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 “동양 감독들, 할리우드에 신선한 공기”

입력 2012.11.0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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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블록버스터 ’라이프 오브 파이’ 소개..두 번째 내한



"영화가 서양에서 시작돼 발전했지만, 할리우드도 점점 반복적이고 지루해졌죠. 동양 감독들은 고유한 문화적 배경으로 할리우드에 신선한 공기를 줄 수 있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거장으로 우뚝 선 리안(李安.58) 감독은 자신이 할리우드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와호장룡’(2000)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브로크백 마운틴’(2005)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색, 계’(2007)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들어섰다.



내년 1월 3일 국내 개봉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소개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5일 여의도 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한국 감독들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인들을 대거 영입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나도 동양에서 자랐지만 할리우드의 영화들을 보고 배웠죠. 그래서 서양의 영화 언어에 동양적인 것을 가미시킬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원하는 것은 이런 새로움이죠. 할리우드는 생각보다 장벽이 높지 않습니다. 지금 할리우드에 있는 한국 감독들의 흥행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감독들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과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감독들이 대부분 나와 비슷할 텐데, 어릴 때부터 어른들한테 지시받는 데 익숙하죠. 그런데 할리우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말로 표현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힘든 일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시험대이고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죠. 처음엔 나도 불편했는데 할리우드 스타일로 내 생각을 긍정하기 시작했더니 점점 더 영화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지에 주력할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는 제작뿐 아니라 배급에 있어서 주류 영화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죠. 그래서 대통령이 정책을 설명하듯 감독도 영화의 의도나 그 밖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으로 비칠 거예요(웃음)."



그의 신작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시아 출신인 그의 장점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3D 블록버스터 영화에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동양의 특별한 철학·종교의 가치관을 담아냈다.



원작인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썼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작가가 인도, 터키, 이란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뒤 집필한 작품으로, 동양적인 색채가 강하다.



"동양적인 소재를 서양인인 캐나다 작가가 쓰고 다시 동양인인 내가 영화로 연출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많은 아시아적인 것들이 가미됐고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나 신앙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겼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인 인도 소년이 동물원 동물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민을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망망대해의 구명보트 위에 호랑이와 단둘이 남게 되는데, 소년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며 바다 위에서 겪는 신비한 모험을 그렸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화하면서 바다와 호랑이의 움직임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게 큰 과제였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촬영하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소년과 바다, 동물인 호랑이를 다루고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죠. 특히 바다가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3D로 시도하게 됐습니다. 3천 명이나 되는 스태프가 4년 동안 나와 함께 일했습니다. 또 철학과 신앙이 담긴 책을 영화로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죠. 내가 이 도전을 받아들인 이유는 소설책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텔링과 모험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그런 환상을 표현하는 것은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하고자 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감독이 직접 설명하고 보여준 영상 세 부분은 시각 효과가 뛰어났다. 바다에 몰아치는 폭풍우가 스펙터클하게 연출됐고 호랑이는 CG가 결합된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로 실제 호랑이의 모습과 매끄럽게 연결됐다.



그는 3D 영상에 대해 "태평양의 바다를 표류하는 장면이 3D 표현으로 가능해졌다"며 "3D는 이제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예술을 표현하는 매체"라고 정의했다.



영화를 만드는 기본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영혼’(soul)과 ’마음’(heart)을 힘줘 얘기했다.



"영화 만드는 건 하나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철학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그러하기에 영화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굉장히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지는 작업이죠. 영화마다 소재와 이야기, 배우, 스태프, 그 영화가 갖는 장애물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르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어떤 환상(illusion)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 자신부터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부터 환상을 믿고 빠져들어야 관객도 나만큼 믿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영화는 성공할 수 없어요. 나머지는 스태프와 함께 기술을 통해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색, 계’의 주연 여배우 탕웨이를 사랑해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 인사도 전했다.



"’색, 계’를 갖고 한국에 처음 왔는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서 우리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특히 탕웨이를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 성원으로 탕웨이가 배우로서 제2의 도약을 하고 힘든 시기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영화의 수중 장면을 대만에서 촬영한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당장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영화가 어디서 만들어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소재와 이야기죠. 소재와 이야기가 얼마나 철학적이고 감성적으로 날 사로잡는지를 고려합니다. 한국은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3위 안에 드는 영화 시장이라고 봅니다. 아주 건강하고 발전된 영화산업을 보유하고 있죠. 좋은 소재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한국에 달려와서 영화를 만들고 친구도 만들고 싶어요. 그런 날이 언젠가 꼭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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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 “동양 감독들, 할리우드에 신선한 공기”
    • 입력 2012-11-05 16:21:25
    연합뉴스
신작 블록버스터 ’라이프 오브 파이’ 소개..두 번째 내한

"영화가 서양에서 시작돼 발전했지만, 할리우드도 점점 반복적이고 지루해졌죠. 동양 감독들은 고유한 문화적 배경으로 할리우드에 신선한 공기를 줄 수 있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거장으로 우뚝 선 리안(李安.58) 감독은 자신이 할리우드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와호장룡’(2000)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브로크백 마운틴’(2005)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색, 계’(2007)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들어섰다.

