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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재건의 꿈’ 영글다
입력 2012.11.11 (09:33)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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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0년 초, 무려 3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대지진의 참사, 기억하십니까?

아이티는 그 때 국토가 폐허처럼 변했고, 사람들은 집도 잃고 일자리도 잃어 난민같은 생활을 이어왔는데요.

단 하나 버리지 않은 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재건의 꿈’이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아이티 국민들의 이 꿈이 영글기 시작했는데요.

우리 한국기업이 아이티 재건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임장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규모 7의 강진에 폐허로 변해버린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30만 명이 숨지고, 150여만 명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대지진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를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아이티는 지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지진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이재민들의 텐트촌은 그 규모가 줄었지만, 아직도 30만 명 이상의 생활터전입니다.

이렇다할 산업적 기반이 없는 나라에서 대지진까지 일어나다 보니 투자와 일자리는 더욱 줄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하릴없이 앉아있는 젊은이들이 거리마다 넘쳐납니다.

23살인 윌키 씨는 노점상으로 종일 일해 하루 2달러, 우리 돈으로 2천2백 원 정도를 법니다.

<인터뷰> 윌키(23살) : “이게 내 직업이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돈을 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다 보니 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구사하는 고급 인력들도 갈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인터뷰> 코나이(대학 졸업자) : “아이티 국민의 60~65%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요. 미국 기업들이 투자를 해줘야 합니다.”

이런 아이티에 큰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북쪽으로 3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 2의 도시 캐페이시언.

포르토프랭스와는 달리 지진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시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낙후돼 우리나라의 1950년대를 연상케 합니다.

이 스산한 도시의 외곽 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딴 세상이 펼쳐집니다.

거대한 현대식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면적이 서울 여의도와 맞먹는, 카리브해 최대 규모입니다.

각종 공장과 호텔을 지을 부지는 물론, 자체 발전소까지 들어서 있습니다.

아이티 대지진 후 국제 사회와 아이티 정부가 힘을 합쳐 추진한 최대 재건 프로젝트입니다.

산업단지의 공식 개관을 선언하는 기념 행사.

유엔군이 경비를 선 가운데, 국제 사회의 주요 인사와 언론들이 참석해 아이티의 새로운 시작을 지켜봤습니다.

<녹취> 미셸 마르텔리(아이티 대통령) : “드디어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이건 제 꿈이었습니다. 외국 기업들이 아이티에 투자하는 것을 더 이상 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티 재건을 주도적으로 지원해온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미 국무장관도 함께 참석해 이 산업단지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녹취> 힐러리 클린턴(미 국무장관) : “이 산업단지 개관은 아이티에 새로운 기회를 의미합니다. 근로자와 그 가족들에게 참으로 위대한 날입니다.”

개관 행사가 끝난 뒤, 클린턴 부부가 산업단지 내 의류공장으로 향합니다.

산업단지 최초로, 또 유일하게 입주한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공장 내부를 돌아보며 막 생산된 셔츠에 사인도 합니다.

단순한 입주 기업을 넘어서 산업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미국·아이티 정부와 함께 추진해온 이 의류업체는 한국 기업입니다.

이제 갓 지어진 공장의 현대식 생산라인에서 재봉틀이 쉴새없이 돌아갑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천 명이 넘습니다.

20개 생산라인에서 하루 만 장 가까운 셔츠가 만들어집니다.

근로자들은 일주일에 48시간을 일하고, 상여금 등을 포함해 월 평균 190달러, 우리 돈으로 21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법정 최저 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 하지만 이곳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세이(21살) : “이렇게 현대식 시설에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주는 일자리를 갖게 돼 좋아요.”

이곳 근로자들은 대부분 얼마 전까지 재봉틀을 구경해본 적도, 생산 현장에서 일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출퇴근 시간을 왜 지켜야 하는지부터 수세식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합니다.

<인터뷰> 조문영(세아상역 아이티법인장) : "그러한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옳다고 저희가 생각을 했고 그게 이 나라를 지원하고 원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해서 저희는 아예 기능이 없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택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대부분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로 두 시간 떨어진 무관세 지역에 대규모 의류공장이 들어선다는 점에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찰스 맥머레이(코올스 구매담당부사장) : “이 의류공장은 아이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미국 시장의 유행에 신속하게 대응해 좋은 제품을 납품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어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이 공장은 첫 단추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5년 안에 공장 21개를 더 짓고, 근로자도 2만 명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이 산업단지의 최대 고용 가능 인력은 4만 명.

