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 김정일…체제 유지 도구로 사용
입력 2011.12.21 (07:5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직접 영화 제작에 간여할 정도로 소문난 영화광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왜 이렇게 영화에 집착했을까요?
이민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영화 촬영 현장 곳곳을 누비며 현지 지도에 나섰던 30대 김정일.
영화 제작을 통해 아버지 김일성 미화에 앞장섰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2009년 3월) :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꽃 파는 처녀'를 영화로 옮기기 위한 사업을 몸소 관리하시고"
지난 1978년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부부 납북 사건도 김정일이 주도했습니다.
<인터뷰> 김정일 (일본방송 인터뷰) : "신감독을 유인할 유혹하자면 뭐가 필요하냐, 그래서 최선생을.그게 괜찮게 됐단말입니다."
<인터뷰> 최은희 (2006년 인터뷰) : "그때(납북때)심정 말로 표현못해 6개월동안 밥도 못먹었고..."
김 위원장은 영화 3만여 편이 소장된 개인창고를 갖고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어서 우리 정부가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선물로 영화 DVD를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영화 사랑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인터뷰>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영화를 통해 빨치산 세력을 정통성을 인정하고 또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
영화를 통해 후계자로서 인정받았던 김정일 위원장.
이어 체제 유지를 위한 민심 통제 도구로도 영화를 이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KBS 뉴스 이민우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직접 영화 제작에 간여할 정도로 소문난 영화광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왜 이렇게 영화에 집착했을까요?
이민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영화 촬영 현장 곳곳을 누비며 현지 지도에 나섰던 30대 김정일.
영화 제작을 통해 아버지 김일성 미화에 앞장섰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2009년 3월) :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꽃 파는 처녀'를 영화로 옮기기 위한 사업을 몸소 관리하시고"
지난 1978년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부부 납북 사건도 김정일이 주도했습니다.
<인터뷰> 김정일 (일본방송 인터뷰) : "신감독을 유인할 유혹하자면 뭐가 필요하냐, 그래서 최선생을.그게 괜찮게 됐단말입니다."
<인터뷰> 최은희 (2006년 인터뷰) : "그때(납북때)심정 말로 표현못해 6개월동안 밥도 못먹었고..."
김 위원장은 영화 3만여 편이 소장된 개인창고를 갖고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어서 우리 정부가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선물로 영화 DVD를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영화 사랑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인터뷰>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영화를 통해 빨치산 세력을 정통성을 인정하고 또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
영화를 통해 후계자로서 인정받았던 김정일 위원장.
이어 체제 유지를 위한 민심 통제 도구로도 영화를 이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KBS 뉴스 이민우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영화광’ 김정일…체제 유지 도구로 사용
-
- 입력 2011-12-21 07:58:47
<앵커 멘트>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직접 영화 제작에 간여할 정도로 소문난 영화광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왜 이렇게 영화에 집착했을까요?
이민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영화 촬영 현장 곳곳을 누비며 현지 지도에 나섰던 30대 김정일.
영화 제작을 통해 아버지 김일성 미화에 앞장섰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2009년 3월) :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꽃 파는 처녀'를 영화로 옮기기 위한 사업을 몸소 관리하시고"
지난 1978년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부부 납북 사건도 김정일이 주도했습니다.
<인터뷰> 김정일 (일본방송 인터뷰) : "신감독을 유인할 유혹하자면 뭐가 필요하냐, 그래서 최선생을.그게 괜찮게 됐단말입니다."
<인터뷰> 최은희 (2006년 인터뷰) : "그때(납북때)심정 말로 표현못해 6개월동안 밥도 못먹었고..."
김 위원장은 영화 3만여 편이 소장된 개인창고를 갖고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어서 우리 정부가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선물로 영화 DVD를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영화 사랑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인터뷰>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영화를 통해 빨치산 세력을 정통성을 인정하고 또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
영화를 통해 후계자로서 인정받았던 김정일 위원장.
이어 체제 유지를 위한 민심 통제 도구로도 영화를 이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KBS 뉴스 이민우입니다.
-
-
이민우 기자 kbsminoo@gmail.com
이민우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슈
김정일 사망…북한 체제 어디로?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