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바예바, 대구서도 추락하다

입력 2011.08.30 (22:04) 수정 2011.08.3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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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려고 했지만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29)의 표정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가 열리는 30일 한낮의 뜨거운 무더위는 해가 지면서 완전히 물러가고 선선한 저녁이 찾아왔다.

이신바예바는 푸른색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표정을 감춘 채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 경기장에 들어섰다.

출전 선수가 소개되는 순간에도 모자 챙 아래로 표정을 감춘 그의 얼굴을 화면에 비추기 위해 방송 카메라는 몸을 낮춰야 했다.

다른 선수들이 기록을 위해 장대를 들고 트랙을 내달리는 동안 이신바예바는 수건으로 얼굴을 뒤집어 쓰고 트랙에 드러누웠다.

차라리 남의 경기를 보지 않겠다는 평소 습관이었다.

편안한 자세였지만 이신바예바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누워 있던 자세에서 갑자기 일어나 경기장 주변을 뛰기도 하고 앉은 자세와 누운 자세를 번갈아 가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선수들이 4m30이나 4m45로 첫 시기를 시작할 때 이신바예바는 첫 시기로 4m65를 너끈히 넘었지만 긴장된 모습을 풀지는 못했다.

이신바예바의 긴장에는 이유가 있었다.

2005년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가장 막강한 우승 후보로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전에 선 이신바예바는 단 한 번도 바를 넘지 못하고 'NM(기록 없음)'이라는 충격적인 치욕을 겪어야 했다.

당시 5m05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이신바예바는 4m75의 1차 시기에 실패하더니 높이를 4m80으로 올려 도전한 2·3차 시기에서도 연속으로 실패했다.

3차례 연속 실패로 세계선수권 결승에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등을 돌려야 했던 이신바예바는 10여 일 뒤 5m06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지만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실패한 기억을 씻지 못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2011년 8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결승 무대에서 이신바예바는 또다시 4m75에서 1차 시기에 실패했다.

그전에 이신바예바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안겼던 2009년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폴란드의 아나 로고프스카는 4m70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신바예바는 4m80으로 높여 2차 시기에 도전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다시 이신바예바는 얼굴을 가리고 트랙 바닥에 드러누웠다.

다시 3차 시기.

이신바예바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장대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마지막 기회에서 이신바예바는 충분한 스피드를 내지 못하고 장대를 꽂았다.

실패였다. 공중으로 솟은 이신바예바의 몸은 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매트로 추락했다.

관중은 아쉬움의 탄성을 질렀고, 이신바예바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4m65. 6위. 추락한 미녀새가 대구에 남긴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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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신바예바, 대구서도 추락하다
    • 입력 2011-08-30 22:04:31
    • 수정2011-08-30 22:33:41
    연합뉴스
감추려고 했지만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29)의 표정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가 열리는 30일 한낮의 뜨거운 무더위는 해가 지면서 완전히 물러가고 선선한 저녁이 찾아왔다. 이신바예바는 푸른색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표정을 감춘 채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 경기장에 들어섰다. 출전 선수가 소개되는 순간에도 모자 챙 아래로 표정을 감춘 그의 얼굴을 화면에 비추기 위해 방송 카메라는 몸을 낮춰야 했다. 다른 선수들이 기록을 위해 장대를 들고 트랙을 내달리는 동안 이신바예바는 수건으로 얼굴을 뒤집어 쓰고 트랙에 드러누웠다. 차라리 남의 경기를 보지 않겠다는 평소 습관이었다. 편안한 자세였지만 이신바예바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누워 있던 자세에서 갑자기 일어나 경기장 주변을 뛰기도 하고 앉은 자세와 누운 자세를 번갈아 가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선수들이 4m30이나 4m45로 첫 시기를 시작할 때 이신바예바는 첫 시기로 4m65를 너끈히 넘었지만 긴장된 모습을 풀지는 못했다. 이신바예바의 긴장에는 이유가 있었다. 2005년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가장 막강한 우승 후보로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전에 선 이신바예바는 단 한 번도 바를 넘지 못하고 'NM(기록 없음)'이라는 충격적인 치욕을 겪어야 했다. 당시 5m05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이신바예바는 4m75의 1차 시기에 실패하더니 높이를 4m80으로 올려 도전한 2·3차 시기에서도 연속으로 실패했다. 3차례 연속 실패로 세계선수권 결승에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등을 돌려야 했던 이신바예바는 10여 일 뒤 5m06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지만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실패한 기억을 씻지 못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2011년 8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결승 무대에서 이신바예바는 또다시 4m75에서 1차 시기에 실패했다. 그전에 이신바예바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안겼던 2009년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폴란드의 아나 로고프스카는 4m70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신바예바는 4m80으로 높여 2차 시기에 도전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다시 이신바예바는 얼굴을 가리고 트랙 바닥에 드러누웠다. 다시 3차 시기. 이신바예바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장대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마지막 기회에서 이신바예바는 충분한 스피드를 내지 못하고 장대를 꽂았다. 실패였다. 공중으로 솟은 이신바예바의 몸은 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매트로 추락했다. 관중은 아쉬움의 탄성을 질렀고, 이신바예바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4m65. 6위. 추락한 미녀새가 대구에 남긴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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