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염 걸린 백령도 소년의 악몽같았던 24시간

입력 2011.11.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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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응급환자 백령도 병원ㆍ군 부대서 수술 못받아

"주민이 5천명 넘게 사는 섬에서 간단한 수술에 속한다는 맹장수술조차 받지 못하는 게 말이 되나요."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긴급한 수술을 요하는 10대 응급환자가 섬에서 수술을 받지 못해 하룻밤을 꼬박 세운 뒤 일반 여객선을 타고 육지 병원으로 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섬에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가 1명도 없는 데다 헬기 또는 함정을 이용해 나오는 것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14일 인천시 옹진군과 백령병원에 따르면 백령도에 사는 김모(15ㆍ고1)군은 지난 12일 오후 9시께 갑자기 복통 증세를 보였다.

백령도의 유일한 병원인 백령병원을 찾은 김군은 "정확한 원인 분석을 위해 CT 촬영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하지만 이 병원에는 촬영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김군은 하는 수 없이 인근 군 의무중대로 가서 CT 촬영을 해야 했다.

촬영 결과 맹장염(충수염) 진단이 나왔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

백령병원 또한 수술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 이 병원에는 정형외과 등 6개 과에 전문의 7명이 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는 1명도 없기 때문이다.

병원은 김군을 육지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해병대 6여단 직통실을 통해 공군 헬기를 요청했지만 헬기는 짙은 안개로 출동할 수 없었다.

인천해양경찰서에도 연락이 취해졌지만 해경 함정을 이용할 경우 바다를 구역별로 나눠 맡는 경비활동을 병행하는 까닭에 배를 4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데다 인천항까지 8~9시간이 걸린다. 백령병원 의사는 다음날 아침 여객선을 타고 뭍으로 나갈 것을 권유했다.

김군은 하룻밤을 꼬박 지샌 뒤 다음날 오전 8시 일반 여객선을 탔고 낮 12시40분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후 인천시내 한 대형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 병원에서도 환자가 많아 수술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김군은 저녁 무렵에야 경기도 부천시의 한 의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조금만 더 방치했더라면 합병증으로 번질 뻔한 상황이었다.

김군은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지만 열악한 도서지역 응급의료시스템으로 끔찍한 고초를 겪었다.

김군의 어머니(53)는 "육지에서는 맹장염 수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외딴섬에 산다는 이유로 복통을 호소하는 아들을 이렇게 고생시켜 마음이 아프다"며 "백령병원에서도, 군 의무중대에서도 수술을 받을 수 없다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백령병원의 한 관계자는 "병원에 외과 전문의가 없다 보니 신체 절단 등으로 외과 수술을 요하는 응급환자가 오면 무조건 헬기나 배를 이용해 육지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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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장염 걸린 백령도 소년의 악몽같았던 24시간
    • 입력 2011-11-14 18:50:10
    연합뉴스
10대 응급환자 백령도 병원ㆍ군 부대서 수술 못받아 "주민이 5천명 넘게 사는 섬에서 간단한 수술에 속한다는 맹장수술조차 받지 못하는 게 말이 되나요."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긴급한 수술을 요하는 10대 응급환자가 섬에서 수술을 받지 못해 하룻밤을 꼬박 세운 뒤 일반 여객선을 타고 육지 병원으로 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섬에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가 1명도 없는 데다 헬기 또는 함정을 이용해 나오는 것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14일 인천시 옹진군과 백령병원에 따르면 백령도에 사는 김모(15ㆍ고1)군은 지난 12일 오후 9시께 갑자기 복통 증세를 보였다. 백령도의 유일한 병원인 백령병원을 찾은 김군은 "정확한 원인 분석을 위해 CT 촬영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하지만 이 병원에는 촬영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김군은 하는 수 없이 인근 군 의무중대로 가서 CT 촬영을 해야 했다. 촬영 결과 맹장염(충수염) 진단이 나왔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 백령병원 또한 수술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 이 병원에는 정형외과 등 6개 과에 전문의 7명이 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는 1명도 없기 때문이다. 병원은 김군을 육지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해병대 6여단 직통실을 통해 공군 헬기를 요청했지만 헬기는 짙은 안개로 출동할 수 없었다. 인천해양경찰서에도 연락이 취해졌지만 해경 함정을 이용할 경우 바다를 구역별로 나눠 맡는 경비활동을 병행하는 까닭에 배를 4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데다 인천항까지 8~9시간이 걸린다. 백령병원 의사는 다음날 아침 여객선을 타고 뭍으로 나갈 것을 권유했다. 김군은 하룻밤을 꼬박 지샌 뒤 다음날 오전 8시 일반 여객선을 탔고 낮 12시40분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후 인천시내 한 대형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 병원에서도 환자가 많아 수술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김군은 저녁 무렵에야 경기도 부천시의 한 의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조금만 더 방치했더라면 합병증으로 번질 뻔한 상황이었다. 김군은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지만 열악한 도서지역 응급의료시스템으로 끔찍한 고초를 겪었다. 김군의 어머니(53)는 "육지에서는 맹장염 수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외딴섬에 산다는 이유로 복통을 호소하는 아들을 이렇게 고생시켜 마음이 아프다"며 "백령병원에서도, 군 의무중대에서도 수술을 받을 수 없다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백령병원의 한 관계자는 "병원에 외과 전문의가 없다 보니 신체 절단 등으로 외과 수술을 요하는 응급환자가 오면 무조건 헬기나 배를 이용해 육지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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