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불굴의 ‘山 사나이들’의 슬픈 배웅길

입력 2011.11.02 (09:07) 수정 2011.11.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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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박영석 원정대를 끝내 찾지 못하고 수색팀이 철수했단 소식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셨죠?



천생 산사나이로 불렸던 박영석 대장,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김기흥 기자,박영석원정대의 마지막 가는길을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죠?







< 리포트 >



5명이 떠났지만 3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돌아온 것은 이들의 영장 사진과 유품뿐이었는데요.



산악계의 큰별들을 잃은 분향소 현장은 그야말로 슬픔자체였습니다.



안나푸르나 남벽 코리안 신루트를 개척하는 도중 실종된 박영석 대장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그리고 3극점 모두를 등반해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말 그대로 국내 산악계의 큰 획을 그으신 분이셨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는데요.



어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이곳에서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원정대의 합동 분향소가 마련되었습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황망함에, 유가족은 오열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살아 돌아올 것만 같은 영정 사진 속 이들의 모습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 인터뷰 > 유가족 : "어떻게 기석이가 죽어요, 안 죽지, 어떻게 죽어 그렇게 날 버리고, 그렇게 착한 놈이 어떻게 죽어 부모한테 효도하고 그러던 애가 어떻게 죽어, 죽으면 안 되지."



평소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지인들도 분향소를 찾아 슬픔을 함께 했는데요.



박영석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하며 막역한 사이로 지내왔던 엄홍길 대장 역시 애석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인터뷰 > 엄홍길 (산악인) : "꿈만 같습니다. 꿈만 같고요. 우리 영석이, 동민이, 기석이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요.

저기로 걸어 들어올 것 같아요. "



2002년 박영석 대장과 히말라야에 함께 오른 뒤부터 꾸준히 친분을 쌓아왔던 허영만 화백도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허화백은 박영석 대장의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결국 박영석 대장을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 인터뷰 > 엄홍길 (산악인) : "그렇게 말렸는데도 가더니 여기 있으면 불편하고, 거기 가면 편한 것 아니까. 자기 자리를 찾아간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9월, 한국인 최초로 안나 푸르나의 새로운 등정로를 개척하겠다고 나섰던 박영석 원정대. 이들이 택한 길은 안나 푸르나 중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남벽이었습니다.



< 인터뷰 > 박영석 (원정대장/ 10월 18일 무전 녹취) : "지금 현재 이 날씨로 오늘 비박도 불가능하고 일단 오늘 오후 부로 철수한다 이상."



시시때때로 변하는 기후와 낙석, 눈사태가 이들을 가로막았고, 결국 지난 달 18일 하산하겠다는 위성통신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급하게 수색팀을 꾸려 열흘간 총력을 다해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원정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영석 대장과 함께 실종된 신동민, 강기석 대원은 한국의 차세대 산악인으로 주목받던 인재들이어서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박영석 대장의 모교인 동국대에도 분향소가 마련돼, 고인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치렀습니다.



박대장이 처음으로 산악인의 꿈을 키웠던 산악 동아리도 오늘만큼은 쓸쓸했습니다.



등정 자체보다 등정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진정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



원정을 다녀올때마다 산악 장비들을 기부해 후배 산악인 양성에도 힘썼던 그였기에 더욱 믿기 힘든 죽음이었습니다.



< 인터뷰 > 양명수(박영석 대장 동국산악회 선배) : "통계적으로 봐서는 지금 10여 일 지나서 가망이 없지 않겠느냐

믿기지가 않는 거죠."



도전정신과 더불어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의 상징과도 같았던 선배의 비보에 후배들도 슬픈 심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인터뷰 > 서보현(서울시 마포동) :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도전하시고 가능으로 만드셨으니까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993년 아시아 최초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2005년 인류 최초의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기네스 북에 오른 산악인 박영석.



세계 최고의 산악인 대열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과 열정, 그리고 꿈은 그와 함께 산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 인터뷰 > 송강호(배우) : "이 분의 도전정신이 많은 분께 영향을 주고, 길이 잊히지 않는 그런 분으로 남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허영만(화백) : "영석아, 네 생각만 하면 추위에 떨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다.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곳이니까, 여기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산악인으로서는 마지막 등반을 눈앞에 두고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 박영석 강기석 신동민

하지만 원정대의 도전정신과 용기는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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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1-02 09:07:31
    • 수정2011-11-02 1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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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실종된 박영석 원정대를 끝내 찾지 못하고 수색팀이 철수했단 소식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셨죠?

