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감동시킨 해병대 출신 복서 헤링

입력 2012.08.01 (19:59) 수정 2012.08.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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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멜 헤링(26)은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경기에서 1회전 탈락한 뒤 응원차 경기장을 찾은 복싱팀 동료에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미국 복싱팀 동료는 주장인 헤링의 1회전 탈락의 아픔을 따뜻한 포옹으로 감싸 안아줬다.

헤링은 전직 해병대원이다. 해병대원 출신이 올림픽 복싱에 출전하기는 20년 만에 그가 처음이다.

헤링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라이트웰터급(64㎏) 32강전에서 9-19로 패했다.

헤링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왼손잡이 복서 다니야르 엘레우시노프(21·카자흐스탄)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며 2라운드까지 8-15로 뒤졌다.

엘레우시노프는 마지막 3라운드에서 링을 빙글빙글 돌며 시간만 보냈고 헤링은 자신의 올림픽 첫 경기를 그렇게 허무하게 내주고 말았다.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태생인 헤링은 10대 때만 해도 앞날이 촉망받는 복서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복싱 선수로 올림픽 무대에서 서는 날을 꿈꾸던 헤링에게 지난 2001년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 테러사건은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고교 같은 반 친구가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는 것을 목격한 15세의 소년은 복싱 선수로서의 꿈을 미루고 입대를 결정했다.

헤링은 해병대원으로 이라크에 두 차례나 파병됐다. 그곳에서 수많은 전우의 죽음을 목격한 헤링이었지만 조국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더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었다.

딸인 아리야나가 생후 1년도 되기 전인 2009년 특별한 병명도 밝히지 못한 채 갑자기 숨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은 아리냐아가 숨진 지 3년째가 되는 삼년 기일(忌日)이었다.

헤링은 12명의 미국 복싱팀 동료들과 개막식에 참가해 퍼레이드를 하면서 숨진 딸과 그의 조국을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던 탓인지 헤링은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1회전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보고 말았다.

헤링은 경기 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면서 "하지만 나는 미국 복싱팀의 주장으로서 언제나 고개를 들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었다.

헤링은 "나는 이라크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오늘 밤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상대에게 경기를 내줬다. 그게 전부"라면서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 나는 영원히 올림픽 선수로 남을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아갈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헤링은 올림픽 이후 재입대할지 그렇지 않으면 프로 복싱 선수로서 전향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헤링은 "고향 사람들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내게 '결과에 상관없이 당신은 여전히 영웅이며 챔피언일 것'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이러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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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감동시킨 해병대 출신 복서 헤링
    • 입력 2012-08-01 19:59:57
    • 수정2012-08-01 20:00:12
    연합뉴스
미국의 자멜 헤링(26)은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경기에서 1회전 탈락한 뒤 응원차 경기장을 찾은 복싱팀 동료에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미국 복싱팀 동료는 주장인 헤링의 1회전 탈락의 아픔을 따뜻한 포옹으로 감싸 안아줬다. 헤링은 전직 해병대원이다. 해병대원 출신이 올림픽 복싱에 출전하기는 20년 만에 그가 처음이다. 헤링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라이트웰터급(64㎏) 32강전에서 9-19로 패했다. 헤링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왼손잡이 복서 다니야르 엘레우시노프(21·카자흐스탄)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며 2라운드까지 8-15로 뒤졌다. 엘레우시노프는 마지막 3라운드에서 링을 빙글빙글 돌며 시간만 보냈고 헤링은 자신의 올림픽 첫 경기를 그렇게 허무하게 내주고 말았다.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태생인 헤링은 10대 때만 해도 앞날이 촉망받는 복서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복싱 선수로 올림픽 무대에서 서는 날을 꿈꾸던 헤링에게 지난 2001년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 테러사건은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고교 같은 반 친구가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는 것을 목격한 15세의 소년은 복싱 선수로서의 꿈을 미루고 입대를 결정했다. 헤링은 해병대원으로 이라크에 두 차례나 파병됐다. 그곳에서 수많은 전우의 죽음을 목격한 헤링이었지만 조국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더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었다. 딸인 아리야나가 생후 1년도 되기 전인 2009년 특별한 병명도 밝히지 못한 채 갑자기 숨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은 아리냐아가 숨진 지 3년째가 되는 삼년 기일(忌日)이었다. 헤링은 12명의 미국 복싱팀 동료들과 개막식에 참가해 퍼레이드를 하면서 숨진 딸과 그의 조국을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던 탓인지 헤링은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1회전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보고 말았다. 헤링은 경기 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면서 "하지만 나는 미국 복싱팀의 주장으로서 언제나 고개를 들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었다. 헤링은 "나는 이라크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오늘 밤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상대에게 경기를 내줬다. 그게 전부"라면서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 나는 영원히 올림픽 선수로 남을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아갈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헤링은 올림픽 이후 재입대할지 그렇지 않으면 프로 복싱 선수로서 전향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헤링은 "고향 사람들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내게 '결과에 상관없이 당신은 여전히 영웅이며 챔피언일 것'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이러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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