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여수엑스포 준비 끝…개막만 남았다

입력 2012.05.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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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수 엑스포 마스코트인 여니와 수니입니다.



여수의 ’여’와 ’수’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해양박람회답게 물방울과 플랑크톤을 모티브 삼아 바다의 빛깔과 자원을 표현했습니다.



개막을 사흘 앞둔 오늘 모든 전시관이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배태휴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는 12일부터 93일간 꿈꾸는 바다 이야기를 들려 줄 여수세계엑스포.



주제관을 비롯한 모든 전시관들이 말끔하게 단장을 마쳤습니다.



알프스의 비경을 소개하는 스위스관, 소중한 물의 원천인 만년설의 빙하를 보여줍니다.



높아지는 해수면과 투쟁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네덜란드인들의 환경보전의지가 감동을 자아냅니다.



<인터뷰> 폴정(네달란드 관장) : "수세기 동안 물과 싸워왔으나 이제 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지구의 위기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첨단 기술을 통한 미래 비전도 제시됩니다.



아크릴과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로봇 물고기 피로는 수족관을 자유자재로 헤엄칩니다.



환상의 정원에서 거대한 꽃과 풀 사이를 거닐며 춤 솜씨를 자랑하는 요정들도 인깁니다.



<인터뷰> 김진희(롯데관) : "판타지 가든에서 4명의 요정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즐기는 공간입니다."



세 차례의 예행연습으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여수엑스포는 역사적인 개막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엑스포는 인류의 문화와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는데요.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이윤희 기자가 그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이곳은 여수 엑스포의 화려한 개막식이 펼쳐질 빅오 해상무대입니다.



이번 엑스포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주제로 한 해양박람회인데요.



80개 전시시설을 통해 해양문명의 발전상과 함께 최첨단 해양산업 기술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이처럼 박람회는 지난 160년 동안 당대 최고의 기술과 문화를 선보이며 인류문명의 진보를 이끌어왔습니다.



국제박람회의 효시는 1851년 런던 박람회입니다.



유리와 철골로 만들어진 수정궁 박람회장에서 증기기관차 등 영국 산업혁명의 성과들이 공개됐습니다.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선 전화기가 처음 소개됐고,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선 박람회장 출입구로 에펠탑이 건설돼 세계적 명소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는 자동차와 비행기가 실용화되는 계기가 됐고 1939년 뉴욕박람회에선 텔레비전이 처음 소개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첫 엑스포 참가는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입니다.



박람회 참가 100년 만인 1993년 국제 공인 박람회인 대전엑스포를 치렀는데요.



곽영지 기자가 대전엑스포의 성과와 문제점을 되짚어봤습니다.



<리포트>



관람객 천 4백여만명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대전엑스포 과학공원, 한빛탑의 위용은 여전하지만, 19년이 흐른 지금 전시장 내부는 썰렁하기 그지없습니다.



14개 전시관 가운데 5개 전시관이 적자 운영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 입장객은 2천7백명 수준에서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형선(대전 시민) : "항상 같은 행사를 반복해야 한다고 해야 하나 확 사람들을 끌어 잡을 키 포인트가 없는 것 같고..."



민간기업과 대전시가 번갈아가며 전시관을 운영하지만, 운영미숙과 재투자가 안돼,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 박준용(배재대 관광경영학부 교수) : "관리나 운영측면에서 상시적으로 지역정부에서 하는 데는 한계점을 보였다고 볼 수 있죠."



대전시는 엑스포 재창조라는 기치 아래 대기업을 유치해, 복합테마파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공공성을 잃게 된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2년 전 상하이 엑스포는 사상 최대 관람객을 모으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13억 거대시장의 도움도 컸지만 정부와 국민이 성공 엑스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열정’이 진정한 성공의 열쇠라는 분석입니다.



상하이에서 손관수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사상 최대인 246개의 국가와 국제기구의 참여.



사상 최고인 7천3백만의 관람객 유치.



상하이 엑스포는 G-2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유감없이 보여준 세계적 축제였습니다.



13억의 인구, 거대 시장이라는 기본 조건을 조화롭게 엮어내 빛나는 성공으로 이끈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한번 해보자’는 정부와 국민들의 넘치는 열정입니다.



상하이 엑스포는 상하이시만의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두치위(상하이 사회과학원) : "지금 경험적으로 결론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 상하이시의, 전 중국의 힘을 모아’ 하나의 일 (상하이 세계박람회)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자원 봉사자들의 열의와 헌신은 상하이라는 도시의 행사를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양지앤롱(상하이 사범대 교수) : "작은 배추’라고 불린 자원봉사자들, 대학생, 또 주동적으로 참여한 사람들, 이들이 정말로 잘해냈다는 겁니다. 이러한 봉사정신, 서비스정신이 상하이의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죠."



관람객의 불편을 최소화한 원활한 현장 진행 역시 성공의 또다른 비결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중국관 등 6개 나라의 국가관은 상하이 엑스포의 사후 관리도 성공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손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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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여수엑스포 준비 끝…개막만 남았다
    • 입력 2012-05-09 21: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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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수 엑스포 마스코트인 여니와 수니입니다.

