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저널리즘’의 부활?

입력 2012.09.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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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출간된 책 한 권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2009년 이후의 쌍용차 사태를 다루고 있는데요.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런 출판물들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일종의 언론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빈틈을 채우고 있는 이른바‘출판 저널리즘’을 최정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09년 봄, 회사의 정리해고 발표와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총파업...

쌍용차 사태는 이른바 ‘먹튀 논란’을 부른 상하이자동차 그룹이, 노동자 2천6백여 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방송 뉴스는 극한 충돌과 폭력사태를 연일 보도했고 상당수 신문은 노조 파업을 비판했습니다.

<녹취> MBC 2009.7.21 장인수 : "2시간 동안 계속된 경찰의 최루액 살포는 옥상에 있는 노조원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에 맞서 노조원들은 새총을 쏘며 저항했고 화물차와 폐타이어에 불을 붙여 한때 공장 일대는 검은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녹취> 동아(2009.7.22 A031 오피니언) : "쌍용차를 파산으로 몰고가는 극렬 노조원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노조원들은 퇴거 명령을 강제 집행하는 법원 직원과 경찰을 향해 볼트 너트 새총을 쏘았다. 법정관리 회사의 생사를 결정하는 법원의 업무까지 방해하니 회생하려는 뜻이 없는 모양이다."

파업 77일 만에 협상이 타결되자 쌍용차 사태는 언론의 관심에서 사라졌습니다.

<녹취> KBS 2009.8.6 범기영 : "격렬한 충돌 끝에 노조원들은 도장2공장에 고립됐고 경찰은 오늘까지 자진해산하라고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농성장 이탈 행렬이 줄을 잇자 노조가 사실상 백기투항하며 77일간 계속된 점거파업은 오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는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지난해 인도 마힌드라사가 쌍용차를 인수해 경영은 정상화했지만 해고자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싸움은 계속됐고 지금까지 해고노동자 스물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숨졌습니다.

<녹취> 경향 2010. 12.15 08면 : "쌍용차 퇴직자 또 자살"

<녹취> 한겨레 2011. 2.28 31면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회사에서 쫓겨난 뒤 극심한 생활고 등을 못 이겨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죽은 채 발견된 임 아무개 씨도 마찬가지다. 특히 임 씨의 부인마저 남편의 해고로 인한 충격 등으로 지난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이 관심의 끈을 놓은 사이, 한 소설가가 쌍용차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냈습니다.

소설이 아닌 사실을 기록한 르포르타주입니다.

의자, 즉 일자리에서 쫓겨난 자와 의자를 잡은 자...

스물두 명의 죽음과 남은 이들의 고통을 기록했습니다.

<녹취> 의자놀이(54p) :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오직 쌍용자동차가 짧은 인생의 전부였던 그. 그가 거기서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든 경찰특공대에게 밟히고 찢기었고, 그리고 해고당했다. 그리고 3년 후 이 봄밤, 그가 죽었다. 22번째 죽음이었다.

정리해고의 근거가 됐던 회계조작 의혹도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제기했습니다.

<녹취> 의자놀이(74p) : "갑자기 모든 건물, 기계장치, 차량운반구의 자산가치가 이렇게 변하는 일이 있을까? 8억 원의 손상이 어떻게 일 년 만에 1,000억 원으로, 8,600만 원이 375억 원으로 증가할 수가 있는 걸까?"

작가는, 스물두 명의 연이은 죽음마저도 외면하는 언론의 무관심이 집필의 동기가 됐다며 언론을 꼬집었습니다.

<인터뷰> 공지영(의자놀이 작가) : "언론이 하지 않으면 누군가라도 해야 된단 생각 때문에 제가 했죠. #10:59:38제가 기자간담회 때 농담처럼 말했습니다만 언론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으면 작가들이 이런 것을 쓸 수밖에. 농담으로 언론이 소설을 쓰니까 소설가가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쓸쓸한 말씀을 드릴 수 있겠어요."

