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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이제 시작”…‘유해 봉환’ 과제는?
입력 2012.05.25 (22:00)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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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당시 국군 사망자는 13만 7천명, 실종자는 2만 3천명으로 모두 합치면 16만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현충원에 안장된 사람은 3만 명 정도로 아직도 13만 명의 유해는 발굴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과정을 거쳐 12구의 유해가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전사자의 넋을 달래고 유가족의 슬픔을 가볍게 해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계속해서 박진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북진 통일의 꿈이 가까워졌던 1950년 11월.

예기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UN군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특히 개마고원 근처 장진호 전투에서 미 7사단은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 2천5백 명이 한꺼번에 전사했습니다.

62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이갑수 일병도 이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34살의 늦은 나이에 부인과 어린 두 자매를 뒤로하고 카투사로 배속돼 전장에 뛰어든 이 일병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숙자(故 이갑수 일병 딸) : "정부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고 아버지라 는 존재를 또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18살 어린 나이로 형과 함께 학도병으로 입대한 고 김용수 일병.

같이 남쪽에 남자는 형의 설득을 뿌리치고 북진했다가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인터뷰> 김해승(故 김용수 일병 장조카) : "작은아버지(故 김용수 일병)께서는 '형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 저는 북으로 전쟁하러 간다. 나라를 지키겠다'하고 올라가시고 바로 전사하셨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국군 전사자 유가족들은 60년이 지나도록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지역과 비무장지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4만여 구의 국군 유해는 찾을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경색된 남북 관계 때문입니다.

<녹취> 박신한(대령/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 "북한에 있는 국군 전사자에 대해서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매년 자료를 수집하고 있고 매년 공동발굴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남한 땅에 묻혀 있는 유해 발굴 사업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국내에서 지난 2천 년부터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는 6천구 정도.

하지만,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돼 유가족을 찾은 용사는 77명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유해 발굴을 위한 예산과 장비를 더 늘리고 신원을 빠른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유가족 유전자 채취 사업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KBS 뉴스 박진영입니다.
  • [심층취재] “이제 시작”…‘유해 봉환’ 과제는?
    • 입력 2012-05-25 22:00:23
    뉴스 9
<앵커 멘트>

6.25 전쟁 당시 국군 사망자는 13만 7천명, 실종자는 2만 3천명으로 모두 합치면 16만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현충원에 안장된 사람은 3만 명 정도로 아직도 13만 명의 유해는 발굴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과정을 거쳐 12구의 유해가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전사자의 넋을 달래고 유가족의 슬픔을 가볍게 해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계속해서 박진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북진 통일의 꿈이 가까워졌던 1950년 11월.

예기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UN군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특히 개마고원 근처 장진호 전투에서 미 7사단은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 2천5백 명이 한꺼번에 전사했습니다.

62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이갑수 일병도 이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34살의 늦은 나이에 부인과 어린 두 자매를 뒤로하고 카투사로 배속돼 전장에 뛰어든 이 일병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숙자(故 이갑수 일병 딸) : "정부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고 아버지라 는 존재를 또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18살 어린 나이로 형과 함께 학도병으로 입대한 고 김용수 일병.

같이 남쪽에 남자는 형의 설득을 뿌리치고 북진했다가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인터뷰> 김해승(故 김용수 일병 장조카) : "작은아버지(故 김용수 일병)께서는 '형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 저는 북으로 전쟁하러 간다. 나라를 지키겠다'하고 올라가시고 바로 전사하셨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국군 전사자 유가족들은 60년이 지나도록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지역과 비무장지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4만여 구의 국군 유해는 찾을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경색된 남북 관계 때문입니다.

<녹취> 박신한(대령/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 "북한에 있는 국군 전사자에 대해서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매년 자료를 수집하고 있고 매년 공동발굴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남한 땅에 묻혀 있는 유해 발굴 사업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국내에서 지난 2천 년부터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는 6천구 정도.

하지만,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돼 유가족을 찾은 용사는 77명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유해 발굴을 위한 예산과 장비를 더 늘리고 신원을 빠른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유가족 유전자 채취 사업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KBS 뉴스 박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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