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요즘,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보니 사라져가는 그리운 풍경들도 참 많죠.
예전엔 동네마다 흔히 보이던 방앗간과 대장간도 거의 사라졌고요,
뻥튀기 할아버지나 아이스케키 장수도 거의 자취를 감췄죠.
모든 게 백화점과 마트에서 해결되는 요즘 세상, 그래도 꿋꿋이 한 자리를 지키며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들이 있다는데요.
김기흥 기자,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옛 가게들, 소개해주신다고요
<기자 멘트>
네, 속도가 미덕이 된 요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요.
오래전에는 우리 삶의 익숙한 부분이었던 것들도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는 책과 영상 속의 기록으로만 남을지도 모를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복잡한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대장간. 각종 연장과 농기구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모두 이곳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것들입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을지로 7가에서 하다가 불광동으로 온 거야. 그 때가 62년도인가 61년도인가 그래. 리어카에 대장간 차려서 끌고 다니면서 하고 그랬어."
힘들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대장간 일을 배웠던 열 네 살의 어린 소년은 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 가게가 있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래된 가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가 된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큰 산입니다.
<인터뷰> 박상범 (아들/2대 사장) : "저희 아버님은 이 대장간 일을 위해서 태어나신 분 같아요. 다른 것과 타협을 해서 만드는 것도 못하시고 항상 곧이곧대로 정성을 다 해서 만드니까요."
무쇠를 녹이기 위한 화덕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살피는 것은 대장간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불 작업을 보통 오전에 많이 해요. 오후가 되면 밑에 재가 차. 저게 탄 것이 재가 굳어서 그러면 불이 올라와도 시원치 않아. 그러면 다시 불을 지피려면 한참 해야 하니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품질 좋은 물건은 물론 덤으로 얻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광원 (서울시 대조동) : "삽질하고 꼴 베고 소 키우고 이런 냄새. 이런 냄새가 꼭 냄새로 맡는 게 아니라 사람이 냄새로 맡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냄새를 맡잖아요. 그런 냄새가 지나갈 때마다 나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최고라고 생각해요. 오래 남기를 바라죠."
한평생 무쇠를 다뤄 온 장인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대장간의 불을 꺼트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지금은 아버지 것을 아들이 많이 물려받았는데 아들이 해도 (손님) 아들이 또 우리집에 오고. 대물려서 우리집에 와."
골목까지 풍겨져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바로 이 곳, 기름 짜는 가게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이 가게가 처음 열리던 날 들여놓은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방식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이영형 (사장) : "79년도 11월 1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옛날에는 손님 참 많았어요. 농촌에 사람이 많아서. 6시 돼서 시작하면 밤 열시반 열한시까지 기름 짰었는데."
손님 대부분은 직접 농사지은 깨를 가져와 이곳에 맡깁니다.
<인터뷰> "직접 재배한 거 기름 짜면 더 고소하죠."
참기름을 짜는 방식도 예전 그대로입니다.
<인터뷰> 임숙자 (아내) : "이렇게 처음부터 볶는 것에서 기름병에 다 들어갈 때까지 과정이 한 시간 걸려요."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이렇게 해야 더 고소한 참기름을 짜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임숙자 (아내) : "진짜 옛날 방식대로 깨를 갈아서 김 올려서 쪄요. 시루에다. 쪄서 하는 것이 우리집이 마지막이에요."
33년째 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이제는 손님들도 할머니가 다 됐어요.” “한 30년 짜니까. 60 넘으니까.”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한 작은 가게에서 사람들은 농사일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 놓습니다.
<인터뷰> "다른 데보다 (이곳에서 기름을 짜면) 첫째 기름이 많이 나니까. 맛이 좋으니까.."
시골 5일장. 이곳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있습니다.
<녹취> “뻥이야”
사람들의 애간장을 졸이는 할아버지는 뻥튀기 경력 수십년의 달인입니다.
<인터뷰> 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54년간 했는데. 힘 닿을 때까지 나는 힘 닿을 때까지 하면 돼."
평생의 밥벌이로 단련된 몸은 여느 청년 부럽지 않은 근력을 자랑합니다.
<인터뷰>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뻥튀기 기계를) 안 돌리면 안 돼. 그리고 빨리 돌리는 것도 필요 없고 슬슬 돌리면 다 돼."
한 때 장터에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장 인기 많은 신기한 물건이었던 뻥튀기 기계.
오래 전,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그 맛 그대로인 뻥튀기를 나눠 드시며, 할머니들은 잠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합니다.
<녹취>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해요.”
<인터뷰> 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내가 살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게. 노력하고. 죽을 때 까지는 내가 잊지 않고 (계속) 한다. 그것만 하면 돼."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풍경들.
사라져가는 그 모습과 이야기를 오래도록 추억하고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요즘,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보니 사라져가는 그리운 풍경들도 참 많죠.
