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권투위 분쟁 안갯속

입력 2012.09.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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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올림픽이 끝나면 아마추어 복싱의 열기를 이어받아 프로 복싱이 활성화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프로 복싱을 관장하는 한국권투위원회(이하 권투위)를 둘러싼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권투위를 둘러싼 파문은 9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투위 행정에 불만을 품은 전 프로 복싱 세계챔피언인 홍수환, 유명우씨 등 왕년의 복서들은 지난해 12월21일 서울 종로 5가에 있는 권투위 사무실을 찾아가 개혁을 요구했다.

표면적으로는 권투위가 비밀리에 이사회를 소집, 신정교 부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권투위 행정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것이다.

한국 프로 복싱은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어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종합격투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선수들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심지어 세계 챔피언이 후원자를 구하지 못해 경기를 치르지 못하거나 시합이 연기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여기에다 권투위가 방만한 운영과 파벌싸움, 내부 비리 등으로 물들면서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기는커녕 기본적인 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자 회원인 일선 체육관장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권투위와 홍수환씨 측의 만남은 대화로 해결되지 않았다.

권투위 측은 홍수환씨 측이 직원을 내쫓고 사무실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등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홍수환씨 측은 권투위가 대화를 거부하고 즉각 사무실을 폐쇄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경위야 어떻든 권투위 사무실을 '접수'하게 된 '개혁파' 권투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새판짜기'에 돌입했다.

그 결과 비대위는 올해 1월7일 서울 중구 구민회관 지하 1층 회의실에서 전국총회를 열고 홍수환씨를 제22대 권투위 회장으로 선출했다.

신임 사무총장으로는 유명우씨를 임명했고, 이사진 13명을 새로 뽑는 등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홍수환씨는 취임 일성으로 "이제부터 한국 프로 복싱의 새 역사를 다시 쓰겠다"면서 "권투를 다시 최고의 스포츠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회 소집 절차와 결의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비대위가 탄생시킨 새 권투위 집행부는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됐다.

전 권투위 집행부 인사들로 구성된 한국프로권투정상화위원회는 이러한 약점을 놓치지 않고 반격을 시작했다.

결국 올해 5월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총회 소집 절차와 결의 과정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다며 홍수환씨를 권투위 회장으로 선출한 총회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여기에 더해 홍수환, 유명우씨는 권투위 회장과 사무총장직을 사칭해 권투위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7월30일 검찰로부터 각각 벌금 300만원 처분을 받았다.

24일에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이 홍수환, 유명우, 장병오, 김진철, 장 철씨 등 5명에 대해 권투위 사무실을 무단으로 점거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100만원에 구약식(벌금) 기소했다.

권투위 사무실을 점거했던 나머지 14명에게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밖에도 홍수환, 유명우씨 등은 총회에서 지회장들의 위임장을 위조한 혐의로 고발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한국프로권투정상화위원회는 "홍수환, 유명우씨 등이 권투위와 전국 대표관장들에게 피해를 준 피해액만 약 10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후안무치한 이들의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위원회는 권투위 사태에 대해 합의 없이 끝까지 책임을 물을 방침이어서 고소 고발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명우씨는 이에 대해 "권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하루빨리 권투위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프로 복싱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복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은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으로부터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다.

연맹이 지난 4월 안상수 전 회장의 사퇴 이후 신임 회장을 선출하는 대신 김영기 권한대행(연맹 부회장)을 정식 회장으로 추대한 것에 대해 AIBA가 절차에 어긋난다며 문제로 삼은 것이다.

연맹이 AIBA 회원 자격을 잃게 되면 한국 복싱은 국제아마추어 무대에서 활동할 길이 사실상 막힌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 AIBA가 종목 운영을 책임지는 국제 대회에는 출장할 수 없다.

