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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슬픔의 위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입력 2012.07.17 (08:23) 연합뉴스
’배트맨’은 보통의 히어로들과는 궤를 조금 달리하는 영웅이다. ’아이언맨’처럼 자기 잘난 맛에 살지도 않고 ’슈퍼맨’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배트맨은 코믹스에 등장하는 영웅들보다는 오히려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영웅의 모습과 닮았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한다. 평생 사랑한 여자에게는 헌신짝처럼 버림받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절세고수가 되지만 사부를 죽여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불행이고, 죽음은 그가 가야 할 행선지다. 요컨대 그는 어둠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욕망 없는, 생기 없는 히어로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어떤 히어로들도 뿜어내지 못하는 이질적인 영웅의 기질이 엿보인다. 바로 강력한 슬픔이 깃든 위엄이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선 불친절한 삶에 익숙한 인물의 고독과 힘이 배어 있다.



영국출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가 연출한 ’배트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배트맨 비긴즈’(2005) ’다크나이트’(2008)에 이은 배트맨 시리즈의 완결판으로, 세 작품 중 비극적 정조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작들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놀런 감독은 뛰어난 비주얼과 비극적 분위기에 ’혁명’이라는 꿈과 생기를 새롭게 집어넣었다. 프랑스 혁명기를 현대적으로 오마주한 후반부는 마치 대하소설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레미제라블’을 비롯한 혁명소설이 장발장이나 자베르 같은 특정인물에서 파리와 파리시민으로 방점을 옮겼듯,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에서 고담시로, 그리고 고담시에서 살아가는 인간들로 시점을 확대한다.



배트맨과 조커의 격전이 벌어진 후 8년이 지난 고담시. 갱들은 사라지고 도시는 평온하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당 베인(톰 하디)이 핵물리학자를 납치하고 원자로를 탈취하고자 음모를 꾸미면서 고담시는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마침내 은거를 깨고, 강호로 돌아온 웨인(크리스천 베일).



그는 암흑가와 친숙한 미녀 도둑 카일(앤 해서웨이)의 도움을 받아 베인을 만나는 데 성공하지만 베인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기력한 패배를 맛본다.



영화는 초반부터 강력한 이미지로 기세를 제압한다. 베인이 핵 물리학자를 납치하는 공중 납치 시퀀스는 역동적이며 섬세하다. 추락하는 비행기에 매달린 인물들의 공포와 절망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데, 이는 일반 35㎜ 카메라보다 훨씬 선명도가 뛰어나고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덕이 크다. 놀런 감독은 전체 상영시간 164분 가운데 72분을 아이맥스용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는 은거한 영웅 웨인의 절망과 고독, 등장인물의 성격과 태도 등을 조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유일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알프레드(마이클 케인)와의 이별, 부자에 대한 증오로 마음을 채운 카일의 이력, 그리고 베인 세력의 발호 등으로 절반가량을 채우는 데, 이 부분은 사건들을 나열하고 캐릭터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혁명의 기운이 들끓는 후반부는 사건 전개만으로도 박진감이 넘친다. 고담시를 공격하는 베인의 감옥 습격과 경찰들을 재판하는 장면은 바스티유를 습격하고, 혁명재판소가 운영되던 프랑스 혁명기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놀런 감독은 급격한 혁명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비긴즈’에서 정신병원에 갇혔던 정신과 박사 크레인이 혁명재판소의 판사로 나온다는 점, 그가 내리는 판결이 삶의 온기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추방과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 등에서 그렇다.



오히려 혁명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삶의 지속성에 무게중심을 둔다. 혁명을 하건, 복수를 하건, 싸우건 간에 결국 삶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핵무기가 폭발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갈 데가 어디있어"라는 신부의 말에 형사 블레이크(조셉 고든 레빗)의 "그래도 가야죠"라는 대사가 이 영화가 가려는 지향점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크리스천 베일의 묵직한 연기와 웨인 그룹을 이끄는 폭스를 소화한 모건 프리먼의 안정된 연기도 놀랍지만 경찰청장 고든 역을 맡은 게리 올드먼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연기가 가장 돋보인다. 조셉 고든 레빗, 마리온 코티아르, 앤 해서웨이도 제 몫을 했다.



영화는 또, 고담시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격렬함, 오토바이 추격장면 등 볼거리도 풍부하고 이 같은 장면을 담은 미쟝센도 뛰어나다. 여기에 생각할 거리도 제공한다. 놀런 감독은 자본이 지배하는 할리우드에서 철학을 상술에 비벼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또 한차례 증명했다.



다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음매가 다소 덜컥거린다는 점이 아쉽다.



전반적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플롯의 재미에서는 ’배트맨 비긴즈’만 못하고, 캐릭터의 밀도감에서는 ’다크 나이트’보다 떨어진다. 그러나 플롯과 캐릭터, 세계에 대한 인식 등 전체를 아우르는 지점에선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시리즈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요컨대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독주나 협주보다는 교향곡에 가까운 작품이다.



