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 우승, 방랑…’ 야구 풍운아 BK
입력 2012.01.18 (14:55)
수정 2012.01.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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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한국프로야구 마운드에 오르게 된 김병현(33)은 ‘풍운아’라는 별명처럼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병현에게는 최고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등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9시즌 동안 통산 394경기에 등판해 54승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3년간은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등 김병현의 야구 인생은 부침이 심했다.
김병현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의 인상적인 투구를 발판으로 성균관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2월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입단계약을 했다.
더블A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한 김병현은 기량을 인정받아 곧바로 트리플A 투산 사이더와인더스로 승격했다.
그러고는 바로 그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25경기에서 1승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61의 성적을 냈다.
이듬해 14세이브를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 김병현은 2001년 5승6패 19세이브를 작성하며 애리조나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티노 마르티네스, 데릭 지터, 스캇 브로셔스 등에게 연속으로 동점, 역전 홈런을 얻어맞아 메이저리그 팬의 뇌리에 불운한 투수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002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개인 최다인 36세이브를 남기며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해 내셔널리그 올스타에도 뽑히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병현은 2003시즌 중반 팀을 옮겼다. 애리조나에서 7경기를 뛴 뒤 보스턴으로 이적해 남은 시즌에서 49경기에 나서 시즌 성적 9승 10패 1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불미스러운 ‘손가락 욕설’ 파문을 일으켜 팬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경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김병현은 3차전 경기에 앞서 홈 팬들이 야유를 보내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행위로 큰 위기를 맞았다.
보스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김병현은 2005년 콜로라도로 둥지를 옮겼다. 본격적인 방랑생활의 시작이었다.
콜로라도(2005∼2007년)에서는 마무리가 아닌 선발로 뛴 김병현은 2007년에 플로리다로 트레이드 됐다가 방출된 뒤 애리조나로 잠시 복귀했다.
하지만 애리조나에서도 19일 만에 다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플로리다로 돌아가는 등 순탄치 않은 인생을 겪었다.
김병현은 2007년 세 차례 팀을 옮겨 다니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 투수로는 두 번째로 두자릿수 승수인 10승(8패)을 올리는 저력을 드러냈다.
메이저리그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김병현은 2008년에 피츠버그와 최대 200만 달러에 1년 계약을 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성적이 부진했던 탓에 시범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계약이 해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빅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던 김병현은 2010년 2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고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노렸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주전 선수 명단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그해 5월에는 미국 독립리그인 골든베이스볼리그의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서 재기를 꾀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정규 시즌 개막 직전인 4월 초에 왼쪽 발목을 다쳐 2군으로 내려가더니 결국 1군 경기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복귀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국내 무대를 택했다.
김병현에게는 최고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등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9시즌 동안 통산 394경기에 등판해 54승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3년간은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등 김병현의 야구 인생은 부침이 심했다.
김병현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의 인상적인 투구를 발판으로 성균관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2월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입단계약을 했다.
더블A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한 김병현은 기량을 인정받아 곧바로 트리플A 투산 사이더와인더스로 승격했다.
그러고는 바로 그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25경기에서 1승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61의 성적을 냈다.
이듬해 14세이브를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 김병현은 2001년 5승6패 19세이브를 작성하며 애리조나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티노 마르티네스, 데릭 지터, 스캇 브로셔스 등에게 연속으로 동점, 역전 홈런을 얻어맞아 메이저리그 팬의 뇌리에 불운한 투수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002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개인 최다인 36세이브를 남기며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해 내셔널리그 올스타에도 뽑히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병현은 2003시즌 중반 팀을 옮겼다. 애리조나에서 7경기를 뛴 뒤 보스턴으로 이적해 남은 시즌에서 49경기에 나서 시즌 성적 9승 10패 1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불미스러운 ‘손가락 욕설’ 파문을 일으켜 팬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경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김병현은 3차전 경기에 앞서 홈 팬들이 야유를 보내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행위로 큰 위기를 맞았다.
보스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김병현은 2005년 콜로라도로 둥지를 옮겼다. 본격적인 방랑생활의 시작이었다.
콜로라도(2005∼2007년)에서는 마무리가 아닌 선발로 뛴 김병현은 2007년에 플로리다로 트레이드 됐다가 방출된 뒤 애리조나로 잠시 복귀했다.
하지만 애리조나에서도 19일 만에 다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플로리다로 돌아가는 등 순탄치 않은 인생을 겪었다.
김병현은 2007년 세 차례 팀을 옮겨 다니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 투수로는 두 번째로 두자릿수 승수인 10승(8패)을 올리는 저력을 드러냈다.
메이저리그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김병현은 2008년에 피츠버그와 최대 200만 달러에 1년 계약을 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성적이 부진했던 탓에 시범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계약이 해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빅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던 김병현은 2010년 2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고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노렸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주전 선수 명단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그해 5월에는 미국 독립리그인 골든베이스볼리그의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서 재기를 꾀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정규 시즌 개막 직전인 4월 초에 왼쪽 발목을 다쳐 2군으로 내려가더니 결국 1군 경기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복귀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국내 무대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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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한국프로야구 마운드에 오르게 된 김병현(33)은 ‘풍운아’라는 별명처럼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병현에게는 최고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등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9시즌 동안 통산 394경기에 등판해 54승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3년간은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등 김병현의 야구 인생은 부침이 심했다.
