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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북한] 북한 권력의 마지막 안식처 ‘열사릉’
입력 2012.06.02 (10:21)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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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북한은 최근 북한 전역에 우리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이른바 ‘열사릉’을 추가로 10개나 건설했습니다.

북한은 또 수도 평양에도 김일성 일가와 북한 정권에 기여한 인물들을 위한 묘지를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북한 열사릉에 대해 자세히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북한 서해 최전방 지역인 초도의 교사와 학생들이 지난달 18일 평양을 방문했다.

지난 3월 김정은 제 1 비서가 초도 방어대를 방문한지 두 달 만에 이들을 평양으로 초대한 것이다.

초도 학생들은 평양 곳곳을 둘러봤다. 지난해 개장한 개선청년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중앙동물원에서는 각종 동물들도 구경했다.

초도 학생들은 또 다음 날 북한의 국립묘지인 대성산 혁명열사릉를 찾았다.

저마다 꽃을 든 학생들은 김일성 주석의 첫 번째 부인 김정숙의 묘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북한 매체는 초도 학생들의 대성산 열사릉 참배 장면을 자세히 보도했다.

<인터뷰> 정영철(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혁명열사릉은 북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곳이고요, 모든 국민들에게 충성심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지방의 학생들이 평양에 견학을 왔을 때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 중 하나가 혁명열사릉이고, 그 곳에 참배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충성심을 보이는 것, 혹은 어린 학생들은 애국심을 기르는 중요한 공간이 되는 것이죠."

북한은 지난 1975년 노동당 창당 30주년을 기념해 평양 대성산에 혁명열사릉을 새로 조성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북한 제1의 국립묘지로, 일제 시기 만주에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다고 인정한 인사들의 유해를 안장됐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장) : "북한에는 우리나라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국가가 관리하는 공동묘지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성산 혁명열사릉이고요. 또 하나는 신미동에 있는 애국열사릉입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에는 북한에서 말하는 이른바 항일 혁명 운동 시기에 희생된 내지는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가장 공이 높은 사람들을 선별해서 안장한 그런 곳입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총 9개의 단을 조성해 약 160구의 유해를 사망 시기에 따라 안장하고 있다.

개별 묘에는 생전 업적을 기록한 비석과 함께 반신상을 세웠다.

그러나 가장 높은 단을 차지한 것은 김일성 일가와 최측근들의 묘다.

사망시기와 상관없이 김일성의 첫 번째 아내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묘를 가운데에 놓고, 그 왼편에는 김책 전 부수상, 오른편에는 강건 북한군 총참모장 등 김일성의 최측근의 묘들이 차지하고 있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장) : "가장 중앙 윗단에 김정숙이 위치하고 있고요. 그 좌우로 김책, 최용건 등 북한 정권 탄생에 공이 많았던 사람들이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 안장하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은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직속 당 역사 연구소에서 나름의 어떤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안장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 혁명열사릉에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넓은 마당에 놓인 대형 비석의 비문은 김일성 주석의 친필로, 대문에 붙은 현판은 김정일 위원장이 친필로 알려졌다.

김일성은 사후 혁명열사릉에 묻히길 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생전 바람과 달리 김일성 주석은 사후 금수산의사당에 안치됐다.

김일성이 사망한 다음해인 1995년, 김정일은 금수산 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칭하고 대대적인 공사를 단행했다.

<녹취> 조선중앙TV (1996년 5월 1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금수산 지구를 주체의 최고 성지로 꾸리실 위대
한 구상, 위대한 사색을 펼치셨습니다."

금수산기념궁전 근처 아미산에 터널을 뚫는가 하면, 대규모 수목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김정일은 금수산기념궁전 공사 현장에 일곱 차례 이상 들르며 진행 상황을 꼼꼼히 살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김정은은 사망한 김정일의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한 후 다시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칭을 바꿨다.

