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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이 사람] 중국 새 지도자 ‘시진핑’
입력 2012.11.15 (11:18) 지구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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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앞으로 10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시진핑 총서기에게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로 꼽히는 시진핑은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13억 중국을 이끌 지도자로 성장해 왔습니다.

지구촌 이 사람에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 1953년 혁명 원로인 시중쉰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어난 시진핑.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의외로 파란만장합니다.

고난은 그가 9살 때 부친이 권력 투쟁에 밀려 실각하고, 1966년 문화 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농촌으로 쫓겨난 그는 고된 노동을 하며 동굴집에서 숙식을 했는데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신뢰를 얻어 스무 살에 공산당원이 됐고 촌장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인터뷰> 시 춘양(량자허 지역 관리) : "시진핑이 량자허에 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와 비슷한 사람 같았고 모두 그를 좋아했어요."

시진핑은 회고록을 통해 '이때의 노동이 이후 자신의 삶의 기초가 됐다'고 밝혔는데요.

정치 지도자로서 현장 경험과 자신감을 중시하는 것도 어린 시절 농촌 생활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인터뷰> 탄 후와(옌안대학교 교수) : "시진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민중을 이해하게 됐고 현실을 직사하게 됐으니까요. 중국 지도자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 중 하나죠."

1975년 시진핑은 7년간의 농촌 생활을 마치고 베이징의 칭화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이후 중앙 정치 무대에 서기 전까지 그는 당과 군, 그리고 지방을 오가며 활약을 펼쳤습니다.

특히 푸젠성과 저장성 등에서 근무한 20여 년 동안 경제 개혁·개발에 놀라운 수완을 보여줬는데요.

시진핑이 푸젠성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화는 유명합니다.

타이완 자본 유치에 발벗고 나선 덕분이었습니다.

이 같은 능력과 검소한 성품 등을 두루 인정받은 그는 상하이 당서기를 거쳐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올라섰고.

이후 국가 부주석과 군사위 부주석을 맡으며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아 왔습니다.

<인터뷰> 시진핑(국가 부주석/지난 2월) : "풍요롭고 안정적인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의 경제 개발을 위해 힘을 보탤 것입니다."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해온 시진핑이 최고 지도자로서도 중국의 얼마큼 변화시킬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구촌 이 사람이었습니다.
  • [지구촌 이 사람] 중국 새 지도자 ‘시진핑’
    • 입력 2012-11-15 11:18:40
    지구촌뉴스
<앵커 멘트>

앞으로 10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시진핑 총서기에게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로 꼽히는 시진핑은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13억 중국을 이끌 지도자로 성장해 왔습니다.

지구촌 이 사람에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 1953년 혁명 원로인 시중쉰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어난 시진핑.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의외로 파란만장합니다.

고난은 그가 9살 때 부친이 권력 투쟁에 밀려 실각하고, 1966년 문화 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농촌으로 쫓겨난 그는 고된 노동을 하며 동굴집에서 숙식을 했는데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신뢰를 얻어 스무 살에 공산당원이 됐고 촌장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인터뷰> 시 춘양(량자허 지역 관리) : "시진핑이 량자허에 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와 비슷한 사람 같았고 모두 그를 좋아했어요."

시진핑은 회고록을 통해 '이때의 노동이 이후 자신의 삶의 기초가 됐다'고 밝혔는데요.

정치 지도자로서 현장 경험과 자신감을 중시하는 것도 어린 시절 농촌 생활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인터뷰> 탄 후와(옌안대학교 교수) : "시진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민중을 이해하게 됐고 현실을 직사하게 됐으니까요. 중국 지도자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 중 하나죠."

1975년 시진핑은 7년간의 농촌 생활을 마치고 베이징의 칭화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이후 중앙 정치 무대에 서기 전까지 그는 당과 군, 그리고 지방을 오가며 활약을 펼쳤습니다.

특히 푸젠성과 저장성 등에서 근무한 20여 년 동안 경제 개혁·개발에 놀라운 수완을 보여줬는데요.

시진핑이 푸젠성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화는 유명합니다.

타이완 자본 유치에 발벗고 나선 덕분이었습니다.

이 같은 능력과 검소한 성품 등을 두루 인정받은 그는 상하이 당서기를 거쳐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올라섰고.

이후 국가 부주석과 군사위 부주석을 맡으며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아 왔습니다.

<인터뷰> 시진핑(국가 부주석/지난 2월) : "풍요롭고 안정적인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의 경제 개발을 위해 힘을 보탤 것입니다."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해온 시진핑이 최고 지도자로서도 중국의 얼마큼 변화시킬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구촌 이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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