천생 산사나이로 불렸던 박영석 대장,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김기흥 기자,박영석원정대의 마지막 가는길을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죠?



< 리포트 >

5명이 떠났지만 3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돌아온 것은 이들의 영장 사진과 유품뿐이었는데요.

산악계의 큰별들을 잃은 분향소 현장은 그야말로 슬픔자체였습니다.

안나푸르나 남벽 코리안 신루트를 개척하는 도중 실종된 박영석 대장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그리고 3극점 모두를 등반해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말 그대로 국내 산악계의 큰 획을 그으신 분이셨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는데요.

어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이곳에서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원정대의 합동 분향소가 마련되었습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황망함에, 유가족은 오열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살아 돌아올 것만 같은 영정 사진 속 이들의 모습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 인터뷰 > 유가족 : "어떻게 기석이가 죽어요, 안 죽지, 어떻게 죽어 그렇게 날 버리고, 그렇게 착한 놈이 어떻게 죽어 부모한테 효도하고 그러던 애가 어떻게 죽어, 죽으면 안 되지."

평소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지인들도 분향소를 찾아 슬픔을 함께 했는데요.

박영석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하며 막역한 사이로 지내왔던 엄홍길 대장 역시 애석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인터뷰 > 엄홍길 (산악인) : "꿈만 같습니다. 꿈만 같고요. 우리 영석이, 동민이, 기석이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요.
저기로 걸어 들어올 것 같아요. "

2002년 박영석 대장과 히말라야에 함께 오른 뒤부터 꾸준히 친분을 쌓아왔던 허영만 화백도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허화백은 박영석 대장의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결국 박영석 대장을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 인터뷰 > 엄홍길 (산악인) : "그렇게 말렸는데도 가더니 여기 있으면 불편하고, 거기 가면 편한 것 아니까. 자기 자리를 찾아간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9월, 한국인 최초로 안나 푸르나의 새로운 등정로를 개척하겠다고 나섰던 박영석 원정대. 이들이 택한 길은 안나 푸르나 중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남벽이었습니다.

< 인터뷰 > 박영석 (원정대장/ 10월 18일 무전 녹취) : "지금 현재 이 날씨로 오늘 비박도 불가능하고 일단 오늘 오후 부로 철수한다 이상."

시시때때로 변하는 기후와 낙석, 눈사태가 이들을 가로막았고, 결국 지난 달 18일 하산하겠다는 위성통신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급하게 수색팀을 꾸려 열흘간 총력을 다해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원정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영석 대장과 함께 실종된 신동민, 강기석 대원은 한국의 차세대 산악인으로 주목받던 인재들이어서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박영석 대장의 모교인 동국대에도 분향소가 마련돼, 고인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치렀습니다.

박대장이 처음으로 산악인의 꿈을 키웠던 산악 동아리도 오늘만큼은 쓸쓸했습니다.

등정 자체보다 등정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진정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

원정을 다녀올때마다 산악 장비들을 기부해 후배 산악인 양성에도 힘썼던 그였기에 더욱 믿기 힘든 죽음이었습니다.

< 인터뷰 > 양명수(박영석 대장 동국산악회 선배) : "통계적으로 봐서는 지금 10여 일 지나서 가망이 없지 않겠느냐
믿기지가 않는 거죠."

도전정신과 더불어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의 상징과도 같았던 선배의 비보에 후배들도 슬픈 심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인터뷰 > 서보현(서울시 마포동) :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도전하시고 가능으로 만드셨으니까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993년 아시아 최초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2005년 인류 최초의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기네스 북에 오른 산악인 박영석.

세계 최고의 산악인 대열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과 열정, 그리고 꿈은 그와 함께 산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 인터뷰 > 송강호(배우) : "이 분의 도전정신이 많은 분께 영향을 주고, 길이 잊히지 않는 그런 분으로 남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허영만(화백) : "영석아, 네 생각만 하면 추위에 떨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다.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곳이니까, 여기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산악인으로서는 마지막 등반을 눈앞에 두고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 박영석 강기석 신동민
하지만 원정대의 도전정신과 용기는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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