예전엔 동네마다 흔히 보이던 방앗간과 대장간도 거의 사라졌고요,
뻥튀기 할아버지나 아이스케키 장수도 거의 자취를 감췄죠.
모든 게 백화점과 마트에서 해결되는 요즘 세상, 그래도 꿋꿋이 한 자리를 지키며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들이 있다는데요.
김기흥 기자,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옛 가게들, 소개해주신다고요
<기자 멘트>
네, 속도가 미덕이 된 요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요.
오래전에는 우리 삶의 익숙한 부분이었던 것들도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는 책과 영상 속의 기록으로만 남을지도 모를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복잡한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대장간. 각종 연장과 농기구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모두 이곳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것들입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을지로 7가에서 하다가 불광동으로 온 거야. 그 때가 62년도인가 61년도인가 그래. 리어카에 대장간 차려서 끌고 다니면서 하고 그랬어."
힘들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대장간 일을 배웠던 열 네 살의 어린 소년은 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 가게가 있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래된 가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가 된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큰 산입니다.
<인터뷰> 박상범 (아들/2대 사장) : "저희 아버님은 이 대장간 일을 위해서 태어나신 분 같아요. 다른 것과 타협을 해서 만드는 것도 못하시고 항상 곧이곧대로 정성을 다 해서 만드니까요."
무쇠를 녹이기 위한 화덕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살피는 것은 대장간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불 작업을 보통 오전에 많이 해요. 오후가 되면 밑에 재가 차. 저게 탄 것이 재가 굳어서 그러면 불이 올라와도 시원치 않아. 그러면 다시 불을 지피려면 한참 해야 하니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품질 좋은 물건은 물론 덤으로 얻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광원 (서울시 대조동) : "삽질하고 꼴 베고 소 키우고 이런 냄새. 이런 냄새가 꼭 냄새로 맡는 게 아니라 사람이 냄새로 맡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냄새를 맡잖아요. 그런 냄새가 지나갈 때마다 나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최고라고 생각해요. 오래 남기를 바라죠."
한평생 무쇠를 다뤄 온 장인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대장간의 불을 꺼트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지금은 아버지 것을 아들이 많이 물려받았는데 아들이 해도 (손님) 아들이 또 우리집에 오고. 대물려서 우리집에 와."
골목까지 풍겨져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바로 이 곳, 기름 짜는 가게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이 가게가 처음 열리던 날 들여놓은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방식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이영형 (사장) : "79년도 11월 1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옛날에는 손님 참 많았어요. 농촌에 사람이 많아서. 6시 돼서 시작하면 밤 열시반 열한시까지 기름 짰었는데."
손님 대부분은 직접 농사지은 깨를 가져와 이곳에 맡깁니다.
<인터뷰> "직접 재배한 거 기름 짜면 더 고소하죠."
참기름을 짜는 방식도 예전 그대로입니다.
<인터뷰> 임숙자 (아내) : "이렇게 처음부터 볶는 것에서 기름병에 다 들어갈 때까지 과정이 한 시간 걸려요."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이렇게 해야 더 고소한 참기름을 짜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임숙자 (아내) : "진짜 옛날 방식대로 깨를 갈아서 김 올려서 쪄요. 시루에다. 쪄서 하는 것이 우리집이 마지막이에요."
33년째 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이제는 손님들도 할머니가 다 됐어요.” “한 30년 짜니까. 60 넘으니까.”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한 작은 가게에서 사람들은 농사일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 놓습니다.
<인터뷰> "다른 데보다 (이곳에서 기름을 짜면) 첫째 기름이 많이 나니까. 맛이 좋으니까.."
시골 5일장. 이곳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있습니다.
<녹취> “뻥이야”
사람들의 애간장을 졸이는 할아버지는 뻥튀기 경력 수십년의 달인입니다.
<인터뷰> 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54년간 했는데. 힘 닿을 때까지 나는 힘 닿을 때까지 하면 돼."
평생의 밥벌이로 단련된 몸은 여느 청년 부럽지 않은 근력을 자랑합니다.
<인터뷰>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뻥튀기 기계를) 안 돌리면 안 돼. 그리고 빨리 돌리는 것도 필요 없고 슬슬 돌리면 다 돼."
한 때 장터에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장 인기 많은 신기한 물건이었던 뻥튀기 기계.
오래 전,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그 맛 그대로인 뻥튀기를 나눠 드시며, 할머니들은 잠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합니다.
<녹취>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해요.”
<인터뷰> 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내가 살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게. 노력하고. 죽을 때 까지는 내가 잊지 않고 (계속) 한다. 그것만 하면 돼."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풍경들.
사라져가는 그 모습과 이야기를 오래도록 추억하고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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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포착] 삶의 자취가 배어있는 오래된 가게
-
- 입력 2012-01-04 09:05:07
<앵커 멘트>
요즘,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보니 사라져가는 그리운 풍경들도 참 많죠.
