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영광·좌절 교차한 ‘日야구 8년’

입력 2011.10.19 (13:43) 수정 2011.10.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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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간의 생활을 마감한 이승엽(35·오릭스 버펄로스)은 방망이 한 자루를 쥐고 일본 열도를 정벌한 한국 야구의 간판 타자다.



한국프로야구를 거친 선수로는 최초로 선동열 KIA 타이거즈 신임 감독이 1996년 주니치 드래곤스에 진출한 이래 여러 선수가 일본 땅을 밟았으나 이승엽만큼 오래 뛴 선수는 없다.



이승엽은 전매특허인 홈런포를 앞세워 TV 위성 중계로 경기를 관전하던 한국팬들은 물론 일본팬까지 매료시키며 ’아시아의 홈런왕’으로 불렸다.



삼성에서 뛰던 2003년 56개의 홈런을 쏘아 올려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운 이승엽은 국내에서 모든 것을 이룬 뒤 2004년 2년간 5억 엔을 받는 조건에 지바 롯데 마린스 유니폼을 입고 일본에 진출했다.



이승엽은 "30홈런에 100타점을 올리겠다"며 호언장담했으나 ’현미경 야구’로 무장한 일본 투수들을 공략하지 못해 데뷔 첫해 고전했다.



타율 0.240에 홈런 14방을 터뜨리는 데 그쳤던 이승엽은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뒤 당시 김성근 지바 롯데 인트스럭터의 집중 지도를 받으며 훈련량을 늘렸다.



이어 2005년 타율 0.260에 30홈런과 82타점을 올리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특히 그해 처음으로 도입된 양대리그 교류전(인터리그)에서 홈런 12개를 터뜨리며 인터리그 홈런왕에 올랐고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홈런 3방을 터뜨리며 지바 롯데에 31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컵을 안기기도 했다.



이승엽은 이 성공을 발판삼아 2006년 일본 야구의 심장인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진출했다.



계약금 5천만엔, 연봉 1억6천만엔 등 총 2억 1천만 엔이라는 비교적 ’싼값’에 요미우리로 넘어간 이승엽은 그러나 타율 0.323에 홈런 41방, 108타점이라는 일본에서의 최고 성적을 올리며 요미우리의 간판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 통산 홈런 324개를 기록했던 이승엽은 2008년 8월2일 도쿄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경기에서 한일통산 400홈런-401홈런을 잇달아 쏘아 올리며 포효했다.



도쿄돔이 소문난 홈런 공장이었지만 이승엽의 뿜어낸 엄청난 비거리의 대포에 일본 관계자들도 혀를 내둘렀다.



요미우리 역대 70번째 4번 타자로서 이승엽은 미국에 진출한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의 파괴력을 메울 0순위 후보로 공인받았다.



요미우리는 2006년 시즌이 끝난 뒤 이승엽에게 4년간 30억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안겼고 이승엽은 일본 진출 3년 만에 ’재팬 드림’을 이뤘다.



이승엽은 그러나 왼쪽 무릎 수술 후유증과 왼손 엄지 인대 통증이 겹치면서 2007년 타율 0.274에 홈런 30개, 74타점에 그쳐 기대를 밑돌았다.



그는 2007년 10월 왼손 엄지에 메스를 대고 2008년 부활을 다짐했지만 쉽게 타격감각을 찾지 못했다.



심각한 타격 슬럼프를 겪고 1군과 2군을 오가는 부진 속에 2008년 타율 0.248에 홈런 8방, 27타점에 머문 이승엽은 그해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시리즈 7경기에서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3안타, 삼진 12개라는 극도로 저조한 성적을 남겨 요미우리 수뇌부의 신뢰를 잃었다.



든든한 응원자였던 하라 다쓰노리 감독마저 이승엽에 대한 믿음을 지우면서 이승엽은 2009년과 2010년에는 1군보다는 2군에 주로 머물렀고 출전 기회도 얻지 못했다.



요미우리에서 방출된 이승엽은 지난해 12월 오릭스와 2년간 계약하면서 선수 인생의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올해에도 9월에만 홈런 5방을 터뜨리며 ’반짝’했을 뿐 타율 2할 언저리를 오가며 좀처럼 방망이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일본에서의 한계를 절감한 이승엽은 두 명으로 늘어난 자식 교육 문제까지 겹치자 미련 없이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친정’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 등을 비롯한 삼성의 수뇌부는 물론 대구의 팬들도 이승엽의 복귀를 바라고 있어 "삼성에서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겠다"는 이승엽의 바람은 조만간 현실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승엽 일본프로야구 8년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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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엽, 영광·좌절 교차한 ‘日야구 8년’
    • 입력 2011-10-19 13:43:27
    • 수정2011-10-19 14:13:59
    연합뉴스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간의 생활을 마감한 이승엽(35·오릭스 버펄로스)은 방망이 한 자루를 쥐고 일본 열도를 정벌한 한국 야구의 간판 타자다.

