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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중동 민주화 시위 물결
카다피 이후, 리비아는…
입력 2011.10.24 (07:41) 취재파일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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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를 42년 동안 철권통치했던 카다피가 최후를 맞았습니다.

숨진 곳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고향 시르테.

리바아 과도정부는 카다피 사망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녹취>마흐무드 지브릴(과도정부 총리) : "리비아인으로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살됐습니다."

리비아 국민들은 독재가 끝났다며 축제를 벌였고 국제사회도 일제히 환영했습니다.

<앵커 멘트>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그의 죽음으로 리비아 사태가 일단은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분위깁니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리비아 앞에 놓여 있습니다.

리비아 사태의 전개 과정과 카다피 사후 리비아에 남겨진 과제는 무엇이고 앞날은 어떻게 될 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요구 시위 물결 속에 리비아에서도 지난 2월부터 반카다피 시위가 본격화됐습니다.

진원지는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정부 보안군이 발포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이 때만해도 카다피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위 관료와 군인들까지 이탈하고 수도 트리폴리의 정부청사가 점거되는 등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카다피의 해외 망명설까지 제기되자 국영 TV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녹취>카다피(2/22) : "베네수엘라가 아닌 트리폴리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길 잃은 개가 운영하는 언론을 믿지 마세요."

그래도 시위가 계속 확산되자 이례적으로 하루만에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은 리비아 땅에서 죽겠다며 퇴진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카다피(2/23) : "위대한 조상에 부끄러움을 줄 수 없습니다. 조상의 묘지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의 옆에서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겠습니다."

이후 내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국제사회의 압력도 시작되자 카다피는 이틀만에 다시 대국민 방송 연설에 나섰습니다.

반정부 시위대의 배후가 알-카에다와 빈 라덴이라며 궤변을 이어갔습니다.

<녹취>카다피(2/25) : "알-카에다가 젊은이들에게 마약을 줘서, 애들은 약에 취해 살인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국제사회의 경고조차 무시하자 유엔이 나섰습니다.

카다피를 국제 형사 재판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안보리 사상 두 번째 조칩니다.

이와 더불어 카다피 일가의 자산동결과 여행 금지, 리비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녹취>반기문(2/27) : "안보리 결의문은 기본적 인권침해는 용납될 수 없고, 살인 범죄자들은 대가를 치를 거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이런 가운데 시민군이 장악한 리비아 동부지역에 있던 카다피궁이 공개됐습니다.

화려한 정원과 장식물 잔해를 통해 카다피 일가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녹취>알프레도 마치(이탈리아 기자) : "밖에는 심지어 작은 동물원까지 있습니다."

지하에는 핵무기 공격에도 몇 달 동안 버틸 수 있도록 물과 산소 공급 시스템까지 갖췄습니다.

<녹취>재키 롤랜드(알-자지라 기자) : "여기에는 공기 정화 시스템과 비상 발전기, 화재 경보기까지 설치됐다."

국제 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카다피군의 유혈진압이 이어지면서 희생자가 속출했습니다.

또 카다피군이 시민군의 본거지인 벵가지로 진격해 들어가자 미국이 카다피에게 최후 통첩을 전했습니다.

<녹취>오바마(3/19) : "카다피가 결의안에 따르지 않으면 국제 사회는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결의안은 군사 행동을 통해 집행될 것입니다."

곧바로 공습이 진행됐습니다.

작전명 '오디세이의 새벽'.

이 공습으로 시민군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고 이후 지난 8월에는 수도 트리폴리까지 시민군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녹취>트리폴리 시민(8/25) : "42년의 철권통치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카다피는 이 순간에도 결사항전을 외쳤습니다.

<녹취>카다피(8/22) : "제국주의 공모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타주라 등으로 진격합시다."

하지만 카다피가 종적을 감추면서 그의 행방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망명했다, 아니다 리비아 어딘가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유력한 후보지로 그의 고향 시르테가 지목됐습니다.

시민군 과도정부는 카다피를 생포해야 진정한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며 카다피 체포에 18억원의 현상금까지 걸었습니다.

<녹취>압델 잘릴(NTC위원장/8/23) : "카다피를 체포해 법정에 세우기를 희망합니다."

카다피는 이를 조롱하 듯 새로운 음성 메시지를 공개하며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카다피(8/26) : "바보같은 쥐떼에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력과 단호함으로 그들을 무찌를 것입니다."

고향인 시르테에 숨어있던 카다피는 위성전화를 섰다가 위치가 발각됐고 지난 20일 탈출을 시도하다 하수구에서 시민군에게 붙잡혔습니다.

42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카다피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당일 시리아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카다피 다음은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라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더불어 33년째 집권 중인 예멘의 살레 대통령에 대한 사임 압력도 더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녹취>트리폴리 시민(10/21) : "독재자가 어떻게 되는지 시리아의 아사드와 예멘의 살레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리비아에서 교훈을 배우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카다피의 죽음으로 리비아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사망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합니다.

