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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론’ 내세워 연임 성공 마잉주 총통
입력 2012.01.14 (22:50) 연합뉴스
14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마잉주(馬英九·61) 총통은 정치적으로 성공 가도를 걸어온 인물이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1981년 장징궈(蔣經國) 당시 총통의 영어 통역 비서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에는 42세의 젊은 나이로 리덩후이(李登輝) 정부에서 법무부장(장관)에 발탁됐고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금권정치, 부패, 폭력조직과의 전쟁 등으로 청렴결백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나고 나서는 국립 정치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마 총통은 1998년에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시장을 5%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치적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타이베이 시장을 연임했다.

그는 타이베이 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과 버스 전용차로 구축 사업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2008년에는 제12대 대만 총통선거에 나서 천 전 총통을 또 한 번 꺾고 당선됐다.

181cm의 훤칠한 키에 미남형인 그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작은 형'이라는 뜻의 샤오마거(小馬哥)라는 별명도 얻었다.

마 총통은 2008년 5월 취임 후 4년간 대만 경제를 살리고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서명한 것 등을 성과로 내세워 이번에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이날 밤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타이베이 국민당 중앙당사 앞에 마련된 연단에 올라 "이번 승리는 대만 국민의 승리이며 평화를 지향하는 대만의 승리"라면서 "안정되고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 총통은 지난 2010년 10.72%의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등 그동안 상당 부분 경제적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재임 기간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주택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서민의 체감 경제는 오히려 악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ECFA 혜택이 일부 기업인 등에게만 국한되고 일반 서민은 체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홍콩 주룽반도에서 태어난 뒤 이듬해 대만으로 이주했다. 국립대만대 법대를 졸업했고 1974년 국민당의 중산(中山)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뉴욕대학 법학석사(1976년), 하버드대학 법학박사(1981년) 학위를 받았다.

부인인 저우메이칭(周美靑)과는 미국 유학 중 결혼했다. 자녀는 두 딸을 두고 있다.
  • ‘안정론’ 내세워 연임 성공 마잉주 총통
    • 입력 2012-01-14 22:50:29
    연합뉴스
14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마잉주(馬英九·61) 총통은 정치적으로 성공 가도를 걸어온 인물이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1981년 장징궈(蔣經國) 당시 총통의 영어 통역 비서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에는 42세의 젊은 나이로 리덩후이(李登輝) 정부에서 법무부장(장관)에 발탁됐고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금권정치, 부패, 폭력조직과의 전쟁 등으로 청렴결백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나고 나서는 국립 정치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마 총통은 1998년에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시장을 5%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치적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타이베이 시장을 연임했다.

그는 타이베이 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과 버스 전용차로 구축 사업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2008년에는 제12대 대만 총통선거에 나서 천 전 총통을 또 한 번 꺾고 당선됐다.

181cm의 훤칠한 키에 미남형인 그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작은 형'이라는 뜻의 샤오마거(小馬哥)라는 별명도 얻었다.

마 총통은 2008년 5월 취임 후 4년간 대만 경제를 살리고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서명한 것 등을 성과로 내세워 이번에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이날 밤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타이베이 국민당 중앙당사 앞에 마련된 연단에 올라 "이번 승리는 대만 국민의 승리이며 평화를 지향하는 대만의 승리"라면서 "안정되고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 총통은 지난 2010년 10.72%의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등 그동안 상당 부분 경제적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재임 기간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주택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서민의 체감 경제는 오히려 악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ECFA 혜택이 일부 기업인 등에게만 국한되고 일반 서민은 체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홍콩 주룽반도에서 태어난 뒤 이듬해 대만으로 이주했다. 국립대만대 법대를 졸업했고 1974년 국민당의 중산(中山)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뉴욕대학 법학석사(1976년), 하버드대학 법학박사(1981년) 학위를 받았다.

부인인 저우메이칭(周美靑)과는 미국 유학 중 결혼했다. 자녀는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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