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전 런던에 남겨진 ‘KOREA 기록’

입력 2012.08.0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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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KOREA'라는 국호를 처음으로 달고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처음으로 밟았던 당시 한국 선수단의 모습은 어떻게 기록됐을까.

대한체육회는 물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64년 전 올림픽에 첫 출전한 신생국 한국 선수단의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1948년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발간한 책자에 당시의 기록이 실려 관심이 쏠린다.

1948년 런던조직위는 올림픽이 끝난 뒤 개최 과정과 올림픽에서의 각 나라 선수단이 거둔 성적 등을 모아 백서 형식의 편람집을 냈다.

IOC의 공인을 받은 서적은 아니나 조직위가 공식 기록에 의거, 대회를 정리하면서 낸 책이라 한국 선수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메인프레스센터(MPC)내 올림픽 도서관에 보관 중인 이 책을 보면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의 이름과 성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만 대한체육회가 밝힌 내용과는 차이가 있고, 어느 쪽이 정확한지 비교·대조할만한 제3의 자료가 없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런던에서 런던으로 1948~2012'라는 슬로건을 내건 대한체육회는 64년 전 런던올림픽에 7개 종목에 본부임원 11명, 지도자 8명, 선수 51명 등 총 70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조직위 책자를 보면 이 중 실제 경기를 뛴 선수는 45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한국 선수단의 규모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런던조직위가 올림픽 배지를 전달한 내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조직위는 대한올림픽위원장(1개), 팀 매니저(7개), 본부 임원(7개) 등과 선수(52명) 등 총 75개의 배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체육회의 설명보다 5명이 많은 수치다.

육상에서는 마라톤에서 후보로 간 함기용 옹(82)을 빼고 9명이 기량을 겨뤘다.

김원권은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이윤석은 800m와 1,500m 등 두 종목이나 출전했고, 한국선수단의 홍일점인 박봉식은 여자 원반던지기에서 세계와 대결했다.

체육회가 역도 남자 67.5㎏급에 출전한 것으로 밝힌 김창희는 조직위 공식 책자에서는 김석영으로 기재돼 있었다.

김석영이라는 이름은 레슬링에서도 발견되는데, 조직위가 김창희의 이름을 빠뜨리고 동명이인을 잘못 쓴 것인지, 김석영이라는 선수가 두 종목을 다 뛰었는지는 새로운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확인할 방도가 아직 없다.

지금은 흔한 마라톤 구간 기록이 나온 것도 이채롭다.

함기용 옹과 함께 이번에 런던을 방문하는 최윤칠 옹(84)은 남자 마라톤에 출전해 35㎞까지 구간에서 1위를 달렸으나 이후 수분 부족으로 레이스를 기권했다.

최 옹은 21개 나라 41명의 선수가 참가한 마라톤에서 25㎞ 구간까지 8~9위를 유지하다 30㎞ 구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이후 35㎞ 지점을 2시간6분2초에 끊어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 7.5㎞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한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김성집(역도)과 한수안(복싱)이 동메달 2개를 따내면서 국제 스포츠계에 이름을 알렸다.

동·하계 올림픽 역대 100번째 금메달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한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런던이다.

체육회와 정부가 64년 전 런던올림픽 희귀자료를 찾는 데 앞장선다면 한국 스포츠사도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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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년전 런던에 남겨진 ‘KOREA 기록’
    • 입력 2012-08-01 07:29:00
    연합뉴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KOREA'라는 국호를 처음으로 달고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처음으로 밟았던 당시 한국 선수단의 모습은 어떻게 기록됐을까. 대한체육회는 물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64년 전 올림픽에 첫 출전한 신생국 한국 선수단의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1948년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발간한 책자에 당시의 기록이 실려 관심이 쏠린다. 1948년 런던조직위는 올림픽이 끝난 뒤 개최 과정과 올림픽에서의 각 나라 선수단이 거둔 성적 등을 모아 백서 형식의 편람집을 냈다. IOC의 공인을 받은 서적은 아니나 조직위가 공식 기록에 의거, 대회를 정리하면서 낸 책이라 한국 선수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메인프레스센터(MPC)내 올림픽 도서관에 보관 중인 이 책을 보면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의 이름과 성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만 대한체육회가 밝힌 내용과는 차이가 있고, 어느 쪽이 정확한지 비교·대조할만한 제3의 자료가 없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런던에서 런던으로 1948~2012'라는 슬로건을 내건 대한체육회는 64년 전 런던올림픽에 7개 종목에 본부임원 11명, 지도자 8명, 선수 51명 등 총 70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조직위 책자를 보면 이 중 실제 경기를 뛴 선수는 45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한국 선수단의 규모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런던조직위가 올림픽 배지를 전달한 내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조직위는 대한올림픽위원장(1개), 팀 매니저(7개), 본부 임원(7개) 등과 선수(52명) 등 총 75개의 배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체육회의 설명보다 5명이 많은 수치다. 육상에서는 마라톤에서 후보로 간 함기용 옹(82)을 빼고 9명이 기량을 겨뤘다. 김원권은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이윤석은 800m와 1,500m 등 두 종목이나 출전했고, 한국선수단의 홍일점인 박봉식은 여자 원반던지기에서 세계와 대결했다. 체육회가 역도 남자 67.5㎏급에 출전한 것으로 밝힌 김창희는 조직위 공식 책자에서는 김석영으로 기재돼 있었다. 김석영이라는 이름은 레슬링에서도 발견되는데, 조직위가 김창희의 이름을 빠뜨리고 동명이인을 잘못 쓴 것인지, 김석영이라는 선수가 두 종목을 다 뛰었는지는 새로운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확인할 방도가 아직 없다. 지금은 흔한 마라톤 구간 기록이 나온 것도 이채롭다. 함기용 옹과 함께 이번에 런던을 방문하는 최윤칠 옹(84)은 남자 마라톤에 출전해 35㎞까지 구간에서 1위를 달렸으나 이후 수분 부족으로 레이스를 기권했다. 최 옹은 21개 나라 41명의 선수가 참가한 마라톤에서 25㎞ 구간까지 8~9위를 유지하다 30㎞ 구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이후 35㎞ 지점을 2시간6분2초에 끊어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 7.5㎞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한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김성집(역도)과 한수안(복싱)이 동메달 2개를 따내면서 국제 스포츠계에 이름을 알렸다. 동·하계 올림픽 역대 100번째 금메달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한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런던이다. 체육회와 정부가 64년 전 런던올림픽 희귀자료를 찾는 데 앞장선다면 한국 스포츠사도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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