김병현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의 인상적인 투구를 발판으로 성균관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2월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입단계약을 했다.
더블A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한 김병현은 기량을 인정받아 곧바로 트리플A 투산 사이더와인더스로 승격했다.
그러고는 바로 그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25경기에서 1승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61의 성적을 냈다.
이듬해 14세이브를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 김병현은 2001년 5승6패 19세이브를 작성하며 애리조나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티노 마르티네스, 데릭 지터, 스캇 브로셔스 등에게 연속으로 동점, 역전 홈런을 얻어맞아 메이저리그 팬의 뇌리에 불운한 투수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002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개인 최다인 36세이브를 남기며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해 내셔널리그 올스타에도 뽑히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병현은 2003시즌 중반 팀을 옮겼다. 애리조나에서 7경기를 뛴 뒤 보스턴으로 이적해 남은 시즌에서 49경기에 나서 시즌 성적 9승 10패 1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불미스러운 ‘손가락 욕설’ 파문을 일으켜 팬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경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김병현은 3차전 경기에 앞서 홈 팬들이 야유를 보내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행위로 큰 위기를 맞았다.
보스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김병현은 2005년 콜로라도로 둥지를 옮겼다. 본격적인 방랑생활의 시작이었다.
콜로라도(2005∼2007년)에서는 마무리가 아닌 선발로 뛴 김병현은 2007년에 플로리다로 트레이드 됐다가 방출된 뒤 애리조나로 잠시 복귀했다.
하지만 애리조나에서도 19일 만에 다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플로리다로 돌아가는 등 순탄치 않은 인생을 겪었다.
김병현은 2007년 세 차례 팀을 옮겨 다니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 투수로는 두 번째로 두자릿수 승수인 10승(8패)을 올리는 저력을 드러냈다.
메이저리그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김병현은 2008년에 피츠버그와 최대 200만 달러에 1년 계약을 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성적이 부진했던 탓에 시범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계약이 해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빅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던 김병현은 2010년 2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고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노렸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주전 선수 명단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그해 5월에는 미국 독립리그인 골든베이스볼리그의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서 재기를 꾀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정규 시즌 개막 직전인 4월 초에 왼쪽 발목을 다쳐 2군으로 내려가더니 결국 1군 경기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복귀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국내 무대를 택했다.
김병현에게는 최고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등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9시즌 동안 통산 394경기에 등판해 54승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3년간은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등 김병현의 야구 인생은 부침이 심했다.
김병현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의 인상적인 투구를 발판으로 성균관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2월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입단계약을 했다.
더블A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한 김병현은 기량을 인정받아 곧바로 트리플A 투산 사이더와인더스로 승격했다.
그러고는 바로 그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25경기에서 1승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61의 성적을 냈다.
이듬해 14세이브를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 김병현은 2001년 5승6패 19세이브를 작성하며 애리조나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티노 마르티네스, 데릭 지터, 스캇 브로셔스 등에게 연속으로 동점, 역전 홈런을 얻어맞아 메이저리그 팬의 뇌리에 불운한 투수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002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개인 최다인 36세이브를 남기며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해 내셔널리그 올스타에도 뽑히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병현은 2003시즌 중반 팀을 옮겼다. 애리조나에서 7경기를 뛴 뒤 보스턴으로 이적해 남은 시즌에서 49경기에 나서 시즌 성적 9승 10패 1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불미스러운 ‘손가락 욕설’ 파문을 일으켜 팬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경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김병현은 3차전 경기에 앞서 홈 팬들이 야유를 보내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행위로 큰 위기를 맞았다.
보스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김병현은 2005년 콜로라도로 둥지를 옮겼다. 본격적인 방랑생활의 시작이었다.
콜로라도(2005∼2007년)에서는 마무리가 아닌 선발로 뛴 김병현은 2007년에 플로리다로 트레이드 됐다가 방출된 뒤 애리조나로 잠시 복귀했다.
하지만 애리조나에서도 19일 만에 다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플로리다로 돌아가는 등 순탄치 않은 인생을 겪었다.
김병현은 2007년 세 차례 팀을 옮겨 다니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 투수로는 두 번째로 두자릿수 승수인 10승(8패)을 올리는 저력을 드러냈다.
메이저리그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김병현은 2008년에 피츠버그와 최대 200만 달러에 1년 계약을 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성적이 부진했던 탓에 시범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계약이 해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빅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던 김병현은 2010년 2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고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노렸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주전 선수 명단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그해 5월에는 미국 독립리그인 골든베이스볼리그의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서 재기를 꾀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정규 시즌 개막 직전인 4월 초에 왼쪽 발목을 다쳐 2군으로 내려가더니 결국 1군 경기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복귀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국내 무대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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