지난 달 16일, 북한 매체는 북한 공군 장성으로 알려진 홍성률의 애국열사릉 안장 소식을 보도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16일) : "우리 공군의 긍과 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위훈을 세운 조선인민군 장령이었던 홍성
률의 영적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고 애국열사릉(노란색)에 안치하도록 하시는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애국열사릉은 지난 1986년 완공된 북한의 제 2국립묘지다 애국열사릉에는 당과 군, 국가기관은 물론 과학, 교육, 문화 예술 분야에 기여한 북한 유공자의 유해가 안장됐다.

무용가 최승희, 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한 월북 작가 홍명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조소앙 선생과 김규식 선생의 묘도 조성돼 있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장) : "신미리 애국열사릉에는 제가 당시에 가봤을 때까지는 한 800여 무덤이 있었습니다."

항일 혁명 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이나 기타 국가 기관이나 정권 기관, 사회단체, 예술 분야에서 특별히 공헌이 있다고 북한 당국이 선별한 그런 사람들을 안장하여서 후대 교육의 장으로 기리는 그런 곳입니다.

북한은 지난 1967년 5월, 김일성 교시를 통해 봉건 잔재의 뿌리를 뽑겠다고 선언한다.

봉건 잔재 중에 포함된 제사와 성묘를 한동안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혁명열사릉이 조성된 이후, 북한은 충효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열사릉 참배를 독려했다.

장해성(前 북한 조선중앙방송 기자/탈북자) : "봉건사상 창제를 없애야 된다는 것. 이걸 김일성이 강하게 얘기했습니다. 76년도 이후에는 다 김정일이 실권 잡고 있잖아요. 그런데 김정일이 하면서부터 더구나 충과 효를 해야 된다 그러면서 이런 다른 자기 부모들이라든가 이런 것은 거의 못하게 하고 자기 김정일 엄마, 정숙이 그런대 출생일하고 사망일에는 꼭꼭 가게 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한식과 추석 등 전통 명절과 군 창설일 등 국가 기념일 마다 열사릉을 방문해 참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시민들은 또한 9월과 12월 김정숙의 생일과 기일에 맞춰 대성산 혁명열사릉 참배에 동원된다.

그리고 참배에 불참할 경우에는 평양에서 추방되는 등 불이익이 돌아온다고 한다.

<인터뷰> 장해성(前 북한 조선중앙방송 기자/탈북자) : "빠지기만 하면 그 당시에는 허락도 해줘요. 그런 게 한두 번 더 반복되기만 하면 평양시내에서는 주기적으로 추방이 됩니다. 추방되는데 거기에 일원으로 당선 될 가능성이 높죠. 그러기 때문에 한 두 번만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엔 대체로 그런 누가 저 자기 죽을 곳에 그렇게 자꾸 자주 빠지려고 해."

심지어 결혼식을 올리기 전 열사릉에 헌화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도 있다.

당과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혁명성지’라 부르며 체제 선전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금수산궁전에 대해 우리 정부는 방문을 제한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4년 동안 북한 전역에 열 곳 정도의 열사릉을 새로 건설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0년 8월 17일) : "청진열사릉이 건설됐습니다. 준공식이 현지에서 진행됐습니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은이 20대인 것에 비해 북한의 권력 실세들 다수가 고령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정영철(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이제 혁명의 2세대들도 고령이거나 혹은 북한 정치에서는 원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이 사람들도 머지않아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됐을 경우에 아마 이 사람들도 열사릉에 묻히게 되는 그런 상황이 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열사릉을 확장해야 되고 또 지방 같은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묘지들을 준비하는 그런 과정이지 않을까."

북한이 이처럼 열사릉 관리에 열을 쏟고 안장 소식을 지속적으로 전하는 배경에는 김정은 체제의 안착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정영철(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혁명열사릉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 체재에서는 북한 체재의 기원에 해당하는 이런 사람들이 묻혀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3대 세습까지 내려왔지만 김정은 역시 북한 체재가 만들어졌던 이 기원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그런 상황이죠. 즉 김정은으로서도 김일성의 역사 그리고 그 사람들이 묻혀 있는 혁명열사릉을 계속 해서 활용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에 보다 더 도움이 되겠죠."
  • [클로즈업 북한] 북한 권력의 마지막 안식처 ‘열사릉’
    • 입력 2012-06-02 10:21:41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북한은 최근 북한 전역에 우리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이른바 ‘열사릉’을 추가로 10개나 건설했습니다.