책은 지난 6일 출간 직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SNS 공간에서도 입소문이 퍼지면서 쌍용차 사태를 다시 한 번 여론의 중심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인터뷰> 정강민(의자놀이 독자) : "처음에 재작년에 뉴스에 나왔을 땐 쌍용에서 파업이 있었고 노동자들이 저렇게 진압이 됐구나, 그런 일은 늘 접하는 거니까요. 뉴스의 한 토막인 줄 알았는데 책을 보고 나니까 누구나 그런 일이 생길 수 있고 그 일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 섬찟했고 또 한편으로는 며칠 동안 저도 모르는 우울감에 빠져서 그렇게 지냈던 것 같거든요."

방송이나 신문이 아닌 단행본이 심층 취재와 기록으로 언론의 역할을 대신한 셈입니다.

<인터뷰>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 : "여전히 세계는 공평하지 않고 이 팍팍한 삶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아 원인이 거기에 있었구나, 라고 하는 것을 진상을 밝혀주는 그런 책들이 여전히 독자들에게 성찰하게 만들고 이 사회를 제대로 보게 만드는 저널리즘적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고 억압받던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저널리즘 영역에서 출판물의 영향력은 더욱 컸습니다.

195,60년대를 풍미한 장준하 발행의 월간 <사상계>는 독재정권에 맞서 비판적 여론을 이끌었습니다.

지식인들을 상대로 한 잡지였지만 4·19 직후 발행부수가 일간지보다 많은 8만 부에 이를 정도로 대중에게 폭넓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후 <뿌리 깊은 나무>와 <씨알의 소리>, <창작과 비평> 등도 197,80년대 서슬푸른 군사정권에 맞서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했습니다.

<인터뷰> 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 "일정 수준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런 잡지를 읽었다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반대를 하든 찬성을 하든 어떤 공유된 지식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거는 사회적 파급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반 대중들이 그 잡지를 읽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또 여론 주도층이 되는 지식인들이 그 잡지를 읽고 또 그 사상을 전파하고 토론하는 그러한 과정들은 당연히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실 보도가 불가능했던 시절, 소설가 황석영 씨의 기록은 침묵하던 언론 대신 광주의 실상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44p) : "상당히 많은 수의 시민군 포로가 복도에 엎드려 있었다. 날이 훤해졌고 방마다 죽어있는 시체들을 끌어냈다. 어떤 사람은 팔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채로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이런 출판물들이 재갈 물린 언론을 보완하며 사실을 기록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저널리즘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출판 언론'이 민심을 모으고 여론을 주도하면서 민주화의 한 축을 이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녹취> 조상호(한국언론과 출판 저널리즘/396p) : "1980년대의 사회비판적 출판은 학술운동과의 연계를 통해 학술성과 전문성을 제고시킬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비판적 의식을 심어주고 권위주의 통치종식을 공론화하여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이끌어내는 언론기능을 수행했다고 본다."

1987년 이후, 사회 민주화와 함께 언론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됐고 출판물의 저널리즘 기능은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제약에서 벗어난 방송과 신문이 다양한 영역, 여러 시각에서 취재와 보도를 활발히 하면서 언론의 공백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출판 저널리즘’은, 1990년대 들어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등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 몇 년 새
다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을 비판하고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 비판 성향의 책들이 잇따라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거대 재벌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2010년 출간 당시 주요 일간지에서 광고를 거부당하기까지 했지만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우리 사회에 논쟁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녹취> 삼성을 생각한다(444p) : "나는 2007년의 양심고백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비리를 공개하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나오리라고 믿는다. 부패와 비리는 곰팡이와 같아서 햇볕아래 드러나는 순간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령 권력이 양심고백한 내용을 덮어버린다고 해도,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의미가 있다. 언론의 타락은 검찰보다 한참 심각했다. 재벌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와 광고를 바꿔치기하는 언론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깊이 절망했다. 언론이 비리 앞에 침묵하면, 비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친 이 책도 성역 없는 비판과 고발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지를 고발한 책은 사회 불균형의 문제를 일깨우며 책 제목이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기까지 했습니다.

<녹취> SBS 8 (2007.12.11/이주형) : "한국에서는 요즘 20대를 '88만 원 세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88만 원이란 비정규직 평균 임금에 전체 임금 중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한 액수로 20대가 받는 평균 임금을 상징합니다. 심각한 건 IMF 이후 이른바 승자 독식 게임이 된 경제 상황에서 20대는 앞으로도 질 낮은 일자리와 저임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겁니다."

