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은 ‘경제 혈맥’ 마비 시킨다

입력 2012.07.18 (06:48) 수정 2012.07.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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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Deflation)은 쉽게 말해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내리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물가와 함께 경기도 둔화하기 때문이다. 마치 양 어깨가 축 늘어지는 것과 같다. 경제가 무기력증에 걸린 것이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기술혁신이나 노동생산성의 개선으로 물건값이 싸지는 게 첫 번째다. 경기가 과열됐다가 거품이 꺼지며 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두 번째다.

마지막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 팔리지 않을 때다.

전문가들은 이번 디플레이션 위협을 마지막 경우로 본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를 '디플레이션 갭(Gapㆍ차이)'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가 최근 밝힌 기준 금리 인하의 이유이기도 하다. 공장에선 물건이 계속 찍어 나오는데 정작 살 사람은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 생산이 감소한다. 만들어봤자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손해를 본다. 투자가 줄고 생산라인이 멈춘다. 경기 둔화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필요 없게 된다. 일부는 해고를 피할 수 없다. 생존하더라도 노동자의 임금은 줄거나 동결된다. 당장 주머니 속 몇 푼이 아쉬워진다.

소득이 감소한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가 더 줄어버리면 그나마 감소한 공급물량마저 다시 남아돈다. 이런 식으로 악순환이 이어져 경제는 깊은 늪에 빠진다. 성장도, 물가도 모두 침체하는 저혈압 증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늪 속에 악어마저 있다. 가계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노리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으로 물가가 하락하면 자산가치도 떨어진다. 가계부채는 현재 1천조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중 상당수가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빌린 돈이다.

줄어든 소득으로 원금을 갚지 못해 지금도 주택대출자 77%가 이자만 내고 있다. 그런데 이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며 집을 팔아서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을 맞는다. 길이 없어진 가계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공포'라고 부른다. 디플레이션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이른바 'D의 공포'다.

가장 대표적인 디플레이션은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다. 주가가 최고가 대비 90% 폭락하고 은행ㆍ기업들이 줄지어 도산했다. 산업생산은 46%가 줄어들고 미국 노동자 4명 중 1명이 실직했다.

미국은 금융위기 직후 2009년 소비자물가가 1년간 마이너스 행진을 보이며 디플레이션 상황을 겪기도 했다.

일본은 20년 가까이 장기 디플레이션을 겪는 중이다. 일본 소비자 특유의 저축성향으로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먹히지 않는다. 그동안 일본의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를 넘어섰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자리도 중국에 빼앗겼다.

한국은 디플레이션 상황을 겪어본 적이 거의 없다. 경제구조 특성상 경제위기 때 환율부터 급등해 수입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엔 디플레이션 우려가 활발히 제기됐다.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는 방법은 투자ㆍ소비 여력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것이 그 예다. 사람들 손에 돈을 직접 쥐여주고 경제 혈맥에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떨어진다. 쉽게 돈을 빌려 쓰란 의미다. 기업 투자를 늘리고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실제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돈이 돌지 않을 수 있다. 경기가 너무 나쁘면 모두 겁을 먹고 투자도, 소비도 하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돈이 중앙은행에서 가계ㆍ기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과 은행 사이에서만 왔다갔다한다. 유동성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경기부양책을 통해 돈을 풀기보다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하도록 유도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단기적 처방보다는 일자리ㆍ자산가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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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플레이션은 ‘경제 혈맥’ 마비 시킨다
    • 입력 2012-07-18 06:48:29
    • 수정2012-07-18 16:07:29
    연합뉴스
디플레이션(Deflation)은 쉽게 말해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내리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물가와 함께 경기도 둔화하기 때문이다. 마치 양 어깨가 축 늘어지는 것과 같다. 경제가 무기력증에 걸린 것이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기술혁신이나 노동생산성의 개선으로 물건값이 싸지는 게 첫 번째다. 경기가 과열됐다가 거품이 꺼지며 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두 번째다. 마지막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 팔리지 않을 때다. 전문가들은 이번 디플레이션 위협을 마지막 경우로 본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를 '디플레이션 갭(Gapㆍ차이)'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가 최근 밝힌 기준 금리 인하의 이유이기도 하다. 공장에선 물건이 계속 찍어 나오는데 정작 살 사람은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 생산이 감소한다. 만들어봤자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손해를 본다. 투자가 줄고 생산라인이 멈춘다. 경기 둔화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필요 없게 된다. 일부는 해고를 피할 수 없다. 생존하더라도 노동자의 임금은 줄거나 동결된다. 당장 주머니 속 몇 푼이 아쉬워진다. 소득이 감소한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가 더 줄어버리면 그나마 감소한 공급물량마저 다시 남아돈다. 이런 식으로 악순환이 이어져 경제는 깊은 늪에 빠진다. 성장도, 물가도 모두 침체하는 저혈압 증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늪 속에 악어마저 있다. 가계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노리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으로 물가가 하락하면 자산가치도 떨어진다. 가계부채는 현재 1천조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중 상당수가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빌린 돈이다. 줄어든 소득으로 원금을 갚지 못해 지금도 주택대출자 77%가 이자만 내고 있다. 그런데 이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며 집을 팔아서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을 맞는다. 길이 없어진 가계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공포'라고 부른다. 디플레이션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이른바 'D의 공포'다. 가장 대표적인 디플레이션은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다. 주가가 최고가 대비 90% 폭락하고 은행ㆍ기업들이 줄지어 도산했다. 산업생산은 46%가 줄어들고 미국 노동자 4명 중 1명이 실직했다. 미국은 금융위기 직후 2009년 소비자물가가 1년간 마이너스 행진을 보이며 디플레이션 상황을 겪기도 했다. 일본은 20년 가까이 장기 디플레이션을 겪는 중이다. 일본 소비자 특유의 저축성향으로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먹히지 않는다. 그동안 일본의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를 넘어섰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자리도 중국에 빼앗겼다. 한국은 디플레이션 상황을 겪어본 적이 거의 없다. 경제구조 특성상 경제위기 때 환율부터 급등해 수입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엔 디플레이션 우려가 활발히 제기됐다.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는 방법은 투자ㆍ소비 여력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것이 그 예다. 사람들 손에 돈을 직접 쥐여주고 경제 혈맥에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떨어진다. 쉽게 돈을 빌려 쓰란 의미다. 기업 투자를 늘리고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실제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돈이 돌지 않을 수 있다. 경기가 너무 나쁘면 모두 겁을 먹고 투자도, 소비도 하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돈이 중앙은행에서 가계ㆍ기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과 은행 사이에서만 왔다갔다한다. 유동성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경기부양책을 통해 돈을 풀기보다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하도록 유도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단기적 처방보다는 일자리ㆍ자산가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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