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필리핀서 실종된 아들 못 잊다가…

입력 2013.01.03 (08:36) 수정 2013.01.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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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희망을 품고 새해 설계를 해야 할 1월 1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이 있습니다.

2년 동안 실종된 아들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결국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겁니다.

이 남성의 아들은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납치를 당했고, 그 후 숨졌다고 추정만 할 뿐 생사 확인도 되지 않고 있는데요.

김기흥 기자, 납치범을 잡았는데도 아들의 행방을 찾지 못하면서, 더 절망적인 상황이 됐다고 하죠?

<기자 멘트>

그렇습니다.

결국 다음 세상에서라도 아들을 보겠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건데요.

2년 전 아들이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난 뒤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생업을 포기하고 경찰서와 외교부 등 정부 부처를 발이 닿도록 쫓아다녔는데요.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아들의 5박 6일 동안의 휴가 아닌 휴가는 계속되고, 아들을 그리던 아버지는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는데요

남겨진 유족들의 슬픔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해 첫날 날아든 비보.
갑작스런 가장의 죽음 앞에 가족들은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인터뷰> 홍경화(故 홍봉의 씨의 딸) : “남아있는 가족은 어떡하라고….”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쉰일곱의 생을 스스로 놓아버린 홍봉의 씨.

눈발이 흩날리던 1월 1일 새벽, 청주의 한 야산 정자에서 홍 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김일식(경사/청주청남경찰서 용암지구대) : “구토한 흔적을 가지고 땅에 엎드려서 있었습니다. 그 주변에는 소주병하고 농약병 유서가 담겨있는 검정색 가방이 있었습니다.”

그가 생의 끝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남겨진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2년 전 실종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있었습니다.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음성변조) : “죽으면 우리 아들 만날 수 있다고 밤마다 벽 쳐다보고 울면서 ‘석동아 석동아’ 부르고….”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음성변조) :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마음대로는 안 되고 하고 싶어도 안 되고 그러니까 막다른 골목에서 이 길을 택한 거예요, 지금.”

단란하기만 했던 가족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지난 2011년 9월.

직장 생활을 하던 홍 씨의 아들 석동 씨가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나고 부터였습니다.

<인터뷰> 고금예(故 홍봉의 씨의 부인) : “‘아들 여행 잘 하고 있어?’ 이러니까 ‘네’이러면서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고 천만 원을 부쳐달라고 한 거죠.”

크면서 용돈 한 번 달라고 한 적 없던 아들의 다급한 부탁에 두말없이 돈을 부쳐준 어머니 고 씨.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들은 5박 6일의 휴가가 끝난 뒤에도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고 씨는 끔찍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녹취> 납치범 목소리 (2011년 11월) : “천만 원 준비해서 모두 달러로 준비하세요. 달러로 준비해서 먼저 삼백만원을 송금하세요.”

그리고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녹취> 납치범 목소리 (2011년 11월) : “ 미안하지만, 죽었습니다. (네?) 죽었어요. (왜 죽어요?) 뼈라도 찾아가세요. 뼈. ”

급한 마음에 천만 원을 보냈지만 납치범들은 돈만 빼간 채 행적을 감췄고 관계당국에서는 그저 기다려 보라는 답변만 내놨습니다.

<인터뷰> 故 홍봉의 (2012년 10월) : “ 진짜 피 토할 일 아니에요. 대사, 영사, 외교부 전화 걸면 한다는 소리가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잡는 게 아니고 필리핀 경찰이 잡는 거다”

그 때부터 아들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선 부부.

아내 고 씨는 필리핀을 세 번이나 오가고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홍 씨는 아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 (음성변조) : “경찰서로 외교부로 수없이 뛰고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지내면서 살았죠.

그렇게 아들을 찾아 나선 지 1년 만인 지난해 10월, 드디어 납치범의 정체가 드러났는데요.

아들을 납치한 일당은 지난 2007년 안양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한 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3인조 강도단.

하지만 체포된 지 사흘 만에 부두목이 유치장에서 자살하고 나머지 두 명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졌습니다.

<인터뷰> 고금예(故 홍봉의 씨의 부인) : “차라리 안 잡을 때가 더 좋았어(요). 그래도 잡으면 된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 잡아도 이렇게 더 오리무중이 돼버렸으니까 그게 더 미치는 거죠. "

아들을 찾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진 뒤 아버지 홍 씨는 지난 4개월 동안 이곳 사찰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녹취> 사찰 관계자(음성변조) : “아들 문제는 아들 문제고 본인은 본인대로 사셔야 하니까 생활이 문제니까 열심히 사시라고 격려해주고 다독여줬어요.”

하지만 결국 홍 씨는 새해를 앞두고 저승에 가서라도 아들의 생사를 확인해야겠다는 유서만 남긴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음성변조)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살았으려니 살았으려니 우리 다 그랬지. 기도도 엄청 했고요.”

오빠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은 석동 씨의 여동생은 모든 비극이 다 자기 탓인 것만 같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홍경화(故 홍봉의 씨의 딸) : “취직을 하고 첫 휴가였어요. 오빠가 비행기 티켓을 알아봐 달라, 만약에 없으면 국내 여행이라도 해야겠다. 그런데 그때 제가 필리핀행 티켓을 끊어준 거죠. 그래서 진짜 제일 후회되는 (거예요)….”

석동씨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게 해 달라며 남은 가족들은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인터뷰> 고금예(故 홍봉의 씨의 부인) : “제발 우리 아들 좀 찾아주세요. 나는 내 아들만 찾아주면 돼… 내 아들만. 아니면 우리 신랑을 살려놓든가. ”

실종된 홍 씨를 포함해 필리핀에서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 관광객은 10여 명.