한국프로야구를 거친 선수로는 최초로 선동열 KIA 타이거즈 신임 감독이 1996년 주니치 드래곤스에 진출한 이래 여러 선수가 일본 땅을 밟았으나 이승엽만큼 오래 뛴 선수는 없다.

이승엽은 전매특허인 홈런포를 앞세워 TV 위성 중계로 경기를 관전하던 한국팬들은 물론 일본팬까지 매료시키며 ’아시아의 홈런왕’으로 불렸다.

삼성에서 뛰던 2003년 56개의 홈런을 쏘아 올려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운 이승엽은 국내에서 모든 것을 이룬 뒤 2004년 2년간 5억 엔을 받는 조건에 지바 롯데 마린스 유니폼을 입고 일본에 진출했다.

이승엽은 "30홈런에 100타점을 올리겠다"며 호언장담했으나 ’현미경 야구’로 무장한 일본 투수들을 공략하지 못해 데뷔 첫해 고전했다.

타율 0.240에 홈런 14방을 터뜨리는 데 그쳤던 이승엽은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뒤 당시 김성근 지바 롯데 인트스럭터의 집중 지도를 받으며 훈련량을 늘렸다.

이어 2005년 타율 0.260에 30홈런과 82타점을 올리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특히 그해 처음으로 도입된 양대리그 교류전(인터리그)에서 홈런 12개를 터뜨리며 인터리그 홈런왕에 올랐고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홈런 3방을 터뜨리며 지바 롯데에 31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컵을 안기기도 했다.

이승엽은 이 성공을 발판삼아 2006년 일본 야구의 심장인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진출했다.

계약금 5천만엔, 연봉 1억6천만엔 등 총 2억 1천만 엔이라는 비교적 ’싼값’에 요미우리로 넘어간 이승엽은 그러나 타율 0.323에 홈런 41방, 108타점이라는 일본에서의 최고 성적을 올리며 요미우리의 간판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 통산 홈런 324개를 기록했던 이승엽은 2008년 8월2일 도쿄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경기에서 한일통산 400홈런-401홈런을 잇달아 쏘아 올리며 포효했다.

도쿄돔이 소문난 홈런 공장이었지만 이승엽의 뿜어낸 엄청난 비거리의 대포에 일본 관계자들도 혀를 내둘렀다.

요미우리 역대 70번째 4번 타자로서 이승엽은 미국에 진출한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의 파괴력을 메울 0순위 후보로 공인받았다.

요미우리는 2006년 시즌이 끝난 뒤 이승엽에게 4년간 30억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안겼고 이승엽은 일본 진출 3년 만에 ’재팬 드림’을 이뤘다.

이승엽은 그러나 왼쪽 무릎 수술 후유증과 왼손 엄지 인대 통증이 겹치면서 2007년 타율 0.274에 홈런 30개, 74타점에 그쳐 기대를 밑돌았다.

그는 2007년 10월 왼손 엄지에 메스를 대고 2008년 부활을 다짐했지만 쉽게 타격감각을 찾지 못했다.

심각한 타격 슬럼프를 겪고 1군과 2군을 오가는 부진 속에 2008년 타율 0.248에 홈런 8방, 27타점에 머문 이승엽은 그해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시리즈 7경기에서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3안타, 삼진 12개라는 극도로 저조한 성적을 남겨 요미우리 수뇌부의 신뢰를 잃었다.

든든한 응원자였던 하라 다쓰노리 감독마저 이승엽에 대한 믿음을 지우면서 이승엽은 2009년과 2010년에는 1군보다는 2군에 주로 머물렀고 출전 기회도 얻지 못했다.

요미우리에서 방출된 이승엽은 지난해 12월 오릭스와 2년간 계약하면서 선수 인생의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올해에도 9월에만 홈런 5방을 터뜨리며 ’반짝’했을 뿐 타율 2할 언저리를 오가며 좀처럼 방망이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일본에서의 한계를 절감한 이승엽은 두 명으로 늘어난 자식 교육 문제까지 겹치자 미련 없이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친정’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 등을 비롯한 삼성의 수뇌부는 물론 대구의 팬들도 이승엽의 복귀를 바라고 있어 "삼성에서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겠다"는 이승엽의 바람은 조만간 현실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승엽 일본프로야구 8년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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