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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효조·최동원, 일구대상 공동 수상
입력 2011.09.30 (09:38) 수정 2011.09.30 (09:39) 연합뉴스
최근 일주일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난 한국 야구 불세출의 스타 장효조와 최동원이 프로야구인 모임인 일구회(회장 이재환)가 주는 일구대상을 받는다.

일구회는 고(故) 장효조 삼성 2군 감독과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을 2011 CJ 마구마구 일구대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통상 일구대상은 11월 중순에 수상자를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초창기 프로야구를 반석에 올리며 폭넓은 사랑을 받은 두 전설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그 위업을 기리고자 시기를 앞당겨 일구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일구회는 전했다.

지난 7일 작고한 장효조 2군 감독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서 27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83년 삼성에 입단했다.

고인은 '방망이를 거꾸로 쥐고도 타율 3할을 친다', '그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타자로 명성을 날렸다.

1983년(타율 0.369)과 1985년(0.373), 1986년(0.329), 1987년(0.387) 등 네번이나 타격왕에 올랐고 그가 남긴 통산 타율 0.331은 한국 프로야구 불멸의 기록으로 통한다.

지난 6월 한국야구위원회(KB0)가 선정한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에 뽑힐 만큼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스타 중의 스타였다.

지난 14일 야구팬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한 고 최동원 전 2군 감독도 한국야구를 빛낸 불세출의 에이스였다.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한 고인은 이듬해인 1984년 시즌 27승(13패6세이브)과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위업을 이루며 롯데를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야구 30년 동안 7전4선승제로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린 투수는 최동원이 유일하다.

이후 1985년 20승, 1986년 19승, 1987년 14승을 거두며 롯데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고인은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30년사 최고 투수를 논할 때 1~2위를 항상 다퉜다.

하지만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가 실패하고 나서 그해 11월 삼성 간판투수 김시진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롯데를 떠났다.

삼성에서는 젊은 시절 지나치게 혹사당한 탓에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가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성적을 남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일구회 관계자는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4년 연속 500만 관중을 돌파한 데 이어 처음으로 600만 관중 시대도 열었다"며 "이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기 기량을 발휘하며 야구팬에게 꿈과 희망을 준 선수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상식은 12월9일 낮 12시부터 강남 리베라 호텔에서 열리며 마구마구 최고 타자상과 마구마구 최고 투수상 등은 11월에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 故 장효조·최동원, 일구대상 공동 수상
    • 입력 2011-09-30 09:38:12
    • 수정2011-09-30 09:39:54
    연합뉴스
최근 일주일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난 한국 야구 불세출의 스타 장효조와 최동원이 프로야구인 모임인 일구회(회장 이재환)가 주는 일구대상을 받는다.

일구회는 고(故) 장효조 삼성 2군 감독과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을 2011 CJ 마구마구 일구대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통상 일구대상은 11월 중순에 수상자를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초창기 프로야구를 반석에 올리며 폭넓은 사랑을 받은 두 전설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그 위업을 기리고자 시기를 앞당겨 일구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일구회는 전했다.

지난 7일 작고한 장효조 2군 감독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서 27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83년 삼성에 입단했다.

고인은 '방망이를 거꾸로 쥐고도 타율 3할을 친다', '그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타자로 명성을 날렸다.

1983년(타율 0.369)과 1985년(0.373), 1986년(0.329), 1987년(0.387) 등 네번이나 타격왕에 올랐고 그가 남긴 통산 타율 0.331은 한국 프로야구 불멸의 기록으로 통한다.

지난 6월 한국야구위원회(KB0)가 선정한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에 뽑힐 만큼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스타 중의 스타였다.

지난 14일 야구팬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한 고 최동원 전 2군 감독도 한국야구를 빛낸 불세출의 에이스였다.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한 고인은 이듬해인 1984년 시즌 27승(13패6세이브)과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위업을 이루며 롯데를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야구 30년 동안 7전4선승제로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린 투수는 최동원이 유일하다.

이후 1985년 20승, 1986년 19승, 1987년 14승을 거두며 롯데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고인은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30년사 최고 투수를 논할 때 1~2위를 항상 다퉜다.

하지만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가 실패하고 나서 그해 11월 삼성 간판투수 김시진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롯데를 떠났다.

삼성에서는 젊은 시절 지나치게 혹사당한 탓에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가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성적을 남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일구회 관계자는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4년 연속 500만 관중을 돌파한 데 이어 처음으로 600만 관중 시대도 열었다"며 "이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기 기량을 발휘하며 야구팬에게 꿈과 희망을 준 선수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상식은 12월9일 낮 12시부터 강남 리베라 호텔에서 열리며 마구마구 최고 타자상과 마구마구 최고 투수상 등은 11월에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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