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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공간에 대한 관심 깨우고 싶어”
입력 2012.03.10 (10:28) 연합뉴스
다큐 영화 '말하는 건축가' 연출 정재은 감독



"외국에 가면 멋있는 건축가나 작품을 많이 구경하잖아요. 그런데 왜 한국은 그런 곳이 별로 없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는 건축 교육을 별로 안 하고 건축가에 대한 표상도 없는 것 같았어요. 건축에 대한 무관심이 공간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는 지난해 3월 타계한 건축가 정기용의 생전 1년을 담은 작품이다. 정기용이란 건축가 한 사람보다는 그가 가진 건축 문화와 공간 문화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며 우리 삶의 근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이런 특별한 다큐를 찍은 사람은 정재은 감독이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찍을 때부터 공간과 건축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는 '태풍태양'(2005) 이후 여러 극영화를 준비하다가 최근 2년여간 이 건축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지난 8일 전국 20개 상영관에서 '말하는 건축가'를 개봉한 정재은(43) 감독을 9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에게 건축가의 이미지는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인테리어 업자,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화려한 생활을 하고 바람을 피우는 허영의 이미지가 전부인 것 같더군요. 그런 공허한 이미지들이 우리 사회의 건축에 대한 무관심, 건축 문화의 부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건축 문화나 도시 환경 같은 것들도 분명히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건축 다큐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시사회를 비롯해 개봉 초기 반응은 감독의 그런 기대를 어느 정도 만족하게 해 주고 있다.



"관객들 반응이 정기용이란 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있지만, 한편으론 '내가 집과 동네와 공간들에 너무 관심을 안 가졌다' 그런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그들의 막연한 관심을 진지한 고민으로 이끌어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정기용은 건축계에서는 비주류에 가까웠지만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했고 국내 공공건축의 기념비적인 성과물인 '무주 공공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처음엔 다큐 주인공이 필요하니까 아는 분에게 소개를 받아 촬영을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이 분이 한 일이 정말 많고 오랫동안 사회적인 일을 한 분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감독 스스로도 이 다큐를 찍으며 건축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하게 됐다고 했다.



"분명히 '위대한 건축'이 있어요. 시간을 버텨내서 100년, 1천 년이 가도 빛을 발하는 그런 게 있는데, (정기용) 선생님이 만든 공간들을 가서 보면…, 그분의 건축이 위대한 건축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건물들을 보면서 위대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그 공간들은 당대에 그것을 이용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이거든요. 안성면사무소 할머니들에게는 사진 찍을 멋있는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냥 목욕탕이 필요한 거거든요. 선생님이 그런 얘길 듣고 건물에 넣은 게…그런 게 위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축가 정기용은 누구보다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한 건축가이기도 했다.



"그분이 만든 공간들의 특징은 풍경들 안에서 조화가 이뤄진다는 거예요. 언제나 어울림, 자연스러움 같은 가치를 추구하셨는데, 그런 덕목들이야말로 지금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의 촬영을 흔쾌히 응해준 것도 감독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처음에 '이게 끝이 언제 날지 모르겠다' '다큐는 긴 시간이 담겨 있을 때 관객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사실 다큐란 게 개인의 사생활과 일을 굉장히 귀찮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오케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자기 모습의 대부분을 공개해주셨죠. 많은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이게 하는 걸 원하는데, 선생님은 모두 다 보여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셨죠. '정말 자유로운 사람이다' 생각했고 그런 소통하는 모습, 개방적인 태도에 감동받았습니다."



감독은 건축가 정기용이 마치 선배 영화감독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다큐를 시작할 무렵엔 내가 영화를 못 찍고 있을 때였고 내 인생에서 영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위기의식을 상당히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 선생님이 고집스럽게 한우물을 파고 자기 생각을 지키면서 치열하게 사는 걸 옆에서 보고 나니까 강한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진데… 하는 그런 용기를 얻었어요."



