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전격 은퇴를 선언한 이종범(42)이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고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종범은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를 결정한 배경과 심경 등을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종범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로 팬과 선후배, 구단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며 "그러나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부터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옷을 벗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번 시즌 주전 자리가 보장됐더라도 4, 5월까지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은퇴를 얘기할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뷔하던 해인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것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에서 2루타를 쳐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선수 생활 중에 힘들었던 기억으로는 일본에서 활약할 때 팔꿈치 부상으로 부진을 겪었던 일과 국내로 복귀한 후 얼굴에 공을 맞아 부상한 일을 떠올렸다.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던 이종범은 가족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난 행복한 선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기록으로 한 시즌(1994년) 최다 도루(84개)를 꼽으면서 "야구 선수인 아들이 그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종범은 "언젠가는 다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밝힌 뒤 "정말 감사했다. 사랑한다"며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종범은 1993년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프로 무대를 밟았다.
데뷔 첫해부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이종범은 타이거즈와 함께 4차례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이듬해인 1994시즌에는 MVP, 타격 4관왕, 골든글러브 등을 휩쓸었다.
1997년 해태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이종범은 1998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하지만 일본 무대에서 팔꿈치 부상 등으로 고전하다가 2001년 8월 해태가 KIA로 인수될 때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이종범은 2002년과 2003년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03년에 도루상을 받는 등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2009시즌에는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무대에서 1천706경기에 출장해 1천797안타를 때려 통산타율은 0.297이다.
또 194홈런에 510도루, 730타점, 1천100득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과 일본 무대 통산으로 2천 안타를 돌파했다.
이종범은 애초 올 시즌에도 뛰기로 했다가 지난달 31일 시범경기를 끝낸 뒤 코칭 스태프와의 면담을 통해 갑자기 은퇴의사를 밝혔다.
이종범은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를 결정한 배경과 심경 등을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종범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로 팬과 선후배, 구단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며 "그러나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부터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옷을 벗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번 시즌 주전 자리가 보장됐더라도 4, 5월까지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은퇴를 얘기할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뷔하던 해인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것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에서 2루타를 쳐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선수 생활 중에 힘들었던 기억으로는 일본에서 활약할 때 팔꿈치 부상으로 부진을 겪었던 일과 국내로 복귀한 후 얼굴에 공을 맞아 부상한 일을 떠올렸다.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던 이종범은 가족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난 행복한 선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기록으로 한 시즌(1994년) 최다 도루(84개)를 꼽으면서 "야구 선수인 아들이 그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종범은 "언젠가는 다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밝힌 뒤 "정말 감사했다. 사랑한다"며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종범은 1993년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프로 무대를 밟았다.
데뷔 첫해부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이종범은 타이거즈와 함께 4차례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이듬해인 1994시즌에는 MVP, 타격 4관왕, 골든글러브 등을 휩쓸었다.
1997년 해태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이종범은 1998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하지만 일본 무대에서 팔꿈치 부상 등으로 고전하다가 2001년 8월 해태가 KIA로 인수될 때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이종범은 2002년과 2003년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03년에 도루상을 받는 등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2009시즌에는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무대에서 1천706경기에 출장해 1천797안타를 때려 통산타율은 0.297이다.
또 194홈런에 510도루, 730타점, 1천100득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과 일본 무대 통산으로 2천 안타를 돌파했다.
이종범은 애초 올 시즌에도 뛰기로 했다가 지난달 31일 시범경기를 끝낸 뒤 코칭 스태프와의 면담을 통해 갑자기 은퇴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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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는 이종범 “난 행복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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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4-05 22:37:37
지난달 31일 전격 은퇴를 선언한 이종범(42)이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고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종범은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를 결정한 배경과 심경 등을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종범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로 팬과 선후배, 구단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며 "그러나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부터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옷을 벗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번 시즌 주전 자리가 보장됐더라도 4, 5월까지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은퇴를 얘기할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뷔하던 해인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것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에서 2루타를 쳐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선수 생활 중에 힘들었던 기억으로는 일본에서 활약할 때 팔꿈치 부상으로 부진을 겪었던 일과 국내로 복귀한 후 얼굴에 공을 맞아 부상한 일을 떠올렸다.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던 이종범은 가족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난 행복한 선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기록으로 한 시즌(1994년) 최다 도루(84개)를 꼽으면서 "야구 선수인 아들이 그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종범은 "언젠가는 다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밝힌 뒤 "정말 감사했다. 사랑한다"며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종범은 1993년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프로 무대를 밟았다.
데뷔 첫해부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이종범은 타이거즈와 함께 4차례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이듬해인 1994시즌에는 MVP, 타격 4관왕, 골든글러브 등을 휩쓸었다.
1997년 해태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이종범은 1998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하지만 일본 무대에서 팔꿈치 부상 등으로 고전하다가 2001년 8월 해태가 KIA로 인수될 때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이종범은 2002년과 2003년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03년에 도루상을 받는 등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2009시즌에는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무대에서 1천706경기에 출장해 1천797안타를 때려 통산타율은 0.297이다.
또 194홈런에 510도루, 730타점, 1천100득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과 일본 무대 통산으로 2천 안타를 돌파했다.
이종범은 애초 올 시즌에도 뛰기로 했다가 지난달 31일 시범경기를 끝낸 뒤 코칭 스태프와의 면담을 통해 갑자기 은퇴의사를 밝혔다.
이종범은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를 결정한 배경과 심경 등을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종범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로 팬과 선후배, 구단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며 "그러나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부터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옷을 벗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번 시즌 주전 자리가 보장됐더라도 4, 5월까지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은퇴를 얘기할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뷔하던 해인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것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에서 2루타를 쳐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선수 생활 중에 힘들었던 기억으로는 일본에서 활약할 때 팔꿈치 부상으로 부진을 겪었던 일과 국내로 복귀한 후 얼굴에 공을 맞아 부상한 일을 떠올렸다.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던 이종범은 가족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난 행복한 선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기록으로 한 시즌(1994년) 최다 도루(84개)를 꼽으면서 "야구 선수인 아들이 그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종범은 "언젠가는 다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밝힌 뒤 "정말 감사했다. 사랑한다"며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종범은 1993년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프로 무대를 밟았다.
데뷔 첫해부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이종범은 타이거즈와 함께 4차례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이듬해인 1994시즌에는 MVP, 타격 4관왕, 골든글러브 등을 휩쓸었다.
1997년 해태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이종범은 1998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하지만 일본 무대에서 팔꿈치 부상 등으로 고전하다가 2001년 8월 해태가 KIA로 인수될 때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이종범은 2002년과 2003년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03년에 도루상을 받는 등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2009시즌에는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무대에서 1천706경기에 출장해 1천797안타를 때려 통산타율은 0.297이다.
또 194홈런에 510도루, 730타점, 1천100득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과 일본 무대 통산으로 2천 안타를 돌파했다.
이종범은 애초 올 시즌에도 뛰기로 했다가 지난달 31일 시범경기를 끝낸 뒤 코칭 스태프와의 면담을 통해 갑자기 은퇴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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