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그냥 복귀 해야할 것 같았어요”

입력 2012.12.10 (09:47) 수정 2012.12.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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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여왕' 김연아(22·고려대)는 어린 나이에도 타고난 '강심장'을 앞세워 피 말리는 경쟁의 무대를 헤쳐 온 최고의 운동선수다.

하지만 그가 인생에서 마주친 가장 무거운 '선택의 시간'은 오히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난 이후의 지난 2년간이 아니었을까.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던 김연아는 그때 갑작스레 자신의 다음 인생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위에 섰다.

설령 주변의 여러 조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선택의 몫은 오로지 김연아 자신의 것이었다.

빙판 위에서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의연하고 재빠르게 '활로'를 찾아내곤 하던 김연아도 이 갈림길 앞에서는 2년 이상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서 김연아는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며 선수 생활 연장을 선언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거치면서 스포츠 외교와 행정에 관심에 관심이 커졌고, 2018년 평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그가 밝힌 청사진이었다.

그 첫 걸음인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9일(현지시간) NRW대회가 끝난 독일 도르트문트 아이스스포르트젠트룸에서, 김연아가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을 내리기까지 과정을 들어 봤다.

김연아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거의 16~17년 동안 이 생활만 해 왔다"면서 "다른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 당시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특히 "혼자서 생각만 해도 힘들 텐데 다들 내가 뭘 선택할지에 집중하니 부담이 커져서 진로에 대해 생각할수록 잘 모르겠더라"고 설명했다.

선수로서 최고의 나날을 보냈지만, 다시 빙판에 서는 것을 꺼리게 만든 것도 선수의 생활 자체였다.

김연아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힘든 훈련 과정이 가장 걱정됐다"면서 "또 경기를 나갈 때마다 느끼는 긴장감을 비롯한 감정들을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대회에서도 그런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 "어릴 때부터 밴쿠버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마치고 나니 의욕도 생기지 않고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올림픽 이후의 허탈감도 고민을 거들었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껴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점점 굳어 가는 김연아의 표정에서 그동안의 깊은 고민이 묻어나왔다.

기억을 더듬는 눈도 약간 촉촉해져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자신에게 이런 괴로움을 안긴 선수로서의 본능에 이끌리듯 다시 빙판으로 돌아왔다.

늘 외국 전지훈련지에 머물며 타향 생활을 하던 삶을 마무리하고 고향 땅을 밟은 것이 큰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어린 선수들과 연습을 하다 보니, 예전처럼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힘들겠지만, 힘들다는 것을 정말 잘 알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어릴 때부터 해 온 일이기 때문에 그냥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죠."

한국이라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환경은 실제로 새 출발을 시작한 김연아에게 큰 힘이다.

김연아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지내던 때에는 '훈련을 위해 머문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동료 선수들과 훈련하고 '진짜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것이 그리웠다"면서 "이제는 그렇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훈련하고 일상생활도 편해진 것 같다"고 웃었다.

한국 코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에 대해서도 "의사소통도 잘되고 어릴때부터 함께해 온 선생님들이라 편하다"면서 "큰 무리가 없다면 다음 시즌에도 함께하고 싶다"고 즐거워했다.

이렇게 김연아의 고민은 끝났다.

대학교 4학년으로 또래의 친구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시기에, 김연아도 똑같이 불확실한 미래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회는 김연아가 '껍데기'를 깨고 나와 직접 선택한 길에서 처음 맞이한 시험과도 같았다.

그리고 201.61점이라는 훌륭한 점수로 그 시험대를 잘 통과했다.

김연아는 "진로를 결정하고 나서는 훈련하는 것이 두려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홀가분하더라"면서 "첫 대회도 무사히 마친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웃었다.

이 말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져 가는 것은 김연아의 연기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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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아 “그냥 복귀 해야할 것 같았어요”
    • 입력 2012-12-10 09:47:34
    • 수정2012-12-10 09:52:17
    연합뉴스
'피겨 여왕' 김연아(22·고려대)는 어린 나이에도 타고난 '강심장'을 앞세워 피 말리는 경쟁의 무대를 헤쳐 온 최고의 운동선수다. 하지만 그가 인생에서 마주친 가장 무거운 '선택의 시간'은 오히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난 이후의 지난 2년간이 아니었을까.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던 김연아는 그때 갑작스레 자신의 다음 인생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위에 섰다. 설령 주변의 여러 조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선택의 몫은 오로지 김연아 자신의 것이었다. 빙판 위에서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의연하고 재빠르게 '활로'를 찾아내곤 하던 김연아도 이 갈림길 앞에서는 2년 이상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서 김연아는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며 선수 생활 연장을 선언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거치면서 스포츠 외교와 행정에 관심에 관심이 커졌고, 2018년 평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그가 밝힌 청사진이었다. 그 첫 걸음인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9일(현지시간) NRW대회가 끝난 독일 도르트문트 아이스스포르트젠트룸에서, 김연아가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을 내리기까지 과정을 들어 봤다. 김연아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거의 16~17년 동안 이 생활만 해 왔다"면서 "다른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 당시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특히 "혼자서 생각만 해도 힘들 텐데 다들 내가 뭘 선택할지에 집중하니 부담이 커져서 진로에 대해 생각할수록 잘 모르겠더라"고 설명했다. 선수로서 최고의 나날을 보냈지만, 다시 빙판에 서는 것을 꺼리게 만든 것도 선수의 생활 자체였다. 김연아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힘든 훈련 과정이 가장 걱정됐다"면서 "또 경기를 나갈 때마다 느끼는 긴장감을 비롯한 감정들을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대회에서도 그런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 "어릴 때부터 밴쿠버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마치고 나니 의욕도 생기지 않고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올림픽 이후의 허탈감도 고민을 거들었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껴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점점 굳어 가는 김연아의 표정에서 그동안의 깊은 고민이 묻어나왔다. 기억을 더듬는 눈도 약간 촉촉해져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자신에게 이런 괴로움을 안긴 선수로서의 본능에 이끌리듯 다시 빙판으로 돌아왔다. 늘 외국 전지훈련지에 머물며 타향 생활을 하던 삶을 마무리하고 고향 땅을 밟은 것이 큰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어린 선수들과 연습을 하다 보니, 예전처럼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힘들겠지만, 힘들다는 것을 정말 잘 알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어릴 때부터 해 온 일이기 때문에 그냥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죠." 한국이라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환경은 실제로 새 출발을 시작한 김연아에게 큰 힘이다. 김연아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지내던 때에는 '훈련을 위해 머문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동료 선수들과 훈련하고 '진짜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것이 그리웠다"면서 "이제는 그렇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훈련하고 일상생활도 편해진 것 같다"고 웃었다. 한국 코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에 대해서도 "의사소통도 잘되고 어릴때부터 함께해 온 선생님들이라 편하다"면서 "큰 무리가 없다면 다음 시즌에도 함께하고 싶다"고 즐거워했다. 이렇게 김연아의 고민은 끝났다. 대학교 4학년으로 또래의 친구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시기에, 김연아도 똑같이 불확실한 미래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회는 김연아가 '껍데기'를 깨고 나와 직접 선택한 길에서 처음 맞이한 시험과도 같았다. 그리고 201.61점이라는 훌륭한 점수로 그 시험대를 잘 통과했다. 김연아는 "진로를 결정하고 나서는 훈련하는 것이 두려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홀가분하더라"면서 "첫 대회도 무사히 마친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웃었다. 이 말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져 가는 것은 김연아의 연기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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