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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FA제도 아버지’ 향년 95세 별세
입력 2012.11.28 (10:52) 연합뉴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 위원장을 지내며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만드는 등 선수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마빈 밀러가 28일(한국시간)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AP통신은 8월부터 간암과 싸워 오던 밀러가 이날 새벽 맨해튼의 집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미국철강노동자협회에서 일하던 밀러는 구단과 선수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던 1966년 설립된 MLBPA의 초대 위원장으로 부임, 1982년까지 단체를 이끌며 오랫동안 이어진 투쟁을 이끌었다.



밀러는 1968년 처음으로 구단주들과 노사 협약을 체결해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뎠고, 수차례 파업을 주도해 선수 권익을 신장시키고자 노력했다.



1972년 13일간의 첫 파업을 주도한 이래 1976년, 1981년 등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은 굵직한 파업의 중심에 밀러가 있었다.



특히 1981년 시즌 도중 벌어진 파업은 무려 7주 동안 경기장의 불을 꺼놓기도 했다.



이런 투쟁의 결과로 MLBPA는 1976년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뛴 선수는 자유계약을 할 수 있다’는 FA 권리를 드디어 얻어냈다.



보류 선수 제도로 대표되는 ‘노예 계약’의 악습을 끊은 MLBPA는 이후 구단 및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동등한 처지에서 협상을 치르며 강한 힘을 얻게 됐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수많은 ‘천만 장자’ 선수들이 탄생한 배경에는 밀러가 주도한 투쟁이 깔려 있는 셈이다.



현재 MLBPA의 위원장인 마이클 와이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선수는 밀러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면서 "그의 영향력은 야구를 뛰어넘어 스포츠의 ‘근대’를 열었으며 선수, 구단, 팬 모두의 이익을 증가시켰다"고 감사를 표했다.



와이너 위원장의 말대로 밀러가 이끈 싸움은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을 비롯한 리그 전체의 이익 증대로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밀러 부임 당시보다 500% 높아졌고, 그 사이 메이저리그의 전체 수입도 1967년 5천만 달러에서 올해 750억 달러로 치솟았다.



메이저리그의 전 커미셔너인 페이 빈센트는 "밀러는 지난 50년 동안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며 "그는 야구만이 아니라 스포츠 비즈니스 전체를 바꿔 놓았다"고 추모의 말을 전했다.



빈센트는 "그는 선수들을 해방했으며, 과거에는 거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이제는 판을 주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밀러 역시 생전에 가진 마지막 강연에서 "대립해 온 두 곳이 예산, 연봉, 수익 등에서 계속 신기록을 세우는 ‘윈-윈’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승리하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놀라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한 바 있다.
  • ‘MLB FA제도 아버지’ 향년 95세 별세
    • 입력 2012-11-28 10:52:10
    연합뉴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 위원장을 지내며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만드는 등 선수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마빈 밀러가 28일(한국시간)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AP통신은 8월부터 간암과 싸워 오던 밀러가 이날 새벽 맨해튼의 집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미국철강노동자협회에서 일하던 밀러는 구단과 선수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던 1966년 설립된 MLBPA의 초대 위원장으로 부임, 1982년까지 단체를 이끌며 오랫동안 이어진 투쟁을 이끌었다.



밀러는 1968년 처음으로 구단주들과 노사 협약을 체결해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뎠고, 수차례 파업을 주도해 선수 권익을 신장시키고자 노력했다.



1972년 13일간의 첫 파업을 주도한 이래 1976년, 1981년 등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은 굵직한 파업의 중심에 밀러가 있었다.



특히 1981년 시즌 도중 벌어진 파업은 무려 7주 동안 경기장의 불을 꺼놓기도 했다.



이런 투쟁의 결과로 MLBPA는 1976년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뛴 선수는 자유계약을 할 수 있다’는 FA 권리를 드디어 얻어냈다.



보류 선수 제도로 대표되는 ‘노예 계약’의 악습을 끊은 MLBPA는 이후 구단 및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동등한 처지에서 협상을 치르며 강한 힘을 얻게 됐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수많은 ‘천만 장자’ 선수들이 탄생한 배경에는 밀러가 주도한 투쟁이 깔려 있는 셈이다.



현재 MLBPA의 위원장인 마이클 와이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선수는 밀러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면서 "그의 영향력은 야구를 뛰어넘어 스포츠의 ‘근대’를 열었으며 선수, 구단, 팬 모두의 이익을 증가시켰다"고 감사를 표했다.



와이너 위원장의 말대로 밀러가 이끈 싸움은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을 비롯한 리그 전체의 이익 증대로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밀러 부임 당시보다 500% 높아졌고, 그 사이 메이저리그의 전체 수입도 1967년 5천만 달러에서 올해 750억 달러로 치솟았다.



메이저리그의 전 커미셔너인 페이 빈센트는 "밀러는 지난 50년 동안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며 "그는 야구만이 아니라 스포츠 비즈니스 전체를 바꿔 놓았다"고 추모의 말을 전했다.



빈센트는 "그는 선수들을 해방했으며, 과거에는 거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이제는 판을 주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밀러 역시 생전에 가진 마지막 강연에서 "대립해 온 두 곳이 예산, 연봉, 수익 등에서 계속 신기록을 세우는 ‘윈-윈’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승리하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놀라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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