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22일(현지시간) 타계했다는 소식을 터키 출장 중에 접한 서지학자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해외 문화재 반환의 큰 별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이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깊이 관여한 박 원장은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면서 "이제 그것이 막 고국에 돌아왔으니, 몇 년이라도 그 감격을 즐기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했었다"고 아쉬워했다.
박 원장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예능민속실장으로 일하면서 해외 전적(典籍) 문화재 조사 사업을 벌이던 1990년 무렵에 처음으로 박 박사를 만난 것으로 기억했다.
"당시에 프랑스에서 박 박사가 재발견한 현존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 영인본을 제작하느라 분주했을 때인데, 그때 처음으로 만나뵈고서는 이후 매번 한국에 오실 때면 만났습니다. 고인이 책을 내실 때는 그 원고를 내가 읽어 드리고 교정을 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박 원장은 고인이 이룩한 업적을 "기념비적"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프랑스 군대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가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조사하고 알렸으며, 직지심체요절을 다시금 찾아내 보고한 일은 한국과 세계 서지학계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해외문화재 반환운동사에서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지 않느냐"면서 "고인 또한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의 발견에 헌신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끝내 영구 귀국하지 않은 데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여쭤보니 (영구 귀국을) 안 하시려 했습니다. 아마도 프랑스에서는 연금이 나오고 노후생활 보장이 우리보다는 잘돼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토록 소망한 외규장각 도서가 국내로 반환되는 장면을 보셨으니, 저승에서도 마음은 편한 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고인이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깊이 관여한 박 원장은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면서 "이제 그것이 막 고국에 돌아왔으니, 몇 년이라도 그 감격을 즐기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했었다"고 아쉬워했다.
박 원장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예능민속실장으로 일하면서 해외 전적(典籍) 문화재 조사 사업을 벌이던 1990년 무렵에 처음으로 박 박사를 만난 것으로 기억했다.
"당시에 프랑스에서 박 박사가 재발견한 현존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 영인본을 제작하느라 분주했을 때인데, 그때 처음으로 만나뵈고서는 이후 매번 한국에 오실 때면 만났습니다. 고인이 책을 내실 때는 그 원고를 내가 읽어 드리고 교정을 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박 원장은 고인이 이룩한 업적을 "기념비적"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프랑스 군대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가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조사하고 알렸으며, 직지심체요절을 다시금 찾아내 보고한 일은 한국과 세계 서지학계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해외문화재 반환운동사에서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지 않느냐"면서 "고인 또한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의 발견에 헌신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끝내 영구 귀국하지 않은 데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여쭤보니 (영구 귀국을) 안 하시려 했습니다. 아마도 프랑스에서는 연금이 나오고 노후생활 보장이 우리보다는 잘돼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토록 소망한 외규장각 도서가 국내로 반환되는 장면을 보셨으니, 저승에서도 마음은 편한 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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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박병선 박사, 기념비적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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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11-23 09:09:14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22일(현지시간) 타계했다는 소식을 터키 출장 중에 접한 서지학자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해외 문화재 반환의 큰 별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이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깊이 관여한 박 원장은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면서 "이제 그것이 막 고국에 돌아왔으니, 몇 년이라도 그 감격을 즐기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했었다"고 아쉬워했다.
박 원장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예능민속실장으로 일하면서 해외 전적(典籍) 문화재 조사 사업을 벌이던 1990년 무렵에 처음으로 박 박사를 만난 것으로 기억했다.
"당시에 프랑스에서 박 박사가 재발견한 현존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 영인본을 제작하느라 분주했을 때인데, 그때 처음으로 만나뵈고서는 이후 매번 한국에 오실 때면 만났습니다. 고인이 책을 내실 때는 그 원고를 내가 읽어 드리고 교정을 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박 원장은 고인이 이룩한 업적을 "기념비적"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프랑스 군대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가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조사하고 알렸으며, 직지심체요절을 다시금 찾아내 보고한 일은 한국과 세계 서지학계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해외문화재 반환운동사에서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지 않느냐"면서 "고인 또한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의 발견에 헌신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끝내 영구 귀국하지 않은 데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여쭤보니 (영구 귀국을) 안 하시려 했습니다. 아마도 프랑스에서는 연금이 나오고 노후생활 보장이 우리보다는 잘돼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토록 소망한 외규장각 도서가 국내로 반환되는 장면을 보셨으니, 저승에서도 마음은 편한 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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