공간에 대한 감독의 관심은 오랜 것이다. 첫 장편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을 때부터 감독은 공간적 배경인 인천이라는 도시가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공간적 관심을 더 발전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말하는 건축가'를 잇는 건축 다큐 2탄, 3탄도 구상 중이다.
  • “우리 사는 공간에 대한 관심 깨우고 싶어”
    • 입력 2012-03-10 10:28:29
    연합뉴스
다큐 영화 '말하는 건축가' 연출 정재은 감독



"외국에 가면 멋있는 건축가나 작품을 많이 구경하잖아요. 그런데 왜 한국은 그런 곳이 별로 없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는 건축 교육을 별로 안 하고 건축가에 대한 표상도 없는 것 같았어요. 건축에 대한 무관심이 공간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는 지난해 3월 타계한 건축가 정기용의 생전 1년을 담은 작품이다. 정기용이란 건축가 한 사람보다는 그가 가진 건축 문화와 공간 문화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며 우리 삶의 근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이런 특별한 다큐를 찍은 사람은 정재은 감독이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찍을 때부터 공간과 건축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는 '태풍태양'(2005) 이후 여러 극영화를 준비하다가 최근 2년여간 이 건축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지난 8일 전국 20개 상영관에서 '말하는 건축가'를 개봉한 정재은(43) 감독을 9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에게 건축가의 이미지는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인테리어 업자,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화려한 생활을 하고 바람을 피우는 허영의 이미지가 전부인 것 같더군요. 그런 공허한 이미지들이 우리 사회의 건축에 대한 무관심, 건축 문화의 부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건축 문화나 도시 환경 같은 것들도 분명히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건축 다큐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시사회를 비롯해 개봉 초기 반응은 감독의 그런 기대를 어느 정도 만족하게 해 주고 있다.



"관객들 반응이 정기용이란 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있지만, 한편으론 '내가 집과 동네와 공간들에 너무 관심을 안 가졌다' 그런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그들의 막연한 관심을 진지한 고민으로 이끌어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정기용은 건축계에서는 비주류에 가까웠지만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했고 국내 공공건축의 기념비적인 성과물인 '무주 공공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처음엔 다큐 주인공이 필요하니까 아는 분에게 소개를 받아 촬영을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이 분이 한 일이 정말 많고 오랫동안 사회적인 일을 한 분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감독 스스로도 이 다큐를 찍으며 건축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하게 됐다고 했다.



"분명히 '위대한 건축'이 있어요. 시간을 버텨내서 100년, 1천 년이 가도 빛을 발하는 그런 게 있는데, (정기용) 선생님이 만든 공간들을 가서 보면…, 그분의 건축이 위대한 건축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건물들을 보면서 위대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그 공간들은 당대에 그것을 이용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이거든요. 안성면사무소 할머니들에게는 사진 찍을 멋있는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냥 목욕탕이 필요한 거거든요. 선생님이 그런 얘길 듣고 건물에 넣은 게…그런 게 위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축가 정기용은 누구보다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한 건축가이기도 했다.



"그분이 만든 공간들의 특징은 풍경들 안에서 조화가 이뤄진다는 거예요. 언제나 어울림, 자연스러움 같은 가치를 추구하셨는데, 그런 덕목들이야말로 지금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의 촬영을 흔쾌히 응해준 것도 감독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처음에 '이게 끝이 언제 날지 모르겠다' '다큐는 긴 시간이 담겨 있을 때 관객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사실 다큐란 게 개인의 사생활과 일을 굉장히 귀찮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오케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자기 모습의 대부분을 공개해주셨죠. 많은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이게 하는 걸 원하는데, 선생님은 모두 다 보여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셨죠. '정말 자유로운 사람이다' 생각했고 그런 소통하는 모습, 개방적인 태도에 감동받았습니다."



감독은 건축가 정기용이 마치 선배 영화감독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다큐를 시작할 무렵엔 내가 영화를 못 찍고 있을 때였고 내 인생에서 영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위기의식을 상당히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 선생님이 고집스럽게 한우물을 파고 자기 생각을 지키면서 치열하게 사는 걸 옆에서 보고 나니까 강한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진데… 하는 그런 용기를 얻었어요."



공간에 대한 감독의 관심은 오랜 것이다. 첫 장편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을 때부터 감독은 공간적 배경인 인천이라는 도시가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공간적 관심을 더 발전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말하는 건축가'를 잇는 건축 다큐 2탄, 3탄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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