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꽃등 밝히는 까닭
입력 2012.05.28 (09:05)
수정 2012.05.2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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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객원해설위원]
부처님 오신 날 아침입니다. 딱히 불교의 신도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절을 찾아 꽃등 사이를 걷고 싶도록 봄도 무르익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연등회가 중요무형문화재로 공식 지정된 뒤 처음 맞는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봉축행사들이 정성스럽게 치러지는 분위깁니다.
진흙 속에서 맑고 향기롭게 피어나는 연꽃의 모습을 하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곱고 밝은 등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오탁악세의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만, 깨달음을 성취하고 45년의 세월을 중생의 무명을 밝히는 등불로 사셨지요. 그 등불을 후세에 전하는 상징, 그것이 연등을 밝히는 뜻일 겁니다. 연등회가 시작된 건 고려시대라지요? 천년의 역사가 유구합니다. 하지만 조선 500년 배불의 역사와 일제 강점기를 감안하면 지금 우리 불교는 병상에서 겨우 일어나 지팡이를 의지해 걷는 환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성치 않은데도 지는 숙제는 여럿입니다. 밖으로는 세계적으로 확산돼가는 불교 속에서 우리 불교의 위상을 정립해야 하고, 안으로는 부처의 정신과 삶을 회복하고 구현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밥을 빌고 기운 옷을 입으며 ‘성스러운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불교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무소유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층 승려들의 도박 추문사건과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종정스님이 두 차례나 참회의 입장을 밝히고 발 빠른 후속조치들이 나오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다지 신뢰를 보내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의 의식주가 부처의 삶과는 멀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쇄신위원회’ 구성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무소유 정신의 회복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가자는 수행과 전법을 전담하고 재가자는 관리운영과 신행활동을 나눠 맡자”는 승가 일각의 주장이 그래서 솔깃하게 들립니다.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개혁을 모색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리고 명실 공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비의 불교로 거듭나야 한다는 숙제도 있습니다. 진제 조계종 종정스님도 부처님 오신 날 법어에서 “안으로는 참 나를 찾는데 게으름이 없고, 밖으로는 남을 돕고 베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요약했습니다. 지혜와 자비의 광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가 켜는 등불이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자비의 등불이어야겠지요.
부처님 오신 날 아침입니다. 딱히 불교의 신도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절을 찾아 꽃등 사이를 걷고 싶도록 봄도 무르익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연등회가 중요무형문화재로 공식 지정된 뒤 처음 맞는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봉축행사들이 정성스럽게 치러지는 분위깁니다.
진흙 속에서 맑고 향기롭게 피어나는 연꽃의 모습을 하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곱고 밝은 등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오탁악세의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만, 깨달음을 성취하고 45년의 세월을 중생의 무명을 밝히는 등불로 사셨지요. 그 등불을 후세에 전하는 상징, 그것이 연등을 밝히는 뜻일 겁니다. 연등회가 시작된 건 고려시대라지요? 천년의 역사가 유구합니다. 하지만 조선 500년 배불의 역사와 일제 강점기를 감안하면 지금 우리 불교는 병상에서 겨우 일어나 지팡이를 의지해 걷는 환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성치 않은데도 지는 숙제는 여럿입니다. 밖으로는 세계적으로 확산돼가는 불교 속에서 우리 불교의 위상을 정립해야 하고, 안으로는 부처의 정신과 삶을 회복하고 구현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밥을 빌고 기운 옷을 입으며 ‘성스러운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불교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무소유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층 승려들의 도박 추문사건과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종정스님이 두 차례나 참회의 입장을 밝히고 발 빠른 후속조치들이 나오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다지 신뢰를 보내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의 의식주가 부처의 삶과는 멀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쇄신위원회’ 구성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무소유 정신의 회복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가자는 수행과 전법을 전담하고 재가자는 관리운영과 신행활동을 나눠 맡자”는 승가 일각의 주장이 그래서 솔깃하게 들립니다.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개혁을 모색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리고 명실 공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비의 불교로 거듭나야 한다는 숙제도 있습니다. 진제 조계종 종정스님도 부처님 오신 날 법어에서 “안으로는 참 나를 찾는데 게으름이 없고, 밖으로는 남을 돕고 베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요약했습니다. 지혜와 자비의 광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가 켜는 등불이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자비의 등불이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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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5-28 09:05:50
- 수정2012-05-28 10:09:33
[김용관 객원해설위원]
부처님 오신 날 아침입니다. 딱히 불교의 신도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절을 찾아 꽃등 사이를 걷고 싶도록 봄도 무르익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연등회가 중요무형문화재로 공식 지정된 뒤 처음 맞는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봉축행사들이 정성스럽게 치러지는 분위깁니다.
진흙 속에서 맑고 향기롭게 피어나는 연꽃의 모습을 하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곱고 밝은 등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오탁악세의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만, 깨달음을 성취하고 45년의 세월을 중생의 무명을 밝히는 등불로 사셨지요. 그 등불을 후세에 전하는 상징, 그것이 연등을 밝히는 뜻일 겁니다. 연등회가 시작된 건 고려시대라지요? 천년의 역사가 유구합니다. 하지만 조선 500년 배불의 역사와 일제 강점기를 감안하면 지금 우리 불교는 병상에서 겨우 일어나 지팡이를 의지해 걷는 환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성치 않은데도 지는 숙제는 여럿입니다. 밖으로는 세계적으로 확산돼가는 불교 속에서 우리 불교의 위상을 정립해야 하고, 안으로는 부처의 정신과 삶을 회복하고 구현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밥을 빌고 기운 옷을 입으며 ‘성스러운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불교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무소유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층 승려들의 도박 추문사건과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종정스님이 두 차례나 참회의 입장을 밝히고 발 빠른 후속조치들이 나오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다지 신뢰를 보내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의 의식주가 부처의 삶과는 멀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쇄신위원회’ 구성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무소유 정신의 회복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가자는 수행과 전법을 전담하고 재가자는 관리운영과 신행활동을 나눠 맡자”는 승가 일각의 주장이 그래서 솔깃하게 들립니다.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개혁을 모색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리고 명실 공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비의 불교로 거듭나야 한다는 숙제도 있습니다. 진제 조계종 종정스님도 부처님 오신 날 법어에서 “안으로는 참 나를 찾는데 게으름이 없고, 밖으로는 남을 돕고 베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요약했습니다. 지혜와 자비의 광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가 켜는 등불이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자비의 등불이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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