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또 하나의 전쟁, 황성YMCA 야구단

입력 2011.10.21 (08:31) 수정 2011.10.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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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2011. 10. 20(목) 22:00~22:50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최필곤 PD

▣글, 구성 : 박정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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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든 야구장으로 오라!”

                                                 -심훈의 시, <야구> 中에서 

 



148g 작은 공이 식민지 조선에 신바람을 일으킨다!



국운이 휘청거리던 1904년부터 한반도 전역을 강타한 야구 열풍...



나라를 잃고 시름에 빠진 조선의 청년들, 그들은 왜 야구장으로 향했을까?







■ “무명고이적삼에 짚세기 들메해서 신었으니!”





1904년, 조선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 그는 YMCA 회원들을 대상으로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마땅한 그라운드 하나 없던 메마른 땅에서 우리나라의 첫 야구팀, ’황성YMCA 야구단‘이 탄생하게 된다.

경기 규칙은 물론 유니폼과 글러브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 무명 고이적삼이 유니폼을, 짚신이 스파이크를 대신한다. 실수 연발, 초창기 야구단의 첫 모습은 그야말로 엉성했다.



■ "어대 한번 <맷취>를 하야보앗스면"





장비도, 시설도 한참 부족했지만 야구 열풍은 빠르게 한반도를 뒤덮는다. 제2, 제3의 야구팀이 잇따라 결성되면서 학교마다 야구단 창단붐이 일었다. 신교육을 받은 남학생 치고 야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매달 6~9회의 야구 게임이 치러졌다. 심지어 12월에도 3번의 게임이 치러졌다”

                   -1911년, 질레트의 「연간 보고서」中에서





■ 최초공개, 1912년 일본원정 전말!







"‘일본을 정복한다’는 결심으로 그 젊은이들의 피가 끓었다”

                                                                 -일본 「국민신문」中에서





황성YMCA 야구단은 한국 야구의 포문을 연 팀다웠다. 경기를 치를수록 노련미가 더해지면서 천하무적으로 거듭난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팀은 물론이고, 심지어 야구 본고장 출신의 미국 선교사 팀까지 연파하면서 국내 야구를 평정한다. 그리고 가슴 속 깊이 품게 된 원대한 도전, ‘일본원정’을 감행한다.

1912년 봄, 황성YMCA 야구단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향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일본 언론들은 그들의 투지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와 같았다고 묘사한다.

그동안 점수 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황성YMCA 야구단의 일본원정 전과정과 경기 기록들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 시대의 열망, 시대의 한계







1913년, 황성YMCA 야구단은 더 이상 그라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일제의 탄압이 야구장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야구단의 활동도 철저히 차단되면서 팀은 해체 수순을 밟는다. 이후 야구단이 이룩한 영광의 기록도, 선수들의 면면도 모두 자취를 감춘다.

야구단 해체 후, 그들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 한국 야구계와 체육학계가 수차례에 걸쳐 황성YMCA 야구단원들의 행적과 그 후손들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역사스페셜> 제작진은 끈질긴 추적 끝에, 국내 최초로 황성YMCA 야구단의 명포수 허성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의 손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황성YMCA 야구단이 해체된 뒤 100년 만에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사상 처음으로 <역사스페셜>을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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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스페셜] 또 하나의 전쟁, 황성YMCA 야구단
    • 입력 2011-10-21 08:31:47
    • 수정2011-10-21 08:32:56
    기획리포트
▣방송 : 2011. 10. 20(목) 22:00~22:50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최필곤 PD
▣글, 구성 : 박정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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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든 야구장으로 오라!”
                                                 -심훈의 시, <야구> 中에서 
 

148g 작은 공이 식민지 조선에 신바람을 일으킨다!

국운이 휘청거리던 1904년부터 한반도 전역을 강타한 야구 열풍...

나라를 잃고 시름에 빠진 조선의 청년들, 그들은 왜 야구장으로 향했을까?



■ “무명고이적삼에 짚세기 들메해서 신었으니!”


1904년, 조선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 그는 YMCA 회원들을 대상으로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마땅한 그라운드 하나 없던 메마른 땅에서 우리나라의 첫 야구팀, ’황성YMCA 야구단‘이 탄생하게 된다.
경기 규칙은 물론 유니폼과 글러브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 무명 고이적삼이 유니폼을, 짚신이 스파이크를 대신한다. 실수 연발, 초창기 야구단의 첫 모습은 그야말로 엉성했다.

■ "어대 한번 <맷취>를 하야보앗스면"


장비도, 시설도 한참 부족했지만 야구 열풍은 빠르게 한반도를 뒤덮는다. 제2, 제3의 야구팀이 잇따라 결성되면서 학교마다 야구단 창단붐이 일었다. 신교육을 받은 남학생 치고 야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매달 6~9회의 야구 게임이 치러졌다. 심지어 12월에도 3번의 게임이 치러졌다”
                   -1911년, 질레트의 「연간 보고서」中에서


■ 최초공개, 1912년 일본원정 전말!



"‘일본을 정복한다’는 결심으로 그 젊은이들의 피가 끓었다”
                                                                 -일본 「국민신문」中에서


황성YMCA 야구단은 한국 야구의 포문을 연 팀다웠다. 경기를 치를수록 노련미가 더해지면서 천하무적으로 거듭난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팀은 물론이고, 심지어 야구 본고장 출신의 미국 선교사 팀까지 연파하면서 국내 야구를 평정한다. 그리고 가슴 속 깊이 품게 된 원대한 도전, ‘일본원정’을 감행한다.
1912년 봄, 황성YMCA 야구단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향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일본 언론들은 그들의 투지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와 같았다고 묘사한다.
그동안 점수 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황성YMCA 야구단의 일본원정 전과정과 경기 기록들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 시대의 열망, 시대의 한계



1913년, 황성YMCA 야구단은 더 이상 그라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일제의 탄압이 야구장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야구단의 활동도 철저히 차단되면서 팀은 해체 수순을 밟는다. 이후 야구단이 이룩한 영광의 기록도, 선수들의 면면도 모두 자취를 감춘다.
야구단 해체 후, 그들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 한국 야구계와 체육학계가 수차례에 걸쳐 황성YMCA 야구단원들의 행적과 그 후손들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역사스페셜> 제작진은 끈질긴 추적 끝에, 국내 최초로 황성YMCA 야구단의 명포수 허성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의 손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황성YMCA 야구단이 해체된 뒤 100년 만에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사상 처음으로 <역사스페셜>을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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