피해자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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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03 08:50:05
    • 수정2013-01-03 0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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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희망을 품고 새해 설계를 해야 할 1월 1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이 있습니다. 2년 동안 실종된 아들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결국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겁니다. 이 남성의 아들은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납치를 당했고, 그 후 숨졌다고 추정만 할 뿐 생사 확인도 되지 않고 있는데요. 김기흥 기자, 납치범을 잡았는데도 아들의 행방을 찾지 못하면서, 더 절망적인 상황이 됐다고 하죠? <기자 멘트> 그렇습니다. 결국 다음 세상에서라도 아들을 보겠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건데요. 2년 전 아들이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난 뒤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생업을 포기하고 경찰서와 외교부 등 정부 부처를 발이 닿도록 쫓아다녔는데요.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아들의 5박 6일 동안의 휴가 아닌 휴가는 계속되고, 아들을 그리던 아버지는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는데요 남겨진 유족들의 슬픔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해 첫날 날아든 비보. 갑작스런 가장의 죽음 앞에 가족들은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인터뷰> 홍경화(故 홍봉의 씨의 딸) : “남아있는 가족은 어떡하라고….”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쉰일곱의 생을 스스로 놓아버린 홍봉의 씨. 눈발이 흩날리던 1월 1일 새벽, 청주의 한 야산 정자에서 홍 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김일식(경사/청주청남경찰서 용암지구대) : “구토한 흔적을 가지고 땅에 엎드려서 있었습니다. 그 주변에는 소주병하고 농약병 유서가 담겨있는 검정색 가방이 있었습니다.” 그가 생의 끝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남겨진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2년 전 실종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있었습니다.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음성변조) : “죽으면 우리 아들 만날 수 있다고 밤마다 벽 쳐다보고 울면서 ‘석동아 석동아’ 부르고….”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음성변조) :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마음대로는 안 되고 하고 싶어도 안 되고 그러니까 막다른 골목에서 이 길을 택한 거예요, 지금.” 단란하기만 했던 가족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지난 2011년 9월. 직장 생활을 하던 홍 씨의 아들 석동 씨가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나고 부터였습니다. <인터뷰> 고금예(故 홍봉의 씨의 부인) : “‘아들 여행 잘 하고 있어?’ 이러니까 ‘네’이러면서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고 천만 원을 부쳐달라고 한 거죠.” 크면서 용돈 한 번 달라고 한 적 없던 아들의 다급한 부탁에 두말없이 돈을 부쳐준 어머니 고 씨.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들은 5박 6일의 휴가가 끝난 뒤에도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고 씨는 끔찍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녹취> 납치범 목소리 (2011년 11월) : “천만 원 준비해서 모두 달러로 준비하세요. 달러로 준비해서 먼저 삼백만원을 송금하세요.” 그리고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녹취> 납치범 목소리 (2011년 11월) : “ 미안하지만, 죽었습니다. (네?) 죽었어요. (왜 죽어요?) 뼈라도 찾아가세요. 뼈. ” 급한 마음에 천만 원을 보냈지만 납치범들은 돈만 빼간 채 행적을 감췄고 관계당국에서는 그저 기다려 보라는 답변만 내놨습니다. <인터뷰> 故 홍봉의 (2012년 10월) : “ 진짜 피 토할 일 아니에요. 대사, 영사, 외교부 전화 걸면 한다는 소리가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잡는 게 아니고 필리핀 경찰이 잡는 거다” 그 때부터 아들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선 부부. 아내 고 씨는 필리핀을 세 번이나 오가고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홍 씨는 아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 (음성변조) : “경찰서로 외교부로 수없이 뛰고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지내면서 살았죠. 그렇게 아들을 찾아 나선 지 1년 만인 지난해 10월, 드디어 납치범의 정체가 드러났는데요. 아들을 납치한 일당은 지난 2007년 안양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한 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3인조 강도단. 하지만 체포된 지 사흘 만에 부두목이 유치장에서 자살하고 나머지 두 명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졌습니다. <인터뷰> 고금예(故 홍봉의 씨의 부인) : “차라리 안 잡을 때가 더 좋았어(요). 그래도 잡으면 된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 잡아도 이렇게 더 오리무중이 돼버렸으니까 그게 더 미치는 거죠. " 아들을 찾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진 뒤 아버지 홍 씨는 지난 4개월 동안 이곳 사찰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녹취> 사찰 관계자(음성변조) : “아들 문제는 아들 문제고 본인은 본인대로 사셔야 하니까 생활이 문제니까 열심히 사시라고 격려해주고 다독여줬어요.” 하지만 결국 홍 씨는 새해를 앞두고 저승에 가서라도 아들의 생사를 확인해야겠다는 유서만 남긴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녹취> 故 홍봉의 씨의 지인(음성변조)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살았으려니 살았으려니 우리 다 그랬지. 기도도 엄청 했고요.” 오빠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은 석동 씨의 여동생은 모든 비극이 다 자기 탓인 것만 같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홍경화(故 홍봉의 씨의 딸) : “취직을 하고 첫 휴가였어요. 오빠가 비행기 티켓을 알아봐 달라, 만약에 없으면 국내 여행이라도 해야겠다. 그런데 그때 제가 필리핀행 티켓을 끊어준 거죠. 그래서 진짜 제일 후회되는 (거예요)….” 석동씨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게 해 달라며 남은 가족들은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인터뷰> 고금예(故 홍봉의 씨의 부인) : “제발 우리 아들 좀 찾아주세요. 나는 내 아들만 찾아주면 돼… 내 아들만. 아니면 우리 신랑을 살려놓든가. ” 실종된 홍 씨를 포함해 필리핀에서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 관광객은 10여 명. 피해자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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