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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 “‘화차’와 함께 5년 보냈죠”
입력 2012.02.24 (14:21) 연합뉴스
변영주(46) 감독이 ’화차’를 들고 돌아왔다.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 ’낮은 목소리’(1995) 등 묵직한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은 변 감독은 극영화인 ’밀애’(2002), ’발레 교습소’(2004)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발레 교습소’ 이후 낸 작품은 다큐멘터리 두 편이 전부다. 7년 만에 돌아온 변 감독을 23일 통인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흥행에 실패한 감독이 뭔가 만들겠다고 애쓰며 7년이 지난 거죠. 2년은 집에서 책이나 읽으며 놀았고 5년은 ’화차’를 준비했어요. 2004년 12월에 ’발레교습소’를 끝내놓고 몇 달이 지났는데, 군입대해서 최전방 수색대에 있던 윤계상이 20장이 넘는 두툼한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 친구에게 내가 별 도움이 못 됐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반성의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읽은 게 ’화차’였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완전히 매혹됐죠. 그리고 2년 뒤 이 책의 판권을 영화계의 아는 선배가 샀다는 얘기를 듣고 ’이건 내가 해야 된다’고 나섰죠."



소설 ’화차’는 궁지에 몰린 한 여자가 다른 여자의 신분을 훔쳐 살아가다 한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사라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의 부탁으로 친척 형사가 여자의 정체를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장르지만, 1990년대 초반 일본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진 뒤 신용불량자 양산, 개인 파산, 채권추심 회사들의 무자비한 행태 등 어두운 사회현상이 복잡하게 얽히고 자본주의 욕망에 대한 성찰도 묵직하게 담긴 소설이다.



이런 작품을 영화화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시나리오 준비에만 3년이 걸렸어요. 20고까지 고쳐 썼는데, 그중에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시나리오도 9개나 돼요. 단편이 아닌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하면 필연적으로 길어지는데, 이렇게 모든 걸 나열하는 방식은 오히려 원작을 훼손하는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한다고는 생각 안했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가 버블경제가 붕괴된 시점의 일본이 아니라면 소설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거고요. 지금 신용카드나 사채 무서운 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때와는 많이 다르죠."



그래서 감독은 한 여자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어떤 메시지를 지혜롭게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상 밖으로 쫓겨난 어떤 여자가 어떤 일을 벌였는데, 그 일이 결국 세상 밖으로 그녀를 완전히 쫓아내는 결과를 내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녀의 약혼자를 주인공으로 세웠죠. 그녀가 되고 싶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녀의 꿈을 기억하고 있는 남자가 나오면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스터리의 주인공인 여배우를 캐스팅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김민희 씨는 처음에 걱정이 조금 되긴 했어요. 그런데 촬영하면서 두 가지 경험이 확신을 갖게 했는데, 과거 회상 장면을 위해 여고 체육복을 입혔는데, 그 느낌이 정말 잘 맞아서 놀랐어요. 또 얼굴이 손댄(성형수술한) 데가 없이 자연스러워서 클로즈업할수록 예쁜 얼굴이에요. 카메라를 갖다대면서 ’만세’를 불렀죠. 일부러 클로즈업 장면을 많이 늘렸고요."



그는 배우들에게 특히 고마움을 전했다.



"한여름에 70일 동안 54회차를 찍었는데, 예산이 넉넉하진 않지만 최대한 넓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절약할 수 있는 건 오직 시간뿐이었죠. 오늘 하루 동안 이걸 다 찍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는데, 배우들이 많이 고생스러웠을 텐데도 잘 따라줬어요. 또 제작비가 부족하단 얘길 듣고 먼저 행동해 준 게 개런티를 깎아준 거였어요.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한 감독을 믿고 자신을 희생한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영화 시사회를 하기에 앞서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를 찾아갔다.



"누구보다 그분이 가장 먼저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기뻤던 건 ’미미여사’(팬들이 붙인 미야베 미유키의 애칭)가 극찬을 해준 거예요. 자기 작품을 내가 다 (영화화)했으면 좋겠다고…(웃음). 또 그분이 ’화차’를 출간하고 몇 년 뒤에 문득 ’약혼자의 관점으로 쓴 버전은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일더라고요."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작품들처럼 극영화 역시 좀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표현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라, 그게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모른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비정규직이 불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는 것처럼요. 영화 속에서 이슈 파이팅을 하기보다는 그냥 이야기로 보여주고 싶어요. 그 뒷얘기는 학자나 사회운동가들이 해야 할 일이겠죠. 관객이 영화를 보고 뭔가를 배우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술 취한 아저씨가 봐도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도 주로 무거운 얘기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해보고 싶은 얘기는 언제나 두 가지 중 하나예요. 격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뜨거운 순간이거나 욕망에 가득 차 있다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사람이거나…. 용감한 사람, 훌륭한 사람, 불의와 싸우는 사람에는 관심 없어요. 그건 그냥 내가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이에요."