예전엔 동네마다 흔히 보이던 방앗간과 대장간도 거의 사라졌고요,
뻥튀기 할아버지나 아이스케키 장수도 거의 자취를 감췄죠.
모든 게 백화점과 마트에서 해결되는 요즘 세상, 그래도 꿋꿋이 한 자리를 지키며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들이 있다는데요.
김기흥 기자,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옛 가게들, 소개해주신다고요
<기자 멘트>
네, 속도가 미덕이 된 요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요.
오래전에는 우리 삶의 익숙한 부분이었던 것들도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는 책과 영상 속의 기록으로만 남을지도 모를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복잡한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대장간. 각종 연장과 농기구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모두 이곳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것들입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을지로 7가에서 하다가 불광동으로 온 거야. 그 때가 62년도인가 61년도인가 그래. 리어카에 대장간 차려서 끌고 다니면서 하고 그랬어."
힘들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대장간 일을 배웠던 열 네 살의 어린 소년은 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 가게가 있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래된 가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가 된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큰 산입니다.
<인터뷰> 박상범 (아들/2대 사장) : "저희 아버님은 이 대장간 일을 위해서 태어나신 분 같아요. 다른 것과 타협을 해서 만드는 것도 못하시고 항상 곧이곧대로 정성을 다 해서 만드니까요."
무쇠를 녹이기 위한 화덕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살피는 것은 대장간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불 작업을 보통 오전에 많이 해요. 오후가 되면 밑에 재가 차. 저게 탄 것이 재가 굳어서 그러면 불이 올라와도 시원치 않아. 그러면 다시 불을 지피려면 한참 해야 하니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품질 좋은 물건은 물론 덤으로 얻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광원 (서울시 대조동) : "삽질하고 꼴 베고 소 키우고 이런 냄새. 이런 냄새가 꼭 냄새로 맡는 게 아니라 사람이 냄새로 맡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냄새를 맡잖아요. 그런 냄새가 지나갈 때마다 나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최고라고 생각해요. 오래 남기를 바라죠."
한평생 무쇠를 다뤄 온 장인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대장간의 불을 꺼트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박정원 (1대 사장) : "지금은 아버지 것을 아들이 많이 물려받았는데 아들이 해도 (손님) 아들이 또 우리집에 오고. 대물려서 우리집에 와."
골목까지 풍겨져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바로 이 곳, 기름 짜는 가게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이 가게가 처음 열리던 날 들여놓은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방식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이영형 (사장) : "79년도 11월 1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옛날에는 손님 참 많았어요. 농촌에 사람이 많아서. 6시 돼서 시작하면 밤 열시반 열한시까지 기름 짰었는데."
손님 대부분은 직접 농사지은 깨를 가져와 이곳에 맡깁니다.
<인터뷰> "직접 재배한 거 기름 짜면 더 고소하죠."
참기름을 짜는 방식도 예전 그대로입니다.
<인터뷰> 임숙자 (아내) : "이렇게 처음부터 볶는 것에서 기름병에 다 들어갈 때까지 과정이 한 시간 걸려요."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이렇게 해야 더 고소한 참기름을 짜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임숙자 (아내) : "진짜 옛날 방식대로 깨를 갈아서 김 올려서 쪄요. 시루에다. 쪄서 하는 것이 우리집이 마지막이에요."
33년째 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이제는 손님들도 할머니가 다 됐어요.” “한 30년 짜니까. 60 넘으니까.”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한 작은 가게에서 사람들은 농사일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 놓습니다.
<인터뷰> "다른 데보다 (이곳에서 기름을 짜면) 첫째 기름이 많이 나니까. 맛이 좋으니까.."
시골 5일장. 이곳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있습니다.
<녹취> “뻥이야”
사람들의 애간장을 졸이는 할아버지는 뻥튀기 경력 수십년의 달인입니다.
<인터뷰> 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54년간 했는데. 힘 닿을 때까지 나는 힘 닿을 때까지 하면 돼."
평생의 밥벌이로 단련된 몸은 여느 청년 부럽지 않은 근력을 자랑합니다.
<인터뷰>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뻥튀기 기계를) 안 돌리면 안 돼. 그리고 빨리 돌리는 것도 필요 없고 슬슬 돌리면 다 돼."
한 때 장터에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장 인기 많은 신기한 물건이었던 뻥튀기 기계.
오래 전,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그 맛 그대로인 뻥튀기를 나눠 드시며, 할머니들은 잠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합니다.
<녹취>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해요.”
<인터뷰> 이재화 (뻥튀기 할아버지) : "내가 살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게. 노력하고. 죽을 때 까지는 내가 잊지 않고 (계속) 한다. 그것만 하면 돼."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풍경들.
사라져가는 그 모습과 이야기를 오래도록 추억하고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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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 기자 he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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