<녹취> 88만원세대(98p) : "현재 20대의 승자 독식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점은 경쟁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패자부활전과 같은 보완 장치가 거의 없을뿐더러, 중간에 개입하는 보증자도 없다는 점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는 현실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책으로도 선보였습니다.

찬반 논란 속에 이 책은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네티즌 8만 8천여 명이 뽑은 2011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녹취> 닥치고 정치(306p) : "기득권 구조에 넘어가는 이유는 우리 모두 생활인이기 때문이야. 그 구조에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 그게 나쁜 걸 몰라서가 아니야. 거기서 자신이 입을 수도 있는 혜택, 그 이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야. 기득권은 바로 그 구조를 장악하고 있으니까 줄 게 많아. "

<녹취> 파이낸셜뉴스(2011.10.28) : "[e북으로 나왔네]이 책은 기존 기득권 세력인 보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대다수 국민의 대변자 역할을 하지 못한 진보정당의 한계 역시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에 이은 르뽀 <의자놀이>까지.

최근 저널리즘 성격을 지닌 단행본의 잇단 출간은 언론과 출판의 경계를 허무는 한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용성(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미디어환경은 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그래도 이제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권력들에 대한 언론의 감시 역할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 이런 것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메우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권력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출판매체들이 저널리즘적 기능을 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미디어의 형태가 날로 다양해지는 추세 속에서도 출판물의 저널리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 : "책이라는 독특한 미디어 양식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논픽션이나 여러 가지 기록 형태로 남아서 당대를 증언하고 시대의 이면을 들춰내는 장치로써 대를 이어 읽혀질 수 있는 그런 유용한 매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언어문자를 기록하는 매체로 책의 기능이 남아있는 한 어떤 문제제기를 통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측면에서의 노력들이 책을 통해 보존되고 발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출판물이 저널리즘의 역할을 확대하는 건 사회 비판과 감시의 매체가 다양해진다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기성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빈틈이 생겼다는 반증입니다.