’화차’는 다음달 8일 개봉한다.
  • 변영주 감독 “‘화차’와 함께 5년 보냈죠”
    • 입력 2012-02-24 14:21:38
    연합뉴스
변영주(46) 감독이 ’화차’를 들고 돌아왔다.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 ’낮은 목소리’(1995) 등 묵직한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은 변 감독은 극영화인 ’밀애’(2002), ’발레 교습소’(2004)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발레 교습소’ 이후 낸 작품은 다큐멘터리 두 편이 전부다. 7년 만에 돌아온 변 감독을 23일 통인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흥행에 실패한 감독이 뭔가 만들겠다고 애쓰며 7년이 지난 거죠. 2년은 집에서 책이나 읽으며 놀았고 5년은 ’화차’를 준비했어요. 2004년 12월에 ’발레교습소’를 끝내놓고 몇 달이 지났는데, 군입대해서 최전방 수색대에 있던 윤계상이 20장이 넘는 두툼한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 친구에게 내가 별 도움이 못 됐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반성의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읽은 게 ’화차’였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완전히 매혹됐죠. 그리고 2년 뒤 이 책의 판권을 영화계의 아는 선배가 샀다는 얘기를 듣고 ’이건 내가 해야 된다’고 나섰죠."



소설 ’화차’는 궁지에 몰린 한 여자가 다른 여자의 신분을 훔쳐 살아가다 한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사라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의 부탁으로 친척 형사가 여자의 정체를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장르지만, 1990년대 초반 일본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진 뒤 신용불량자 양산, 개인 파산, 채권추심 회사들의 무자비한 행태 등 어두운 사회현상이 복잡하게 얽히고 자본주의 욕망에 대한 성찰도 묵직하게 담긴 소설이다.



이런 작품을 영화화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시나리오 준비에만 3년이 걸렸어요. 20고까지 고쳐 썼는데, 그중에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시나리오도 9개나 돼요. 단편이 아닌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하면 필연적으로 길어지는데, 이렇게 모든 걸 나열하는 방식은 오히려 원작을 훼손하는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한다고는 생각 안했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가 버블경제가 붕괴된 시점의 일본이 아니라면 소설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거고요. 지금 신용카드나 사채 무서운 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때와는 많이 다르죠."



그래서 감독은 한 여자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어떤 메시지를 지혜롭게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상 밖으로 쫓겨난 어떤 여자가 어떤 일을 벌였는데, 그 일이 결국 세상 밖으로 그녀를 완전히 쫓아내는 결과를 내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녀의 약혼자를 주인공으로 세웠죠. 그녀가 되고 싶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녀의 꿈을 기억하고 있는 남자가 나오면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스터리의 주인공인 여배우를 캐스팅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김민희 씨는 처음에 걱정이 조금 되긴 했어요. 그런데 촬영하면서 두 가지 경험이 확신을 갖게 했는데, 과거 회상 장면을 위해 여고 체육복을 입혔는데, 그 느낌이 정말 잘 맞아서 놀랐어요. 또 얼굴이 손댄(성형수술한) 데가 없이 자연스러워서 클로즈업할수록 예쁜 얼굴이에요. 카메라를 갖다대면서 ’만세’를 불렀죠. 일부러 클로즈업 장면을 많이 늘렸고요."



그는 배우들에게 특히 고마움을 전했다.



"한여름에 70일 동안 54회차를 찍었는데, 예산이 넉넉하진 않지만 최대한 넓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절약할 수 있는 건 오직 시간뿐이었죠. 오늘 하루 동안 이걸 다 찍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는데, 배우들이 많이 고생스러웠을 텐데도 잘 따라줬어요. 또 제작비가 부족하단 얘길 듣고 먼저 행동해 준 게 개런티를 깎아준 거였어요.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한 감독을 믿고 자신을 희생한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영화 시사회를 하기에 앞서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를 찾아갔다.



"누구보다 그분이 가장 먼저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기뻤던 건 ’미미여사’(팬들이 붙인 미야베 미유키의 애칭)가 극찬을 해준 거예요. 자기 작품을 내가 다 (영화화)했으면 좋겠다고…(웃음). 또 그분이 ’화차’를 출간하고 몇 년 뒤에 문득 ’약혼자의 관점으로 쓴 버전은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일더라고요."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작품들처럼 극영화 역시 좀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표현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라, 그게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모른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비정규직이 불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는 것처럼요. 영화 속에서 이슈 파이팅을 하기보다는 그냥 이야기로 보여주고 싶어요. 그 뒷얘기는 학자나 사회운동가들이 해야 할 일이겠죠. 관객이 영화를 보고 뭔가를 배우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술 취한 아저씨가 봐도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도 주로 무거운 얘기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해보고 싶은 얘기는 언제나 두 가지 중 하나예요. 격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뜨거운 순간이거나 욕망에 가득 차 있다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사람이거나…. 용감한 사람, 훌륭한 사람, 불의와 싸우는 사람에는 관심 없어요. 그건 그냥 내가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이에요."



’화차’는 다음달 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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