이에 연맹의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가 복싱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하고 정상화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복싱연맹이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된 것은 2010년 9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복싱연맹은 연말까지 신임 회장을 뽑을 계획이다. 따라서 한국 아마추어 복싱은 연말까지는 AIBA가 운영을 책임지는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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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지붕 두 가족’ 권투위 분쟁 안갯속
    • 입력 2012-09-26 16:22:49
    연합뉴스
원래 올림픽이 끝나면 아마추어 복싱의 열기를 이어받아 프로 복싱이 활성화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프로 복싱을 관장하는 한국권투위원회(이하 권투위)를 둘러싼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권투위를 둘러싼 파문은 9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투위 행정에 불만을 품은 전 프로 복싱 세계챔피언인 홍수환, 유명우씨 등 왕년의 복서들은 지난해 12월21일 서울 종로 5가에 있는 권투위 사무실을 찾아가 개혁을 요구했다. 표면적으로는 권투위가 비밀리에 이사회를 소집, 신정교 부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권투위 행정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것이다. 한국 프로 복싱은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어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종합격투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선수들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심지어 세계 챔피언이 후원자를 구하지 못해 경기를 치르지 못하거나 시합이 연기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여기에다 권투위가 방만한 운영과 파벌싸움, 내부 비리 등으로 물들면서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기는커녕 기본적인 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자 회원인 일선 체육관장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권투위와 홍수환씨 측의 만남은 대화로 해결되지 않았다. 권투위 측은 홍수환씨 측이 직원을 내쫓고 사무실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등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홍수환씨 측은 권투위가 대화를 거부하고 즉각 사무실을 폐쇄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경위야 어떻든 권투위 사무실을 '접수'하게 된 '개혁파' 권투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새판짜기'에 돌입했다. 그 결과 비대위는 올해 1월7일 서울 중구 구민회관 지하 1층 회의실에서 전국총회를 열고 홍수환씨를 제22대 권투위 회장으로 선출했다. 신임 사무총장으로는 유명우씨를 임명했고, 이사진 13명을 새로 뽑는 등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홍수환씨는 취임 일성으로 "이제부터 한국 프로 복싱의 새 역사를 다시 쓰겠다"면서 "권투를 다시 최고의 스포츠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회 소집 절차와 결의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비대위가 탄생시킨 새 권투위 집행부는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됐다. 전 권투위 집행부 인사들로 구성된 한국프로권투정상화위원회는 이러한 약점을 놓치지 않고 반격을 시작했다. 결국 올해 5월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총회 소집 절차와 결의 과정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다며 홍수환씨를 권투위 회장으로 선출한 총회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여기에 더해 홍수환, 유명우씨는 권투위 회장과 사무총장직을 사칭해 권투위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7월30일 검찰로부터 각각 벌금 300만원 처분을 받았다. 24일에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이 홍수환, 유명우, 장병오, 김진철, 장 철씨 등 5명에 대해 권투위 사무실을 무단으로 점거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100만원에 구약식(벌금) 기소했다. 권투위 사무실을 점거했던 나머지 14명에게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밖에도 홍수환, 유명우씨 등은 총회에서 지회장들의 위임장을 위조한 혐의로 고발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한국프로권투정상화위원회는 "홍수환, 유명우씨 등이 권투위와 전국 대표관장들에게 피해를 준 피해액만 약 10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후안무치한 이들의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위원회는 권투위 사태에 대해 합의 없이 끝까지 책임을 물을 방침이어서 고소 고발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명우씨는 이에 대해 "권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하루빨리 권투위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프로 복싱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복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은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으로부터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다. 연맹이 지난 4월 안상수 전 회장의 사퇴 이후 신임 회장을 선출하는 대신 김영기 권한대행(연맹 부회장)을 정식 회장으로 추대한 것에 대해 AIBA가 절차에 어긋난다며 문제로 삼은 것이다. 연맹이 AIBA 회원 자격을 잃게 되면 한국 복싱은 국제아마추어 무대에서 활동할 길이 사실상 막힌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 AIBA가 종목 운영을 책임지는 국제 대회에는 출장할 수 없다. 이에 연맹의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가 복싱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하고 정상화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복싱연맹이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된 것은 2010년 9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복싱연맹은 연말까지 신임 회장을 뽑을 계획이다. 따라서 한국 아마추어 복싱은 연말까지는 AIBA가 운영을 책임지는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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