최근 출판물이 메우고 있는 언론의 공백이 과연 무엇인지 언론계 스스로 되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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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 저널리즘’의 부활?
    • 입력 2012-09-01 14:21:57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최근 출간된 책 한 권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2009년 이후의 쌍용차 사태를 다루고 있는데요.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런 출판물들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일종의 언론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빈틈을 채우고 있는 이른바‘출판 저널리즘’을 최정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09년 봄, 회사의 정리해고 발표와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총파업... 쌍용차 사태는 이른바 ‘먹튀 논란’을 부른 상하이자동차 그룹이, 노동자 2천6백여 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방송 뉴스는 극한 충돌과 폭력사태를 연일 보도했고 상당수 신문은 노조 파업을 비판했습니다. <녹취> MBC 2009.7.21 장인수 : "2시간 동안 계속된 경찰의 최루액 살포는 옥상에 있는 노조원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에 맞서 노조원들은 새총을 쏘며 저항했고 화물차와 폐타이어에 불을 붙여 한때 공장 일대는 검은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녹취> 동아(2009.7.22 A031 오피니언) : "쌍용차를 파산으로 몰고가는 극렬 노조원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노조원들은 퇴거 명령을 강제 집행하는 법원 직원과 경찰을 향해 볼트 너트 새총을 쏘았다. 법정관리 회사의 생사를 결정하는 법원의 업무까지 방해하니 회생하려는 뜻이 없는 모양이다." 파업 77일 만에 협상이 타결되자 쌍용차 사태는 언론의 관심에서 사라졌습니다. <녹취> KBS 2009.8.6 범기영 : "격렬한 충돌 끝에 노조원들은 도장2공장에 고립됐고 경찰은 오늘까지 자진해산하라고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농성장 이탈 행렬이 줄을 잇자 노조가 사실상 백기투항하며 77일간 계속된 점거파업은 오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는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지난해 인도 마힌드라사가 쌍용차를 인수해 경영은 정상화했지만 해고자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싸움은 계속됐고 지금까지 해고노동자 스물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숨졌습니다. <녹취> 경향 2010. 12.15 08면 : "쌍용차 퇴직자 또 자살" <녹취> 한겨레 2011. 2.28 31면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회사에서 쫓겨난 뒤 극심한 생활고 등을 못 이겨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죽은 채 발견된 임 아무개 씨도 마찬가지다. 특히 임 씨의 부인마저 남편의 해고로 인한 충격 등으로 지난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이 관심의 끈을 놓은 사이, 한 소설가가 쌍용차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냈습니다. 소설이 아닌 사실을 기록한 르포르타주입니다. 의자, 즉 일자리에서 쫓겨난 자와 의자를 잡은 자... 스물두 명의 죽음과 남은 이들의 고통을 기록했습니다. <녹취> 의자놀이(54p) :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오직 쌍용자동차가 짧은 인생의 전부였던 그. 그가 거기서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든 경찰특공대에게 밟히고 찢기었고, 그리고 해고당했다. 그리고 3년 후 이 봄밤, 그가 죽었다. 22번째 죽음이었다. 정리해고의 근거가 됐던 회계조작 의혹도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제기했습니다. <녹취> 의자놀이(74p) : "갑자기 모든 건물, 기계장치, 차량운반구의 자산가치가 이렇게 변하는 일이 있을까? 8억 원의 손상이 어떻게 일 년 만에 1,000억 원으로, 8,600만 원이 375억 원으로 증가할 수가 있는 걸까?" 작가는, 스물두 명의 연이은 죽음마저도 외면하는 언론의 무관심이 집필의 동기가 됐다며 언론을 꼬집었습니다. <인터뷰> 공지영(의자놀이 작가) : "언론이 하지 않으면 누군가라도 해야 된단 생각 때문에 제가 했죠. #10:59:38제가 기자간담회 때 농담처럼 말했습니다만 언론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으면 작가들이 이런 것을 쓸 수밖에. 농담으로 언론이 소설을 쓰니까 소설가가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쓸쓸한 말씀을 드릴 수 있겠어요." 책은 지난 6일 출간 직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SNS 공간에서도 입소문이 퍼지면서 쌍용차 사태를 다시 한 번 여론의 중심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인터뷰> 정강민(의자놀이 독자) : "처음에 재작년에 뉴스에 나왔을 땐 쌍용에서 파업이 있었고 노동자들이 저렇게 진압이 됐구나, 그런 일은 늘 접하는 거니까요. 뉴스의 한 토막인 줄 알았는데 책을 보고 나니까 누구나 그런 일이 생길 수 있고 그 일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 섬찟했고 또 한편으로는 며칠 동안 저도 모르는 우울감에 빠져서 그렇게 지냈던 것 같거든요." 방송이나 신문이 아닌 단행본이 심층 취재와 기록으로 언론의 역할을 대신한 셈입니다. <인터뷰>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 : "여전히 세계는 공평하지 않고 이 팍팍한 삶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아 원인이 거기에 있었구나, 라고 하는 것을 진상을 밝혀주는 그런 책들이 여전히 독자들에게 성찰하게 만들고 이 사회를 제대로 보게 만드는 저널리즘적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고 억압받던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저널리즘 영역에서 출판물의 영향력은 더욱 컸습니다. 195,60년대를 풍미한 장준하 발행의 월간 <사상계>는 독재정권에 맞서 비판적 여론을 이끌었습니다. 지식인들을 상대로 한 잡지였지만 4·19 직후 발행부수가 일간지보다 많은 8만 부에 이를 정도로 대중에게 폭넓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후 <뿌리 깊은 나무>와 <씨알의 소리>, <창작과 비평> 등도 197,80년대 서슬푸른 군사정권에 맞서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했습니다. <인터뷰> 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 "일정 수준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런 잡지를 읽었다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반대를 하든 찬성을 하든 어떤 공유된 지식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거는 사회적 파급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반 대중들이 그 잡지를 읽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또 여론 주도층이 되는 지식인들이 그 잡지를 읽고 또 그 사상을 전파하고 토론하는 그러한 과정들은 당연히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실 보도가 불가능했던 시절, 소설가 황석영 씨의 기록은 침묵하던 언론 대신 광주의 실상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44p) : "상당히 많은 수의 시민군 포로가 복도에 엎드려 있었다. 