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안 돈다” 유동성 함정 우려 확산

입력 2012.07.18 (06:50) 수정 2012.07.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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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경제는 거대한 자산 버블(거품)이 붕괴하면서 10년이 넘도록 장기 침체에 빠졌다. 통화량 축소로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한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이었다.

최근 보이는 여러 징후는 우리 경제가 일본의 복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특히 통화와 유동성 측면에서 심각한 조짐이 눈에 띈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선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통화승수 계속 하락…"투자ㆍ소비 수요가 없다"

위기의 조짐은 통화승수에서 나타난다. 통화승수는 금융회사들이 한은에서 공급받은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대출 등으로 시중에 공급한 통화량 규모를 나타낸다.

5월 통화승수는 22.2로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시중에 돈이 도는 속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플레이션의 전형적인 징후다.

대우증권 윤여삼 연구원은 18일 "통화승수가 낮아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 투자와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더 심해지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투자와 소비 통계는 윤 연구원의 말을 뒷받침한다.

올해 상반기 상장기업의 신규 시설투자금액은 6조1천29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5% 급감했다. 유럽 재정위기 등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가계 소비 사정은 마찬가지다. 6월 대형마트 매출액은 작년 6월보다 7.4%, 백화점은 1.2% 각각 감소했다. 4월에 이어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동반 감소다.

가계 투자라고 할 수 있는 주식 및 부동산 투자도 `엄동설한'에 들어선 모습이다.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주식 거래대금은 4조원을 밑돌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낮다. 상반기 서울 아파트 실거래건수는 2006년 이후 처음으로 2만건을 밑돌았다.

얼어붙은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통화승수는 계속 낮아지고 물가 하락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대투증권의 김상훈 애널리스트는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있다. 지금과 같은 극심한 투자 부진과 소비 침체가 지속한다면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금리인하 등 총력대응…"유동성 함정 경계해야"

최근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상당히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12일 기준금리를 연 3.0%로 0.25%포인트 내리고서 "경제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린 선제 결정"이라고 말했다. 경제 성장 전망치가 낮아지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어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6.2%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6%로 주저앉았고 올해는 3.0%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분기별 성장률은 2010년 1분기 2.1%에서 올해 1분기 0.9%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8월 4.7%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6월 2.2%로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한은의 고민이 인플레이션이었다면 올해는 디플레이션으로 바뀐 셈이다.

문제는 `유동성 함정'의 현실화 여부다.

유동성 함정은 금리를 아무리 낮추고 유동성을 확대해도 투자나 소비 확대 등 실물경제의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경제학자들이 꼽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초부터 10년이 넘는 장기침체에 빠진 것도 유동성 함정 때문이다. `제로 금리'에 이어 양적완화 정책을 단행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으로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가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경기침체를 막고자 올해 안에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하반기에 총 8조5천억원의 재정투자로 경기부양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와 한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둬 경기 연착륙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우리 경제는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경기침체를 막지 못한다면 유동성 함정의 시나리오는 현실화할 수 있다. 선제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플레이션은 한 번 빠지면 늪 이상으로 빠져나오기 어렵다"며 "효과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일자리 창출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해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자산 디플레이션을 막고자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수단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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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이 안 돈다” 유동성 함정 우려 확산
    • 입력 2012-07-18 06:50:03
    • 수정2012-07-18 1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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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경제는 거대한 자산 버블(거품)이 붕괴하면서 10년이 넘도록 장기 침체에 빠졌다. 통화량 축소로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한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이었다. 최근 보이는 여러 징후는 우리 경제가 일본의 복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특히 통화와 유동성 측면에서 심각한 조짐이 눈에 띈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선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통화승수 계속 하락…"투자ㆍ소비 수요가 없다" 위기의 조짐은 통화승수에서 나타난다. 통화승수는 금융회사들이 한은에서 공급받은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대출 등으로 시중에 공급한 통화량 규모를 나타낸다. 5월 통화승수는 22.2로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시중에 돈이 도는 속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플레이션의 전형적인 징후다. 대우증권 윤여삼 연구원은 18일 "통화승수가 낮아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 투자와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더 심해지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투자와 소비 통계는 윤 연구원의 말을 뒷받침한다. 올해 상반기 상장기업의 신규 시설투자금액은 6조1천29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5% 급감했다. 유럽 재정위기 등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가계 소비 사정은 마찬가지다. 6월 대형마트 매출액은 작년 6월보다 7.4%, 백화점은 1.2% 각각 감소했다. 4월에 이어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동반 감소다. 가계 투자라고 할 수 있는 주식 및 부동산 투자도 `엄동설한'에 들어선 모습이다.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주식 거래대금은 4조원을 밑돌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낮다. 상반기 서울 아파트 실거래건수는 2006년 이후 처음으로 2만건을 밑돌았다. 얼어붙은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통화승수는 계속 낮아지고 물가 하락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대투증권의 김상훈 애널리스트는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있다. 지금과 같은 극심한 투자 부진과 소비 침체가 지속한다면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금리인하 등 총력대응…"유동성 함정 경계해야" 최근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상당히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12일 기준금리를 연 3.0%로 0.25%포인트 내리고서 "경제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린 선제 결정"이라고 말했다. 경제 성장 전망치가 낮아지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어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6.2%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6%로 주저앉았고 올해는 3.0%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분기별 성장률은 2010년 1분기 2.1%에서 올해 1분기 0.9%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8월 4.7%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6월 2.2%로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한은의 고민이 인플레이션이었다면 올해는 디플레이션으로 바뀐 셈이다. 문제는 `유동성 함정'의 현실화 여부다. 유동성 함정은 금리를 아무리 낮추고 유동성을 확대해도 투자나 소비 확대 등 실물경제의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경제학자들이 꼽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초부터 10년이 넘는 장기침체에 빠진 것도 유동성 함정 때문이다. `제로 금리'에 이어 양적완화 정책을 단행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으로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가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경기침체를 막고자 올해 안에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하반기에 총 8조5천억원의 재정투자로 경기부양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와 한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둬 경기 연착륙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우리 경제는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경기침체를 막지 못한다면 유동성 함정의 시나리오는 현실화할 수 있다. 선제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플레이션은 한 번 빠지면 늪 이상으로 빠져나오기 어렵다"며 "효과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일자리 창출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해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자산 디플레이션을 막고자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수단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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