내년 1월 3일 국내 개봉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소개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5일 여의도 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한국 감독들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인들을 대거 영입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나도 동양에서 자랐지만 할리우드의 영화들을 보고 배웠죠. 그래서 서양의 영화 언어에 동양적인 것을 가미시킬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원하는 것은 이런 새로움이죠. 할리우드는 생각보다 장벽이 높지 않습니다. 지금 할리우드에 있는 한국 감독들의 흥행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감독들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과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감독들이 대부분 나와 비슷할 텐데, 어릴 때부터 어른들한테 지시받는 데 익숙하죠. 그런데 할리우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말로 표현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힘든 일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시험대이고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죠. 처음엔 나도 불편했는데 할리우드 스타일로 내 생각을 긍정하기 시작했더니 점점 더 영화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지에 주력할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는 제작뿐 아니라 배급에 있어서 주류 영화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죠. 그래서 대통령이 정책을 설명하듯 감독도 영화의 의도나 그 밖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으로 비칠 거예요(웃음)."

그의 신작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시아 출신인 그의 장점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3D 블록버스터 영화에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동양의 특별한 철학·종교의 가치관을 담아냈다.

원작인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썼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작가가 인도, 터키, 이란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뒤 집필한 작품으로, 동양적인 색채가 강하다.

"동양적인 소재를 서양인인 캐나다 작가가 쓰고 다시 동양인인 내가 영화로 연출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많은 아시아적인 것들이 가미됐고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나 신앙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겼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인 인도 소년이 동물원 동물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민을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망망대해의 구명보트 위에 호랑이와 단둘이 남게 되는데, 소년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며 바다 위에서 겪는 신비한 모험을 그렸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화하면서 바다와 호랑이의 움직임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게 큰 과제였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촬영하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소년과 바다, 동물인 호랑이를 다루고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죠. 특히 바다가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3D로 시도하게 됐습니다. 3천 명이나 되는 스태프가 4년 동안 나와 함께 일했습니다. 또 철학과 신앙이 담긴 책을 영화로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죠. 내가 이 도전을 받아들인 이유는 소설책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텔링과 모험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그런 환상을 표현하는 것은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하고자 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감독이 직접 설명하고 보여준 영상 세 부분은 시각 효과가 뛰어났다. 바다에 몰아치는 폭풍우가 스펙터클하게 연출됐고 호랑이는 CG가 결합된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로 실제 호랑이의 모습과 매끄럽게 연결됐다.

그는 3D 영상에 대해 "태평양의 바다를 표류하는 장면이 3D 표현으로 가능해졌다"며 "3D는 이제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예술을 표현하는 매체"라고 정의했다.

영화를 만드는 기본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영혼’(soul)과 ’마음’(heart)을 힘줘 얘기했다.

"영화 만드는 건 하나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철학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그러하기에 영화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굉장히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지는 작업이죠. 영화마다 소재와 이야기, 배우, 스태프, 그 영화가 갖는 장애물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르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어떤 환상(illusion)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 자신부터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부터 환상을 믿고 빠져들어야 관객도 나만큼 믿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영화는 성공할 수 없어요. 나머지는 스태프와 함께 기술을 통해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색, 계’의 주연 여배우 탕웨이를 사랑해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 인사도 전했다.

"’색, 계’를 갖고 한국에 처음 왔는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서 우리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특히 탕웨이를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 성원으로 탕웨이가 배우로서 제2의 도약을 하고 힘든 시기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영화의 수중 장면을 대만에서 촬영한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당장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영화가 어디서 만들어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소재와 이야기죠. 소재와 이야기가 얼마나 철학적이고 감성적으로 날 사로잡는지를 고려합니다. 한국은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3위 안에 드는 영화 시장이라고 봅니다. 아주 건강하고 발전된 영화산업을 보유하고 있죠. 좋은 소재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한국에 달려와서 영화를 만들고 친구도 만들고 싶어요. 그런 날이 언젠가 꼭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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