아이티 최대 재건 프로젝트가 창출하는 고용의 절반을 한국 기업이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인터뷰> 로랑 라모트(아이티 총리) : “한국에 감사하고 한국 국민들에게 감사합니다. 세아상역의 의류공장 건설은 다른 외국 기업들에게도 아이티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를 갖게 됐지만, 근로자들의 삶은 여전히 척박합니다.

의류공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23살 테리예 씨의 퇴근길을 따라가 봤습니다.

3킬로미터를 걸어서 다닌다는 그녀의 집은 옹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 방은 대낮에도 컴컴합니다.

부엌이라고 부르기엔 변변한 조리 기구 하나 없는 공간, 이곳에서 테리예씨는 다섯 동생과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합니다.

<인터뷰>테리예(의류공장 근로자) : “돈을 모아서 가족과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테리예 씨 경우처럼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국제 사회의 프로젝트도 시작됐습니다.

산업단지에서 차로 5분쯤 달리자,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 현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단지에는 지금 주택 750채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입주가 이뤄지는데, 지진 피해자들과 산업단지 근로자들에게 최우선 입주 자격이 주어집니다.

몇 년에 걸쳐 5천 채를 공급하면 2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아이티 최대 주택단지가 됩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이재민들을 이곳으로 이동시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신도시를 육성하겠다는 복안이 담겼습니다.

주택 단지 안에 들어설 학교도 내년 가을 개교를 목표로 첫 삽을 떴습니다.

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 교육할 이 학교는 미국 뉴욕에서 교장을 초빙해 아이티 최고의 학교로 키운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 델빌(세아학교 교장) :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오는 것이 중요하고 미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이 학교도 한국 기업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건설되고 운영됩니다.

이른바 '사업과 원조'를 결합한 모델입니다.

<인터뷰> 김웅기(세아상역 회장) : "기업들이 투자를 할 때 함께 교육에 대한 투자도 해서 그들에게 몇 년을 당겨주는 것, 그런 부분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학교를 넓혀갈 생각입니다. 또 다른 학교를 또 만들고, 그래서.."

세계 각국이 대지진 당시 발표했던 지원 약속은 3년 가까운 세월동안 절반 정도만 지켜졌습니다.

아이티 재건의 핵심 요소인 외국 기업들의 투자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속에서 아이티 최대 민간기업이 되겠다는 한국 기업의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지진의 폐허에서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는 아이티의 꿈도 영글어가고 있습니다.
  • [월드리포트] ‘재건의 꿈’ 영글다
    • 입력 2012-11-11 09:33:0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0년 초, 무려 3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대지진의 참사, 기억하십니까?

아이티는 그 때 국토가 폐허처럼 변했고, 사람들은 집도 잃고 일자리도 잃어 난민같은 생활을 이어왔는데요.

단 하나 버리지 않은 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재건의 꿈’이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아이티 국민들의 이 꿈이 영글기 시작했는데요.

우리 한국기업이 아이티 재건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임장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규모 7의 강진에 폐허로 변해버린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30만 명이 숨지고, 150여만 명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대지진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를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아이티는 지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지진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이재민들의 텐트촌은 그 규모가 줄었지만, 아직도 30만 명 이상의 생활터전입니다.

이렇다할 산업적 기반이 없는 나라에서 대지진까지 일어나다 보니 투자와 일자리는 더욱 줄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하릴없이 앉아있는 젊은이들이 거리마다 넘쳐납니다.

23살인 윌키 씨는 노점상으로 종일 일해 하루 2달러, 우리 돈으로 2천2백 원 정도를 법니다.

<인터뷰> 윌키(23살) : “이게 내 직업이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돈을 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다 보니 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구사하는 고급 인력들도 갈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인터뷰> 코나이(대학 졸업자) : “아이티 국민의 60~65%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요. 미국 기업들이 투자를 해줘야 합니다.”

이런 아이티에 큰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북쪽으로 3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 2의 도시 캐페이시언.

포르토프랭스와는 달리 지진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시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낙후돼 우리나라의 1950년대를 연상케 합니다.

이 스산한 도시의 외곽 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딴 세상이 펼쳐집니다.

거대한 현대식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면적이 서울 여의도와 맞먹는, 카리브해 최대 규모입니다.

각종 공장과 호텔을 지을 부지는 물론, 자체 발전소까지 들어서 있습니다.

아이티 대지진 후 국제 사회와 아이티 정부가 힘을 합쳐 추진한 최대 재건 프로젝트입니다.

산업단지의 공식 개관을 선언하는 기념 행사.

유엔군이 경비를 선 가운데, 국제 사회의 주요 인사와 언론들이 참석해 아이티의 새로운 시작을 지켜봤습니다.

