 2000년부터 집행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또 2002년부터는 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IOC 선수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2005년부터 6년째 우크라이나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타이틀도 쥐고 있다.
  • ‘인간새’ 부브카 IAAF 부회장은 누구
    • 입력 2011-08-14 12:18:43
    연합뉴스
장대높이뛰기 세계대회 6연패 금자탑 주인공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인간새'라는 애칭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세르게이 부브카(48)는 미국의 스프린터 칼 루이스와 함께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배출한 불세출의 스타다.



부브카는 1983년 헬싱키 1회 대회부터 1997년 아테네 6회 대회까지 장대높이뛰기 세계선수권대회 6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현재까지 한 종목에서 세계대회를 6회 연속으로 제패한 선수는 부브카뿐이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유연한 체조 기술을 겸비한 부브카는 이 종목에서 누구도 깨기 어려운 이정표를 세웠다.



1984년 5m81을 넘어 세계기록을 세운 이래 1994년 지금도 세계기록으로 남아 있는 6m14를 뛸 때까지 부브카는 실외육상대회에서 17차례, 실내육상대회에서 18차례 등 총 35번이나 세계기록을 썼다.



1985년 인류 최초로 6m의 벽을 넘었고 개인 통산 49차례나 6m 이상을 뛰어넘었다.



6m10 이상을 넘은 유일한 선수이면서 실내(6m15)와 실외(6m14) 세계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독보적인 존재다.



1991년까지 소련을 대표했던 부브카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5m9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 한국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 1993년부터 조국 우크라이나 국기를 가슴에 달고 2001년까지 현역에서 뛰었다.



장대높이뛰기를 완벽하게 지배했던 1인자였지만 서울올림픽 이후 올림픽에서는 그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첫 세 차례 기회에 모두 실패해 충격의 실격패를 당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고질인 아킬레스건 통증 탓에 한 번도 뛰지 못하고 대회를 포기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자신의 최고기록에 한참 모자란 5m70을 넘지 못해 결선에 오르지조차 못했다.



그러나 현역 때 워낙 화려한 성적을 남긴 덕분에 은퇴와 동시에 거물급 체육 행정가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젖혔다.



2001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회에 합류했고, 2007년부터는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1999년 위원으로 선임돼 2000년부터 집행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또 2002년부터는 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IOC 선수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2005년부터 6년째 우크라이나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타이틀도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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