생포된 뒤 교전 과정에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는 설과 시민군에게 처형됐다는 설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엔과 러시아는 카다피가 죽은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그가 죽음에 이른 과정이 새로운 불씨를 낳고 있습니다.

과도정부가 풀어야 하는 첫 번째 숙젭니다.

<녹취>마무드 지브릴(과도위원회 총리/10/22) : "총알이 시민군 것인지, 카다피군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카다피는 병원에 도착하기 조금전까지 살아있었습니다."

과도정부는 앞으로 30일 안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8달 안에 선거를 통해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경우 140여 개 부족으로 이뤄진 리비아의 특성상 부족간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인터뷰>인남식(교수) : "소위 반군들 사이에에서도 이제 나름대로 논공행상의 문제들이 나올 거고 그거와 동시에 소위 이슬람 세력들도 혼란기를 틈타서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의 정치적 지분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모든 과정에서 아마 당분간은 이제 헌법을 구성하고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운 과정으로 갈 건데요."

그래서 부족간 단합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가 가장 큰 과젭니다.

현재로서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과도정부 위원장이 이런 중책을 맡을 차기 지도자로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녹취>압델 잘릴(NTC 위원장) : "NTC(과도국가위원회)는 리비아인들의 합법적인 대표기구입니다. 어떤 정치협상도 NTC와 해야 합니다."

서방국들의 도움으로 카다피를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는 리비아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참여했던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 관련국들이 이권사업을 놓고 벌이는 논공행상이 본격화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프랑스는 리비아 과도정부를 지지하는 대가로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약속받았고, 영국도 '리비아 석유 조직'이라는 팀을 구성해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한 비밀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캐머런(영국 총리/10/21) : "리비아 국민들이 자유를 얻는데 영국이 기여한 역활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정유와 전기, 주택, 도로 등 리비아 재건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1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비용의 상당부분은 카다피 일가가 빼돌린 재산으로 충당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우리 업체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해당 업체들은 현장복귀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인터뷰>김태수(대우건설 차장) : "사전 점검반이 가가지고 봐야 되니까 그래서 저희들이 다음달쯤 돼서 현장 점검반 십여명 정도 나가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투쟁으로 42년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리비아.

그 앞에 놓은 새로운 도전.

리비아가 꿈꾸는 새로운 미래는 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카다피 이후, 리비아는…
    • 입력 2011-10-24 07:41:08
    취재파일K
리비아를 42년 동안 철권통치했던 카다피가 최후를 맞았습니다.

숨진 곳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고향 시르테.

리바아 과도정부는 카다피 사망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녹취>마흐무드 지브릴(과도정부 총리) : "리비아인으로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살됐습니다."

리비아 국민들은 독재가 끝났다며 축제를 벌였고 국제사회도 일제히 환영했습니다.

<앵커 멘트>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그의 죽음으로 리비아 사태가 일단은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분위깁니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리비아 앞에 놓여 있습니다.

리비아 사태의 전개 과정과 카다피 사후 리비아에 남겨진 과제는 무엇이고 앞날은 어떻게 될 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요구 시위 물결 속에 리비아에서도 지난 2월부터 반카다피 시위가 본격화됐습니다.

진원지는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정부 보안군이 발포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이 때만해도 카다피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위 관료와 군인들까지 이탈하고 수도 트리폴리의 정부청사가 점거되는 등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카다피의 해외 망명설까지 제기되자 국영 TV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녹취>카다피(2/22) : "베네수엘라가 아닌 트리폴리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길 잃은 개가 운영하는 언론을 믿지 마세요."

그래도 시위가 계속 확산되자 이례적으로 하루만에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은 리비아 땅에서 죽겠다며 퇴진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카다피(2/23) : "위대한 조상에 부끄러움을 줄 수 없습니다. 조상의 묘지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의 옆에서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겠습니다."

이후 내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국제사회의 압력도 시작되자 카다피는 이틀만에 다시 대국민 방송 연설에 나섰습니다.

반정부 시위대의 배후가 알-카에다와 빈 라덴이라며 궤변을 이어갔습니다.

<녹취>카다피(2/25) : "알-카에다가 젊은이들에게 마약을 줘서, 애들은 약에 취해 살인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국제사회의 경고조차 무시하자 유엔이 나섰습니다.

카다피를 국제 형사 재판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안보리 사상 두 번째 조칩니다.

이와 더불어 카다피 일가의 자산동결과 여행 금지, 리비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녹취>반기문(2/27) : "안보리 결의문은 기본적 인권침해는 용납될 수 없고, 살인 범죄자들은 대가를 치를 거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이런 가운데 시민군이 장악한 리비아 동부지역에 있던 카다피궁이 공개됐습니다.