북한은 또 수도 평양에도 김일성 일가와 북한 정권에 기여한 인물들을 위한 묘지를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북한 열사릉에 대해 자세히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북한 서해 최전방 지역인 초도의 교사와 학생들이 지난달 18일 평양을 방문했다.

지난 3월 김정은 제 1 비서가 초도 방어대를 방문한지 두 달 만에 이들을 평양으로 초대한 것이다.

초도 학생들은 평양 곳곳을 둘러봤다. 지난해 개장한 개선청년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중앙동물원에서는 각종 동물들도 구경했다.

초도 학생들은 또 다음 날 북한의 국립묘지인 대성산 혁명열사릉를 찾았다.

저마다 꽃을 든 학생들은 김일성 주석의 첫 번째 부인 김정숙의 묘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북한 매체는 초도 학생들의 대성산 열사릉 참배 장면을 자세히 보도했다.

<인터뷰> 정영철(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혁명열사릉은 북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곳이고요, 모든 국민들에게 충성심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지방의 학생들이 평양에 견학을 왔을 때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 중 하나가 혁명열사릉이고, 그 곳에 참배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충성심을 보이는 것, 혹은 어린 학생들은 애국심을 기르는 중요한 공간이 되는 것이죠."

북한은 지난 1975년 노동당 창당 30주년을 기념해 평양 대성산에 혁명열사릉을 새로 조성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북한 제1의 국립묘지로, 일제 시기 만주에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다고 인정한 인사들의 유해를 안장됐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장) : "북한에는 우리나라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국가가 관리하는 공동묘지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성산 혁명열사릉이고요. 또 하나는 신미동에 있는 애국열사릉입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에는 북한에서 말하는 이른바 항일 혁명 운동 시기에 희생된 내지는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가장 공이 높은 사람들을 선별해서 안장한 그런 곳입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총 9개의 단을 조성해 약 160구의 유해를 사망 시기에 따라 안장하고 있다.

개별 묘에는 생전 업적을 기록한 비석과 함께 반신상을 세웠다.

그러나 가장 높은 단을 차지한 것은 김일성 일가와 최측근들의 묘다.

사망시기와 상관없이 김일성의 첫 번째 아내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묘를 가운데에 놓고, 그 왼편에는 김책 전 부수상, 오른편에는 강건 북한군 총참모장 등 김일성의 최측근의 묘들이 차지하고 있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장) : "가장 중앙 윗단에 김정숙이 위치하고 있고요. 그 좌우로 김책, 최용건 등 북한 정권 탄생에 공이 많았던 사람들이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 안장하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은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직속 당 역사 연구소에서 나름의 어떤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안장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 혁명열사릉에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넓은 마당에 놓인 대형 비석의 비문은 김일성 주석의 친필로, 대문에 붙은 현판은 김정일 위원장이 친필로 알려졌다.

김일성은 사후 혁명열사릉에 묻히길 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생전 바람과 달리 김일성 주석은 사후 금수산의사당에 안치됐다.

김일성이 사망한 다음해인 1995년, 김정일은 금수산 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칭하고 대대적인 공사를 단행했다.

<녹취> 조선중앙TV (1996년 5월 1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금수산 지구를 주체의 최고 성지로 꾸리실 위대
한 구상, 위대한 사색을 펼치셨습니다."

금수산기념궁전 근처 아미산에 터널을 뚫는가 하면, 대규모 수목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김정일은 금수산기념궁전 공사 현장에 일곱 차례 이상 들르며 진행 상황을 꼼꼼히 살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김정은은 사망한 김정일의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한 후 다시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칭을 바꿨다.

