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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은] 일제 쇠말뚝 잇따라 발견 外
입력 2011.11.19 (11:04) 수정 2011.11.19 (11:05)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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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번 순서는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의 근황을 알아보는 <요즘 북한은>입니다.



오늘은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이 개성에서 잇따라 발견됐다는 소식과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의 묘가 복원됐다는 소식을 이창진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을 때 많은 만행을 저질렀죠.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명산 곳곳에 쇠말뚝을 박기도 했는데요.



최근 북한에서 일제가 박은 것으로 보이는 쇠말뚝이 잇따라 발견됐는데요.



북한 매체들은 일본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11일) : "최근 개성지구에 송악산, 천마산, 지네산에서 쇠말뚝들이 발견 돼서 치솟는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개성의 천마산에 박힌 쇠말뚝은 약초를 캐던 주민이 발견했는데요.



신고를 받은 북한 당국이 개성 주민들과 함께 주변을 조사한 결과 천마산에서 3개, 송악산에서 1개, 지네산에서 2개가 발견됐습니다.



쇠말뚝은 길이가 1m ,직경이 3cm 정도 되는데요.



시멘트로 쇠말뚝을 고정시켜놓고 그 위에 손가락 크기의 쇠못을 다시 박아놓았습니다.



이밖에 송악산 정수리와 용마바위, 그리고 지네산의 바위에서는 쇠말뚝이 박혀있던 자리가 발견됐습니다.



<인터뷰>조휘성(북한사회과학원 산하 역사연구소 소장) : "민족의 넋과 얼을 짓밟기 위해 명산 개천들에 쇠말뚝을 박는

너절하고 치사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강행하였습니다."



일제는 강점시기 당시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했는데요.



쇠말뚝을 박은 것은 이 정책의 일환입니다.



당시 이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일본인은 풍수설을 고려해 명산이나 맥이 되는 지점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증언했는데요.



남한에 183개 북한에 182개의 쇠말뚝을 박았다고 합니다.



북한 매체들은 일본이 개성 지역에서 뛰어난 장수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쇠말뚝을 박은 것이라는 주민들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명필 한석봉 묘 복원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 다들 아시죠?



그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 땅인 개성인데요.



북한 당국은 지난 해 문화유적 발굴 작업을 통해 한석봉의 묘를 찾아냈는데요.



최근에는 꼼꼼한 고증을 거쳐 복원을 마쳤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 (지난 13일) : "개성고려박물관 연구사들과 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 연구사들이 발굴고증한 역사유적 한석봉의 묘는 황해북도 토산군 석봉리에 있습니다."



지난 해 발견된 석봉 한호의 묘가 복원됐는데요.



지난 해 4월에 처음 발견됐을 때는 묘의 흙이 흘러내려 높이가 1.2미터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문관상과 동자상도 모두 쓰러져 있었고 비석의 받침돌과 비몸은 30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은 고증을 거쳐 최근 묘를 원래대로 높이고 비석과 조각상들도 모두 제자리에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비석에는 조선국 통훈대부 가평군수 증 승지 한공지묘라고 새겨져있는데요.



생전에 한석봉이 가평군수 자리까지 올랐으며 사후에 승지직이 내려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13일) : "한석봉은 16세기의 유명한 명필가입니다."



비문에는 한석봉의 이력도 적혀있는데요.



본명은 한호이고, 조선중기인 1543년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명필로 이름을 떨쳐 사람들이 한석봉의 글씨 한 장을 얻으면 마치 구슬이나 옥돌을 얻은 것처럼 여겼고 왕과 왕족들도 그의 글씨를 병풍이나 책상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감상했다고 돼있습니다.



조선중앙tv는 현재 개성에는 한석봉의 글씨가 많이 남아있다고 소개했는데요.



개성 남대문과 선죽교비, 화담 서경덕 신도비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 [요즘 북한은] 일제 쇠말뚝 잇따라 발견 外
    • 입력 2011-11-19 11:04:51
    • 수정2011-11-19 11:05:35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이번 순서는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의 근황을 알아보는 <요즘 북한은>입니다.



오늘은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이 개성에서 잇따라 발견됐다는 소식과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의 묘가 복원됐다는 소식을 이창진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을 때 많은 만행을 저질렀죠.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명산 곳곳에 쇠말뚝을 박기도 했는데요.



최근 북한에서 일제가 박은 것으로 보이는 쇠말뚝이 잇따라 발견됐는데요.



북한 매체들은 일본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11일) : "최근 개성지구에 송악산, 천마산, 지네산에서 쇠말뚝들이 발견 돼서 치솟는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개성의 천마산에 박힌 쇠말뚝은 약초를 캐던 주민이 발견했는데요.



신고를 받은 북한 당국이 개성 주민들과 함께 주변을 조사한 결과 천마산에서 3개, 송악산에서 1개, 지네산에서 2개가 발견됐습니다.



쇠말뚝은 길이가 1m ,직경이 3cm 정도 되는데요.



시멘트로 쇠말뚝을 고정시켜놓고 그 위에 손가락 크기의 쇠못을 다시 박아놓았습니다.



이밖에 송악산 정수리와 용마바위, 그리고 지네산의 바위에서는 쇠말뚝이 박혀있던 자리가 발견됐습니다.



<인터뷰>조휘성(북한사회과학원 산하 역사연구소 소장) : "민족의 넋과 얼을 짓밟기 위해 명산 개천들에 쇠말뚝을 박는

너절하고 치사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강행하였습니다."



일제는 강점시기 당시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했는데요.



쇠말뚝을 박은 것은 이 정책의 일환입니다.



당시 이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일본인은 풍수설을 고려해 명산이나 맥이 되는 지점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증언했는데요.



남한에 183개 북한에 182개의 쇠말뚝을 박았다고 합니다.



북한 매체들은 일본이 개성 지역에서 뛰어난 장수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쇠말뚝을 박은 것이라는 주민들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명필 한석봉 묘 복원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 다들 아시죠?



그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 땅인 개성인데요.



북한 당국은 지난 해 문화유적 발굴 작업을 통해 한석봉의 묘를 찾아냈는데요.



최근에는 꼼꼼한 고증을 거쳐 복원을 마쳤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 (지난 13일) : "개성고려박물관 연구사들과 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 연구사들이 발굴고증한 역사유적 한석봉의 묘는 황해북도 토산군 석봉리에 있습니다."



지난 해 발견된 석봉 한호의 묘가 복원됐는데요.



지난 해 4월에 처음 발견됐을 때는 묘의 흙이 흘러내려 높이가 1.2미터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문관상과 동자상도 모두 쓰러져 있었고 비석의 받침돌과 비몸은 30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은 고증을 거쳐 최근 묘를 원래대로 높이고 비석과 조각상들도 모두 제자리에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비석에는 조선국 통훈대부 가평군수 증 승지 한공지묘라고 새겨져있는데요.



생전에 한석봉이 가평군수 자리까지 올랐으며 사후에 승지직이 내려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13일) : "한석봉은 16세기의 유명한 명필가입니다."



비문에는 한석봉의 이력도 적혀있는데요.



본명은 한호이고, 조선중기인 1543년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명필로 이름을 떨쳐 사람들이 한석봉의 글씨 한 장을 얻으면 마치 구슬이나 옥돌을 얻은 것처럼 여겼고 왕과 왕족들도 그의 글씨를 병풍이나 책상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감상했다고 돼있습니다.



조선중앙tv는 현재 개성에는 한석봉의 글씨가 많이 남아있다고 소개했는데요.



개성 남대문과 선죽교비, 화담 서경덕 신도비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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