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탁구, 20년 이별 딛고 ‘작은 통일’

입력 2011.11.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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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일팀을 이뤘던 남북 탁구가 20년 만에 다시 한 팀으로 뭉쳐 '작은 통일'을 이뤄냈다.

22일 저녁(현지시간) 국제 탁구 친선대회인 '피스 앤드 스포츠컵'이 열린 카타르 도하의 아스파이어 스포츠 아카데미.

여자 복식에서 호흡을 맞춘 김경아(34·대한항공)-김혜성(17) 조가 결승전 상대인 릴리 장(미국)-아나 티코미르노바(러시아) 조로부터 포인트를 빼앗을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박수 소리와 함께 '잘한다'는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스무 명 남짓 스탠드 한편에 모여앉아 열성적으로 응원한 이들은 카타르 현지에서 일하는 북한 출신 주재원들이었다.

인공기를 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옷깃에 달린 배지로 북한에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김혜성이 날카로운 공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를 때나 김경아가 철벽 커트 수비로 상대편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한결같이 응원했다.

실수로 아까운 포인트를 내줄 때면 긴 탄성을 내질렀다.

경기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거나 선수들이 쓴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북한에서는 축구 말고는 탁구가 생활체육으로 가장 인기가 높다는 북한 대표단 관계자의 설명을 실감케 했다.

'큰 대회도 아닌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자 "우리 선수들이 오는데 당연히 와야죠"라는 한 응원객의 답이 돌아왔다.

다른 응원객은 "저렇게 (남북한 선수가) 같이 경기하는 장면을 언제 또 보겠느냐"고 거들었다.

남북한 대표단은 이틀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정을 쌓았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수없이 마주치며 친하게 지내오긴 했지만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춘 이번 대회를 통해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분위기 메이커인 유승민과 김경아가 몸을 풀거나 연습하는 동안 틈틈이 농담을 던지면 나이 어린 김혁봉과 김혜성은 만만치 않은 입심으로 받아치는 등 함께 보낸 이틀 내내 유쾌한 공기가 흘렀다.

팀의 막내지만 당차게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던 김혜성이 준우승에 머물러 눈에 띄게 힘 빠진 모습을 보이자 파트너 김경아를 비롯한 남측 대표단 관계자들이 어깨를 두드리며 기운을 북돋워주기도 했다.

남북한 탁구의 이런 모습은 다른 참가국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 사이에서도 관심거리였다.

남북한 선수들이 훈련할 때 외국 언론매체는 물론 연습장에 나온 일본과 프랑스 등 다른 참가국 선수들도 유심히 바라보며 따로 사진을 찍는 등 시선을 보냈다.

공식 만찬 때 윌프레드 렘케 유엔 사무총장 체육 보좌관은 연설을 마친 뒤 유승민과 김혁봉을 단상에 올라오도록 해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짧지만 긴 일정을 마친 남북한 대표단은 따로 모여 인사를 나눌 자리를 갖지 못하고 경기장에서 작별했다.

북한 대표단이 경기 이튿날 새벽에 귀국길에 오르는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틀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제 또 이렇게 만나나?"

"다음번 국제대회 때 또 봅시다!"

기약없는 이별을 한 이들의 얼굴에는 다시 만나길 갈망하는 표정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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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탁구, 20년 이별 딛고 ‘작은 통일’
    • 입력 2011-11-23 10:52:28
    연합뉴스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일팀을 이뤘던 남북 탁구가 20년 만에 다시 한 팀으로 뭉쳐 '작은 통일'을 이뤄냈다. 22일 저녁(현지시간) 국제 탁구 친선대회인 '피스 앤드 스포츠컵'이 열린 카타르 도하의 아스파이어 스포츠 아카데미. 여자 복식에서 호흡을 맞춘 김경아(34·대한항공)-김혜성(17) 조가 결승전 상대인 릴리 장(미국)-아나 티코미르노바(러시아) 조로부터 포인트를 빼앗을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박수 소리와 함께 '잘한다'는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스무 명 남짓 스탠드 한편에 모여앉아 열성적으로 응원한 이들은 카타르 현지에서 일하는 북한 출신 주재원들이었다. 인공기를 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옷깃에 달린 배지로 북한에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김혜성이 날카로운 공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를 때나 김경아가 철벽 커트 수비로 상대편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한결같이 응원했다. 실수로 아까운 포인트를 내줄 때면 긴 탄성을 내질렀다. 경기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거나 선수들이 쓴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북한에서는 축구 말고는 탁구가 생활체육으로 가장 인기가 높다는 북한 대표단 관계자의 설명을 실감케 했다. '큰 대회도 아닌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자 "우리 선수들이 오는데 당연히 와야죠"라는 한 응원객의 답이 돌아왔다. 다른 응원객은 "저렇게 (남북한 선수가) 같이 경기하는 장면을 언제 또 보겠느냐"고 거들었다. 남북한 대표단은 이틀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정을 쌓았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수없이 마주치며 친하게 지내오긴 했지만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춘 이번 대회를 통해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분위기 메이커인 유승민과 김경아가 몸을 풀거나 연습하는 동안 틈틈이 농담을 던지면 나이 어린 김혁봉과 김혜성은 만만치 않은 입심으로 받아치는 등 함께 보낸 이틀 내내 유쾌한 공기가 흘렀다. 팀의 막내지만 당차게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던 김혜성이 준우승에 머물러 눈에 띄게 힘 빠진 모습을 보이자 파트너 김경아를 비롯한 남측 대표단 관계자들이 어깨를 두드리며 기운을 북돋워주기도 했다. 남북한 탁구의 이런 모습은 다른 참가국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 사이에서도 관심거리였다. 남북한 선수들이 훈련할 때 외국 언론매체는 물론 연습장에 나온 일본과 프랑스 등 다른 참가국 선수들도 유심히 바라보며 따로 사진을 찍는 등 시선을 보냈다. 공식 만찬 때 윌프레드 렘케 유엔 사무총장 체육 보좌관은 연설을 마친 뒤 유승민과 김혁봉을 단상에 올라오도록 해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짧지만 긴 일정을 마친 남북한 대표단은 따로 모여 인사를 나눌 자리를 갖지 못하고 경기장에서 작별했다. 북한 대표단이 경기 이튿날 새벽에 귀국길에 오르는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틀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제 또 이렇게 만나나?" "다음번 국제대회 때 또 봅시다!" 기약없는 이별을 한 이들의 얼굴에는 다시 만나길 갈망하는 표정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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