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들 고객만족도 조작하는 이유는

입력 2012.11.0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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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들이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조작까지 불사하는 데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고객만족도 점수는 매년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 반영되고, 경영평가 결과는 임직원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기준이 될뿐 아니라 기관장의 진퇴도 결정한다.

실제로 역대 평가에서 매년 기관장 한두 명씩은 최하등급을 받거나 2년 이상 `미흡' 평가를 받아 해임 건의를 받고 옷을 벗었다.

주무기관인 기획재정부 등은 평가의 조작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제도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공공기관, 만족도 점수 높이기 `전쟁'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는 기관에게 일종의 `전쟁'이다.

고객만족도 조사에 따라 임직원의 성과급이 다르게 지급되는 것을 넘어 기관장의 진퇴까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기관의 일반 직원에게는 성과급이 `생계비'이기 때문에 만족도 점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한 공사 관계자는 "공기업 직원에게 상여금은 `보너스'가 아니라 실질적인 `생활비'"라면서 "경영평가가 직원들의 생계비를 쥐고 있기 때문에 공사 노조위원장까지도 평가점수를 위해 뛰어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평소에 업무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 금융 공공기관 관계자는 "평소에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매년 평가가 반복되다 보니 몇 년 지나면 더는 강구할 방안이 떨어지고 업무강도를 더 높일 수도 없게 돼 점수 상승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공적 기능이라는 설립 목적보다는 정부지침 이행, 고객만족도 평가 등에 몰두하는 부작용이 야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만족도 점수를 부풀리는 편법이 사용된다. 다른 분야에서는 점수를 크게 끌어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공사의 관계자는 "까다로운 경영평가 시스템에서는 1점이라도 아깝다"며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편법을 동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평가점수가 많이 상승했던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평가 전에 고객을 개별적으로 방문해 좋은 점수를 부탁했다"면서 "알고 보니 다른 공공기관은 다들 이렇게 해왔고 심지어 전담팀까지 꾸려서 운영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정직하게 임했던 우리만 피해를 봤던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행태는 국민에게도 결국 피해로 돌아간다.

익명을 요구한 준정부기관 관계자는 "사장을 비롯한 임원은 연봉제이기 때문에 성과급이 깎이면 수천만 원씩 날아간다"면서 "경영평가 기간뿐 아니라 거의 1년 내내 경영평가에 집중하면서 본래 업무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게 된다"고 꼬집었다.

◇정부, 대책은 내놨지만…효과 있을까

기획재정부는 이런 조작 여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지난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올해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평가부터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재부 대책의 요지는 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하지 않은 고객이나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는데 실패한 법인고객 등을 해당 기관이 조사대상자 명단에서 제외할 수 있는 재량을 크게 제한한 것이다.

기관들이 나쁜 점수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고객을 명단에서 임의로 빼는 행위를 막은 것이다.

아울러 실사 기간을 기존 2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보다 충실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 기재부의 입장이다.

기재부 담당자는 "조사업체에 설문 항목을 바꿔달라고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더니 공기업의 반발이 매우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과연 빠르게 진화하는 고객만족도 조작 수법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울러 법인 고객 비중이 높은 공공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평가방식 자체의 문제도 남아있다.

최근 한국조세연구원 김지영 연구원이 2007∼2010년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평가에 참여한 99개 기관을 조사한 결과, 전체 고객 중 조사에 참가하는 표본의 비율이 클수록 고객만족도 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수가 적은 만큼 사업자와 공공기관의 관계가 긴밀해 고득점을 받아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조작 행위를 단속하려는 정부의 의지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행정안전부 공기업과 관계자는 단속 필요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공기업끼리 경쟁이 워낙 심해서 서로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감시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면서 "암행감찰을 하려 해도 행안부 인력으로는 460개 산하기관을 다 감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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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기관들 고객만족도 조작하는 이유는
    • 입력 2012-11-05 07:36:51
    연합뉴스
공공기관들이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조작까지 불사하는 데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고객만족도 점수는 매년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 반영되고, 경영평가 결과는 임직원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기준이 될뿐 아니라 기관장의 진퇴도 결정한다. 실제로 역대 평가에서 매년 기관장 한두 명씩은 최하등급을 받거나 2년 이상 `미흡' 평가를 받아 해임 건의를 받고 옷을 벗었다. 주무기관인 기획재정부 등은 평가의 조작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제도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공공기관, 만족도 점수 높이기 `전쟁'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는 기관에게 일종의 `전쟁'이다. 고객만족도 조사에 따라 임직원의 성과급이 다르게 지급되는 것을 넘어 기관장의 진퇴까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기관의 일반 직원에게는 성과급이 `생계비'이기 때문에 만족도 점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한 공사 관계자는 "공기업 직원에게 상여금은 `보너스'가 아니라 실질적인 `생활비'"라면서 "경영평가가 직원들의 생계비를 쥐고 있기 때문에 공사 노조위원장까지도 평가점수를 위해 뛰어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평소에 업무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 금융 공공기관 관계자는 "평소에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매년 평가가 반복되다 보니 몇 년 지나면 더는 강구할 방안이 떨어지고 업무강도를 더 높일 수도 없게 돼 점수 상승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공적 기능이라는 설립 목적보다는 정부지침 이행, 고객만족도 평가 등에 몰두하는 부작용이 야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만족도 점수를 부풀리는 편법이 사용된다. 다른 분야에서는 점수를 크게 끌어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공사의 관계자는 "까다로운 경영평가 시스템에서는 1점이라도 아깝다"며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편법을 동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평가점수가 많이 상승했던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평가 전에 고객을 개별적으로 방문해 좋은 점수를 부탁했다"면서 "알고 보니 다른 공공기관은 다들 이렇게 해왔고 심지어 전담팀까지 꾸려서 운영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정직하게 임했던 우리만 피해를 봤던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행태는 국민에게도 결국 피해로 돌아간다. 익명을 요구한 준정부기관 관계자는 "사장을 비롯한 임원은 연봉제이기 때문에 성과급이 깎이면 수천만 원씩 날아간다"면서 "경영평가 기간뿐 아니라 거의 1년 내내 경영평가에 집중하면서 본래 업무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게 된다"고 꼬집었다. ◇정부, 대책은 내놨지만…효과 있을까 기획재정부는 이런 조작 여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지난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올해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평가부터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재부 대책의 요지는 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하지 않은 고객이나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는데 실패한 법인고객 등을 해당 기관이 조사대상자 명단에서 제외할 수 있는 재량을 크게 제한한 것이다. 기관들이 나쁜 점수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고객을 명단에서 임의로 빼는 행위를 막은 것이다. 아울러 실사 기간을 기존 2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보다 충실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 기재부의 입장이다. 기재부 담당자는 "조사업체에 설문 항목을 바꿔달라고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더니 공기업의 반발이 매우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과연 빠르게 진화하는 고객만족도 조작 수법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울러 법인 고객 비중이 높은 공공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평가방식 자체의 문제도 남아있다. 최근 한국조세연구원 김지영 연구원이 2007∼2010년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평가에 참여한 99개 기관을 조사한 결과, 전체 고객 중 조사에 참가하는 표본의 비율이 클수록 고객만족도 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수가 적은 만큼 사업자와 공공기관의 관계가 긴밀해 고득점을 받아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조작 행위를 단속하려는 정부의 의지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행정안전부 공기업과 관계자는 단속 필요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공기업끼리 경쟁이 워낙 심해서 서로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감시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면서 "암행감찰을 하려 해도 행안부 인력으로는 460개 산하기관을 다 감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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