날이 훤해졌고 방마다 죽어있는 시체들을 끌어냈다. 어떤 사람은 팔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채로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이런 출판물들이 재갈 물린 언론을 보완하며 사실을 기록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저널리즘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출판 언론'이 민심을 모으고 여론을 주도하면서 민주화의 한 축을 이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녹취> 조상호(한국언론과 출판 저널리즘/396p) : "1980년대의 사회비판적 출판은 학술운동과의 연계를 통해 학술성과 전문성을 제고시킬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비판적 의식을 심어주고 권위주의 통치종식을 공론화하여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이끌어내는 언론기능을 수행했다고 본다." 1987년 이후, 사회 민주화와 함께 언론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됐고 출판물의 저널리즘 기능은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제약에서 벗어난 방송과 신문이 다양한 영역, 여러 시각에서 취재와 보도를 활발히 하면서 언론의 공백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출판 저널리즘’은, 1990년대 들어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등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 몇 년 새 다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을 비판하고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 비판 성향의 책들이 잇따라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거대 재벌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2010년 출간 당시 주요 일간지에서 광고를 거부당하기까지 했지만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우리 사회에 논쟁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녹취> 삼성을 생각한다(444p) : "나는 2007년의 양심고백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비리를 공개하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나오리라고 믿는다. 부패와 비리는 곰팡이와 같아서 햇볕아래 드러나는 순간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령 권력이 양심고백한 내용을 덮어버린다고 해도,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의미가 있다. 언론의 타락은 검찰보다 한참 심각했다. 재벌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와 광고를 바꿔치기하는 언론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깊이 절망했다. 언론이 비리 앞에 침묵하면, 비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친 이 책도 성역 없는 비판과 고발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지를 고발한 책은 사회 불균형의 문제를 일깨우며 책 제목이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기까지 했습니다. <녹취> SBS 8 (2007.12.11/이주형) : "한국에서는 요즘 20대를 '88만 원 세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88만 원이란 비정규직 평균 임금에 전체 임금 중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한 액수로 20대가 받는 평균 임금을 상징합니다. 심각한 건 IMF 이후 이른바 승자 독식 게임이 된 경제 상황에서 20대는 앞으로도 질 낮은 일자리와 저임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겁니다." <녹취> 88만원세대(98p) : "현재 20대의 승자 독식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점은 경쟁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패자부활전과 같은 보완 장치가 거의 없을뿐더러, 중간에 개입하는 보증자도 없다는 점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는 현실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책으로도 선보였습니다. 찬반 논란 속에 이 책은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네티즌 8만 8천여 명이 뽑은 2011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녹취> 닥치고 정치(306p) : "기득권 구조에 넘어가는 이유는 우리 모두 생활인이기 때문이야. 그 구조에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 그게 나쁜 걸 몰라서가 아니야. 거기서 자신이 입을 수도 있는 혜택, 그 이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야. 기득권은 바로 그 구조를 장악하고 있으니까 줄 게 많아. " <녹취> 파이낸셜뉴스(2011.10.28) : "[e북으로 나왔네]이 책은 기존 기득권 세력인 보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대다수 국민의 대변자 역할을 하지 못한 진보정당의 한계 역시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에 이은 르뽀 <의자놀이>까지. 최근 저널리즘 성격을 지닌 단행본의 잇단 출간은 언론과 출판의 경계를 허무는 한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용성(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미디어환경은 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그래도 이제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권력들에 대한 언론의 감시 역할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 이런 것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메우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권력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출판매체들이 저널리즘적 기능을 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미디어의 형태가 날로 다양해지는 추세 속에서도 출판물의 저널리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 : "책이라는 독특한 미디어 양식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논픽션이나 여러 가지 기록 형태로 남아서 당대를 증언하고 시대의 이면을 들춰내는 장치로써 대를 이어 읽혀질 수 있는 그런 유용한 매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언어문자를 기록하는 매체로 책의 기능이 남아있는 한 어떤 문제제기를 통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측면에서의 노력들이 책을 통해 보존되고 발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출판물이 저널리즘의 역할을 확대하는 건 사회 비판과 감시의 매체가 다양해진다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기성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빈틈이 생겼다는 반증입니다. 최근 출판물이 메우고 있는 언론의 공백이 과연 무엇인지 언론계 스스로 되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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