여수의 ’여’와 ’수’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해양박람회답게 물방울과 플랑크톤을 모티브 삼아 바다의 빛깔과 자원을 표현했습니다.

개막을 사흘 앞둔 오늘 모든 전시관이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배태휴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는 12일부터 93일간 꿈꾸는 바다 이야기를 들려 줄 여수세계엑스포.

주제관을 비롯한 모든 전시관들이 말끔하게 단장을 마쳤습니다.

알프스의 비경을 소개하는 스위스관, 소중한 물의 원천인 만년설의 빙하를 보여줍니다.

높아지는 해수면과 투쟁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네덜란드인들의 환경보전의지가 감동을 자아냅니다.

<인터뷰> 폴정(네달란드 관장) : "수세기 동안 물과 싸워왔으나 이제 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지구의 위기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첨단 기술을 통한 미래 비전도 제시됩니다.

아크릴과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로봇 물고기 피로는 수족관을 자유자재로 헤엄칩니다.

환상의 정원에서 거대한 꽃과 풀 사이를 거닐며 춤 솜씨를 자랑하는 요정들도 인깁니다.

<인터뷰> 김진희(롯데관) : "판타지 가든에서 4명의 요정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즐기는 공간입니다."

세 차례의 예행연습으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여수엑스포는 역사적인 개막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엑스포는 인류의 문화와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는데요.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이윤희 기자가 그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이곳은 여수 엑스포의 화려한 개막식이 펼쳐질 빅오 해상무대입니다.

이번 엑스포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주제로 한 해양박람회인데요.

80개 전시시설을 통해 해양문명의 발전상과 함께 최첨단 해양산업 기술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이처럼 박람회는 지난 160년 동안 당대 최고의 기술과 문화를 선보이며 인류문명의 진보를 이끌어왔습니다.

국제박람회의 효시는 1851년 런던 박람회입니다.

유리와 철골로 만들어진 수정궁 박람회장에서 증기기관차 등 영국 산업혁명의 성과들이 공개됐습니다.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선 전화기가 처음 소개됐고,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선 박람회장 출입구로 에펠탑이 건설돼 세계적 명소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는 자동차와 비행기가 실용화되는 계기가 됐고 1939년 뉴욕박람회에선 텔레비전이 처음 소개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첫 엑스포 참가는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입니다.

박람회 참가 100년 만인 1993년 국제 공인 박람회인 대전엑스포를 치렀는데요.

곽영지 기자가 대전엑스포의 성과와 문제점을 되짚어봤습니다.

<리포트>

관람객 천 4백여만명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대전엑스포 과학공원, 한빛탑의 위용은 여전하지만, 19년이 흐른 지금 전시장 내부는 썰렁하기 그지없습니다.

14개 전시관 가운데 5개 전시관이 적자 운영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 입장객은 2천7백명 수준에서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형선(대전 시민) : "항상 같은 행사를 반복해야 한다고 해야 하나 확 사람들을 끌어 잡을 키 포인트가 없는 것 같고..."

민간기업과 대전시가 번갈아가며 전시관을 운영하지만, 운영미숙과 재투자가 안돼,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인터뷰> 박준용(배재대 관광경영학부 교수) : "관리나 운영측면에서 상시적으로 지역정부에서 하는 데는 한계점을 보였다고 볼 수 있죠."

대전시는 엑스포 재창조라는 기치 아래 대기업을 유치해, 복합테마파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공공성을 잃게 된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2년 전 상하이 엑스포는 사상 최대 관람객을 모으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13억 거대시장의 도움도 컸지만 정부와 국민이 성공 엑스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열정’이 진정한 성공의 열쇠라는 분석입니다.

상하이에서 손관수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사상 최대인 246개의 국가와 국제기구의 참여.

사상 최고인 7천3백만의 관람객 유치.

상하이 엑스포는 G-2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유감없이 보여준 세계적 축제였습니다.

13억의 인구, 거대 시장이라는 기본 조건을 조화롭게 엮어내 빛나는 성공으로 이끈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한번 해보자’는 정부와 국민들의 넘치는 열정입니다.

상하이 엑스포는 상하이시만의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두치위(상하이 사회과학원) : "지금 경험적으로 결론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 상하이시의, 전 중국의 힘을 모아’ 하나의 일 (상하이 세계박람회)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자원 봉사자들의 열의와 헌신은 상하이라는 도시의 행사를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양지앤롱(상하이 사범대 교수) : "작은 배추’라고 불린 자원봉사자들, 대학생, 또 주동적으로 참여한 사람들, 이들이 정말로 잘해냈다는 겁니다. 이러한 봉사정신, 서비스정신이 상하이의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죠."

관람객의 불편을 최소화한 원활한 현장 진행 역시 성공의 또다른 비결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중국관 등 6개 나라의 국가관은 상하이 엑스포의 사후 관리도 성공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손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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