<녹취> 미셸 마르텔리(아이티 대통령) : “드디어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이건 제 꿈이었습니다. 외국 기업들이 아이티에 투자하는 것을 더 이상 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티 재건을 주도적으로 지원해온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미 국무장관도 함께 참석해 이 산업단지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녹취> 힐러리 클린턴(미 국무장관) : “이 산업단지 개관은 아이티에 새로운 기회를 의미합니다. 근로자와 그 가족들에게 참으로 위대한 날입니다.”

개관 행사가 끝난 뒤, 클린턴 부부가 산업단지 내 의류공장으로 향합니다.

산업단지 최초로, 또 유일하게 입주한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공장 내부를 돌아보며 막 생산된 셔츠에 사인도 합니다.

단순한 입주 기업을 넘어서 산업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미국·아이티 정부와 함께 추진해온 이 의류업체는 한국 기업입니다.

이제 갓 지어진 공장의 현대식 생산라인에서 재봉틀이 쉴새없이 돌아갑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천 명이 넘습니다.

20개 생산라인에서 하루 만 장 가까운 셔츠가 만들어집니다.

근로자들은 일주일에 48시간을 일하고, 상여금 등을 포함해 월 평균 190달러, 우리 돈으로 21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법정 최저 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 하지만 이곳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세이(21살) : “이렇게 현대식 시설에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주는 일자리를 갖게 돼 좋아요.”

이곳 근로자들은 대부분 얼마 전까지 재봉틀을 구경해본 적도, 생산 현장에서 일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출퇴근 시간을 왜 지켜야 하는지부터 수세식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합니다.

<인터뷰> 조문영(세아상역 아이티법인장) : "그러한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옳다고 저희가 생각을 했고 그게 이 나라를 지원하고 원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해서 저희는 아예 기능이 없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택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대부분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로 두 시간 떨어진 무관세 지역에 대규모 의류공장이 들어선다는 점에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찰스 맥머레이(코올스 구매담당부사장) : “이 의류공장은 아이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미국 시장의 유행에 신속하게 대응해 좋은 제품을 납품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어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이 공장은 첫 단추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5년 안에 공장 21개를 더 짓고, 근로자도 2만 명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이 산업단지의 최대 고용 가능 인력은 4만 명.

아이티 최대 재건 프로젝트가 창출하는 고용의 절반을 한국 기업이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인터뷰> 로랑 라모트(아이티 총리) : “한국에 감사하고 한국 국민들에게 감사합니다. 세아상역의 의류공장 건설은 다른 외국 기업들에게도 아이티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를 갖게 됐지만, 근로자들의 삶은 여전히 척박합니다.

의류공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23살 테리예 씨의 퇴근길을 따라가 봤습니다.

3킬로미터를 걸어서 다닌다는 그녀의 집은 옹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 방은 대낮에도 컴컴합니다.

부엌이라고 부르기엔 변변한 조리 기구 하나 없는 공간, 이곳에서 테리예씨는 다섯 동생과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합니다.

<인터뷰>테리예(의류공장 근로자) : “돈을 모아서 가족과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테리예 씨 경우처럼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국제 사회의 프로젝트도 시작됐습니다.

산업단지에서 차로 5분쯤 달리자,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 현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단지에는 지금 주택 750채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입주가 이뤄지는데, 지진 피해자들과 산업단지 근로자들에게 최우선 입주 자격이 주어집니다.

몇 년에 걸쳐 5천 채를 공급하면 2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아이티 최대 주택단지가 됩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이재민들을 이곳으로 이동시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신도시를 육성하겠다는 복안이 담겼습니다.

주택 단지 안에 들어설 학교도 내년 가을 개교를 목표로 첫 삽을 떴습니다.

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 교육할 이 학교는 미국 뉴욕에서 교장을 초빙해 아이티 최고의 학교로 키운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 델빌(세아학교 교장) :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오는 것이 중요하고 미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이 학교도 한국 기업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건설되고 운영됩니다.

이른바 '사업과 원조'를 결합한 모델입니다.

<인터뷰> 김웅기(세아상역 회장) : "기업들이 투자를 할 때 함께 교육에 대한 투자도 해서 그들에게 몇 년을 당겨주는 것, 그런 부분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학교를 넓혀갈 생각입니다. 또 다른 학교를 또 만들고, 그래서.."

세계 각국이 대지진 당시 발표했던 지원 약속은 3년 가까운 세월동안 절반 정도만 지켜졌습니다.

아이티 재건의 핵심 요소인 외국 기업들의 투자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속에서 아이티 최대 민간기업이 되겠다는 한국 기업의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지진의 폐허에서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는 아이티의 꿈도 영글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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