7월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 [새영화] 슬픔의 위엄 ‘다크 나이트 라이즈’
    • 입력 2012-07-17 08:23:29
    연합뉴스
’배트맨’은 보통의 히어로들과는 궤를 조금 달리하는 영웅이다. ’아이언맨’처럼 자기 잘난 맛에 살지도 않고 ’슈퍼맨’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배트맨은 코믹스에 등장하는 영웅들보다는 오히려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영웅의 모습과 닮았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한다. 평생 사랑한 여자에게는 헌신짝처럼 버림받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절세고수가 되지만 사부를 죽여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불행이고, 죽음은 그가 가야 할 행선지다. 요컨대 그는 어둠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욕망 없는, 생기 없는 히어로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어떤 히어로들도 뿜어내지 못하는 이질적인 영웅의 기질이 엿보인다. 바로 강력한 슬픔이 깃든 위엄이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선 불친절한 삶에 익숙한 인물의 고독과 힘이 배어 있다.



영국출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가 연출한 ’배트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배트맨 비긴즈’(2005) ’다크나이트’(2008)에 이은 배트맨 시리즈의 완결판으로, 세 작품 중 비극적 정조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작들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놀런 감독은 뛰어난 비주얼과 비극적 분위기에 ’혁명’이라는 꿈과 생기를 새롭게 집어넣었다. 프랑스 혁명기를 현대적으로 오마주한 후반부는 마치 대하소설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레미제라블’을 비롯한 혁명소설이 장발장이나 자베르 같은 특정인물에서 파리와 파리시민으로 방점을 옮겼듯,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에서 고담시로, 그리고 고담시에서 살아가는 인간들로 시점을 확대한다.



배트맨과 조커의 격전이 벌어진 후 8년이 지난 고담시. 갱들은 사라지고 도시는 평온하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당 베인(톰 하디)이 핵물리학자를 납치하고 원자로를 탈취하고자 음모를 꾸미면서 고담시는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마침내 은거를 깨고, 강호로 돌아온 웨인(크리스천 베일).



그는 암흑가와 친숙한 미녀 도둑 카일(앤 해서웨이)의 도움을 받아 베인을 만나는 데 성공하지만 베인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기력한 패배를 맛본다.



영화는 초반부터 강력한 이미지로 기세를 제압한다. 베인이 핵 물리학자를 납치하는 공중 납치 시퀀스는 역동적이며 섬세하다. 추락하는 비행기에 매달린 인물들의 공포와 절망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데, 이는 일반 35㎜ 카메라보다 훨씬 선명도가 뛰어나고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덕이 크다. 놀런 감독은 전체 상영시간 164분 가운데 72분을 아이맥스용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는 은거한 영웅 웨인의 절망과 고독, 등장인물의 성격과 태도 등을 조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유일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알프레드(마이클 케인)와의 이별, 부자에 대한 증오로 마음을 채운 카일의 이력, 그리고 베인 세력의 발호 등으로 절반가량을 채우는 데, 이 부분은 사건들을 나열하고 캐릭터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혁명의 기운이 들끓는 후반부는 사건 전개만으로도 박진감이 넘친다. 고담시를 공격하는 베인의 감옥 습격과 경찰들을 재판하는 장면은 바스티유를 습격하고, 혁명재판소가 운영되던 프랑스 혁명기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놀런 감독은 급격한 혁명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비긴즈’에서 정신병원에 갇혔던 정신과 박사 크레인이 혁명재판소의 판사로 나온다는 점, 그가 내리는 판결이 삶의 온기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추방과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 등에서 그렇다.



오히려 혁명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삶의 지속성에 무게중심을 둔다. 혁명을 하건, 복수를 하건, 싸우건 간에 결국 삶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핵무기가 폭발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갈 데가 어디있어"라는 신부의 말에 형사 블레이크(조셉 고든 레빗)의 "그래도 가야죠"라는 대사가 이 영화가 가려는 지향점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크리스천 베일의 묵직한 연기와 웨인 그룹을 이끄는 폭스를 소화한 모건 프리먼의 안정된 연기도 놀랍지만 경찰청장 고든 역을 맡은 게리 올드먼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연기가 가장 돋보인다. 조셉 고든 레빗, 마리온 코티아르, 앤 해서웨이도 제 몫을 했다.



영화는 또, 고담시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격렬함, 오토바이 추격장면 등 볼거리도 풍부하고 이 같은 장면을 담은 미쟝센도 뛰어나다. 여기에 생각할 거리도 제공한다. 놀런 감독은 자본이 지배하는 할리우드에서 철학을 상술에 비벼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또 한차례 증명했다.



다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음매가 다소 덜컥거린다는 점이 아쉽다.



전반적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플롯의 재미에서는 ’배트맨 비긴즈’만 못하고, 캐릭터의 밀도감에서는 ’다크 나이트’보다 떨어진다. 그러나 플롯과 캐릭터, 세계에 대한 인식 등 전체를 아우르는 지점에선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시리즈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요컨대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독주나 협주보다는 교향곡에 가까운 작품이다.



7월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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