화려한 정원과 장식물 잔해를 통해 카다피 일가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녹취>알프레도 마치(이탈리아 기자) : "밖에는 심지어 작은 동물원까지 있습니다."

지하에는 핵무기 공격에도 몇 달 동안 버틸 수 있도록 물과 산소 공급 시스템까지 갖췄습니다.

<녹취>재키 롤랜드(알-자지라 기자) : "여기에는 공기 정화 시스템과 비상 발전기, 화재 경보기까지 설치됐다."

국제 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카다피군의 유혈진압이 이어지면서 희생자가 속출했습니다.

또 카다피군이 시민군의 본거지인 벵가지로 진격해 들어가자 미국이 카다피에게 최후 통첩을 전했습니다.

<녹취>오바마(3/19) : "카다피가 결의안에 따르지 않으면 국제 사회는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결의안은 군사 행동을 통해 집행될 것입니다."

곧바로 공습이 진행됐습니다.

작전명 '오디세이의 새벽'.

이 공습으로 시민군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고 이후 지난 8월에는 수도 트리폴리까지 시민군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녹취>트리폴리 시민(8/25) : "42년의 철권통치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카다피는 이 순간에도 결사항전을 외쳤습니다.

<녹취>카다피(8/22) : "제국주의 공모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타주라 등으로 진격합시다."

하지만 카다피가 종적을 감추면서 그의 행방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망명했다, 아니다 리비아 어딘가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유력한 후보지로 그의 고향 시르테가 지목됐습니다.

시민군 과도정부는 카다피를 생포해야 진정한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며 카다피 체포에 18억원의 현상금까지 걸었습니다.

<녹취>압델 잘릴(NTC위원장/8/23) : "카다피를 체포해 법정에 세우기를 희망합니다."

카다피는 이를 조롱하 듯 새로운 음성 메시지를 공개하며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카다피(8/26) : "바보같은 쥐떼에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력과 단호함으로 그들을 무찌를 것입니다."

고향인 시르테에 숨어있던 카다피는 위성전화를 섰다가 위치가 발각됐고 지난 20일 탈출을 시도하다 하수구에서 시민군에게 붙잡혔습니다.

42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카다피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당일 시리아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카다피 다음은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라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더불어 33년째 집권 중인 예멘의 살레 대통령에 대한 사임 압력도 더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녹취>트리폴리 시민(10/21) : "독재자가 어떻게 되는지 시리아의 아사드와 예멘의 살레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리비아에서 교훈을 배우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카다피의 죽음으로 리비아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사망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합니다.

생포된 뒤 교전 과정에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는 설과 시민군에게 처형됐다는 설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엔과 러시아는 카다피가 죽은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그가 죽음에 이른 과정이 새로운 불씨를 낳고 있습니다.

과도정부가 풀어야 하는 첫 번째 숙젭니다.

<녹취>마무드 지브릴(과도위원회 총리/10/22) : "총알이 시민군 것인지, 카다피군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카다피는 병원에 도착하기 조금전까지 살아있었습니다."

과도정부는 앞으로 30일 안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8달 안에 선거를 통해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경우 140여 개 부족으로 이뤄진 리비아의 특성상 부족간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인터뷰>인남식(교수) : "소위 반군들 사이에에서도 이제 나름대로 논공행상의 문제들이 나올 거고 그거와 동시에 소위 이슬람 세력들도 혼란기를 틈타서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의 정치적 지분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모든 과정에서 아마 당분간은 이제 헌법을 구성하고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운 과정으로 갈 건데요."

그래서 부족간 단합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가 가장 큰 과젭니다.

현재로서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과도정부 위원장이 이런 중책을 맡을 차기 지도자로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녹취>압델 잘릴(NTC 위원장) : "NTC(과도국가위원회)는 리비아인들의 합법적인 대표기구입니다. 어떤 정치협상도 NTC와 해야 합니다."

서방국들의 도움으로 카다피를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는 리비아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참여했던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 관련국들이 이권사업을 놓고 벌이는 논공행상이 본격화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프랑스는 리비아 과도정부를 지지하는 대가로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약속받았고, 영국도 '리비아 석유 조직'이라는 팀을 구성해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한 비밀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캐머런(영국 총리/10/21) : "리비아 국민들이 자유를 얻는데 영국이 기여한 역활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정유와 전기, 주택, 도로 등 리비아 재건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1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비용의 상당부분은 카다피 일가가 빼돌린 재산으로 충당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우리 업체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해당 업체들은 현장복귀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인터뷰>김태수(대우건설 차장) : "사전 점검반이 가가지고 봐야 되니까 그래서 저희들이 다음달쯤 돼서 현장 점검반 십여명 정도 나가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투쟁으로 42년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리비아.

그 앞에 놓은 새로운 도전.

리비아가 꿈꾸는 새로운 미래는 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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