지난 달 16일, 북한 매체는 북한 공군 장성으로 알려진 홍성률의 애국열사릉 안장 소식을 보도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16일) : "우리 공군의 긍과 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위훈을 세운 조선인민군 장령이었던 홍성
률의 영적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고 애국열사릉(노란색)에 안치하도록 하시는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애국열사릉은 지난 1986년 완공된 북한의 제 2국립묘지다 애국열사릉에는 당과 군, 국가기관은 물론 과학, 교육, 문화 예술 분야에 기여한 북한 유공자의 유해가 안장됐다.

무용가 최승희, 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한 월북 작가 홍명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조소앙 선생과 김규식 선생의 묘도 조성돼 있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기획실장) : "신미리 애국열사릉에는 제가 당시에 가봤을 때까지는 한 800여 무덤이 있었습니다."

항일 혁명 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이나 기타 국가 기관이나 정권 기관, 사회단체, 예술 분야에서 특별히 공헌이 있다고 북한 당국이 선별한 그런 사람들을 안장하여서 후대 교육의 장으로 기리는 그런 곳입니다.

북한은 지난 1967년 5월, 김일성 교시를 통해 봉건 잔재의 뿌리를 뽑겠다고 선언한다.

봉건 잔재 중에 포함된 제사와 성묘를 한동안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혁명열사릉이 조성된 이후, 북한은 충효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열사릉 참배를 독려했다.

장해성(前 북한 조선중앙방송 기자/탈북자) : "봉건사상 창제를 없애야 된다는 것. 이걸 김일성이 강하게 얘기했습니다. 76년도 이후에는 다 김정일이 실권 잡고 있잖아요. 그런데 김정일이 하면서부터 더구나 충과 효를 해야 된다 그러면서 이런 다른 자기 부모들이라든가 이런 것은 거의 못하게 하고 자기 김정일 엄마, 정숙이 그런대 출생일하고 사망일에는 꼭꼭 가게 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한식과 추석 등 전통 명절과 군 창설일 등 국가 기념일 마다 열사릉을 방문해 참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시민들은 또한 9월과 12월 김정숙의 생일과 기일에 맞춰 대성산 혁명열사릉 참배에 동원된다.

그리고 참배에 불참할 경우에는 평양에서 추방되는 등 불이익이 돌아온다고 한다.

<인터뷰> 장해성(前 북한 조선중앙방송 기자/탈북자) : "빠지기만 하면 그 당시에는 허락도 해줘요. 그런 게 한두 번 더 반복되기만 하면 평양시내에서는 주기적으로 추방이 됩니다. 추방되는데 거기에 일원으로 당선 될 가능성이 높죠. 그러기 때문에 한 두 번만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엔 대체로 그런 누가 저 자기 죽을 곳에 그렇게 자꾸 자주 빠지려고 해."

심지어 결혼식을 올리기 전 열사릉에 헌화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도 있다.

당과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혁명성지’라 부르며 체제 선전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금수산궁전에 대해 우리 정부는 방문을 제한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4년 동안 북한 전역에 열 곳 정도의 열사릉을 새로 건설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0년 8월 17일) : "청진열사릉이 건설됐습니다. 준공식이 현지에서 진행됐습니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은이 20대인 것에 비해 북한의 권력 실세들 다수가 고령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정영철(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이제 혁명의 2세대들도 고령이거나 혹은 북한 정치에서는 원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이 사람들도 머지않아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됐을 경우에 아마 이 사람들도 열사릉에 묻히게 되는 그런 상황이 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열사릉을 확장해야 되고 또 지방 같은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묘지들을 준비하는 그런 과정이지 않을까."

북한이 이처럼 열사릉 관리에 열을 쏟고 안장 소식을 지속적으로 전하는 배경에는 김정은 체제의 안착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정영철(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혁명열사릉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 체재에서는 북한 체재의 기원에 해당하는 이런 사람들이 묻혀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3대 세습까지 내려왔지만 김정은 역시 북한 체재가 만들어졌던 이 기원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그런 상황이죠. 즉 김정은으로서도 김일성의 역사 그리고 그 사람들이 묻혀 있는 혁명열사릉을 계속 해서 활용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에 보다 더 도움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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