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 양육비 지원, 사교육만 배불리나?

입력 2013.01.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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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만0~5세 모든 가정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과 종일반(12시간) 보육비 중 하나를 받게 됐으나, 이는 지금까지 전문기관들이 실제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제안한 정책 방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확인됐다.

부모의 진정한 보육·양육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현재 보육료 지원의 7분의 1,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양육수당을 늘려 격차를 줄이고, 대상은 가정양육이 필요한 만0~2세로 한정하며, 고소득층 지원에 따른 비효율성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득상위 30% 중 27%는 '아이 사교육 중' =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아 양육비용 지원정책의 효과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5월 현재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 보육료를 지원받는 만0~2세 엄마 1천7명 가운데 현 양육비 수준(만0세 20만원, 1세 15만원, 2세 10만원)이 적정하다고 답한 비율은 월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월 가구소득이 200만원을 넘는 만2세 엄마 가운데 무려 70.1%가 현 양육수당 수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육아정책연구소도 이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양육수당 지원대상의 소득기준을 상향조정해도 비용 효과 차원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당시 이 연구 결과 해석·토론 과정에는 복지부 실무자들도 참여했고, 정부 역시 작년 9월 보육체계 개편안에서 양육보조금 대상을 '차상위이하'에서 확대하되, 소득상위 30%는 제외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국회는 올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이를 뒤집고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만0~2세 가구에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소득층에까지 지급되는 양육보조금이 '불가피한 가정양육을 지원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학원 과외 등 사교육에 쓰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계층별 출산·양육 행태 분석 및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만0~5세 자녀를 둔 2차 여성가족패널(2008년) 1천838가구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30% 계층의 경우 27.1%가 학원 등 사교육(사교육 8.9%, 사교육+어린이집 6.3%, 사교육+유치원 11.9%)을 이용하고 있었다.

현행 지원체계에서는 정부가 인가한 어린이집·유치원이 아닌 유아대상 영어학원 등 사설 기관의 경우 아이를 보내도 보육료 지원을 받지 못하지만, '보육시설 미이용자'로 분류돼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은 받을 수 있다.

양미선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지금도 오후 2~3시 어린이집이 끝나면 아이를 바로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개편된 보육 정책에 따라 올해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지고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10만~20만원으로 보육·양육 선택권" VS 부모 "47만원은 줘야 집에서 키운다" = 이처럼 올해 양육보조금 대상자는 기존 '차상위이하' 계층에서 고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가정'으로 확대된 반면, 양육보조금 액수(10만~20만원)는 동결됐다.

앞서 지난해초 보육시설 부족과 어린이집 휴업 등 '보육대란'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부모의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보육시설에 보낼 경우에만 보육비 지원을 받는 제도 아래에서 가정양육이 더 바람직한 만0~2세까지 모두 보육시설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아도 현금으로 10만~20만원을 받게 되는만큼 만0~2세 가정 상당 수는 굳이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 같은 기대와 다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아 양육비용 지원정책의 효과와 개선방안' 조사에서 만0~2세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 보육료를 지원받는 여성 중 차상위이하계층이 "이 정도 양육수당이면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데려와 집에서 키우겠다"고 답한 금액 수준은 47만400원에 달했다.

양육수당을 현재 받고 있는 엄마들이 제시한 적정 양육수당도 ▲만0세 35만8천600원 ▲1세 29만5천600원 ▲2세 28만200원 등으로, 현행 지원액보다 16만~18만원 많았다.

더구나 현행 보육료 지원액이 시설에 직접 지급되는 기본보육료를 포함해 연령에 따라 40만1천~75만5천원에 이르는 만큼 10만~20만원에 불과한 양육보조금은 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기에 턱없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육아정책연구소도 "부모의 양육·보육 선택권 보장 측면에서 양육비를 30만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되 여성의 노동 의지를 저해하지 않도록 40만원 선은 넘지 않도록 하고, 양육비 지원 대상을 불가피한 가정 보육 사례가 많은 영아(만0~2세)로 한정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6~7시간 이용에 12시간 보육비 지원…'맞벌이 아이 기피' 우려 = 만0~5세 모든 가구에 12시간 종일반 보육비를 획일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예산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계층별 출산·양육 행태 분석 및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만0~5세 자녀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는 경우 평균 주당 이용시간은 각각 33.67시간, 30.70시간으로 하루(주5일 기준)로 환산하면 6시간을 조금 웃돌았다. 엄마가 취업한 경우만 따로 계산해도 주당 어린이집 37.49시간, 유치원 33.20시간으로 하루 평균 7시간 남짓이었다.

정부도 지난해 9월 이 같은 선행 수요 조사 등을 근거로 "보육료 지원을 맞벌이 가구 등에는 종일반, 보육시간이 길지 않은 경우에는 반일반으로 차등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국회를 거치며 '차등 없는 종일반 지원'으로 선회했다.

물론 보육교사 보수 등 처우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있으나, 실수요와 무관하게 보육시설 운영자 수입만 늘려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도 "실제 수요 조사를 해보면 짧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꽤 많은데, 저희(복지부)의 (대국회)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똑같은 (12시간) 보육료 지원을 받으면 보육시설 입장에서는 길게 아이를 맡아야 하는 맞벌이 자녀를 기피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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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소득층 양육비 지원, 사교육만 배불리나?
    • 입력 2013-01-06 18: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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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만0~5세 모든 가정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과 종일반(12시간) 보육비 중 하나를 받게 됐으나, 이는 지금까지 전문기관들이 실제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제안한 정책 방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확인됐다. 부모의 진정한 보육·양육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현재 보육료 지원의 7분의 1,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양육수당을 늘려 격차를 줄이고, 대상은 가정양육이 필요한 만0~2세로 한정하며, 고소득층 지원에 따른 비효율성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득상위 30% 중 27%는 '아이 사교육 중' =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아 양육비용 지원정책의 효과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5월 현재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 보육료를 지원받는 만0~2세 엄마 1천7명 가운데 현 양육비 수준(만0세 20만원, 1세 15만원, 2세 10만원)이 적정하다고 답한 비율은 월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월 가구소득이 200만원을 넘는 만2세 엄마 가운데 무려 70.1%가 현 양육수당 수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육아정책연구소도 이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양육수당 지원대상의 소득기준을 상향조정해도 비용 효과 차원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당시 이 연구 결과 해석·토론 과정에는 복지부 실무자들도 참여했고, 정부 역시 작년 9월 보육체계 개편안에서 양육보조금 대상을 '차상위이하'에서 확대하되, 소득상위 30%는 제외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국회는 올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이를 뒤집고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만0~2세 가구에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소득층에까지 지급되는 양육보조금이 '불가피한 가정양육을 지원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학원 과외 등 사교육에 쓰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계층별 출산·양육 행태 분석 및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만0~5세 자녀를 둔 2차 여성가족패널(2008년) 1천838가구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30% 계층의 경우 27.1%가 학원 등 사교육(사교육 8.9%, 사교육+어린이집 6.3%, 사교육+유치원 11.9%)을 이용하고 있었다. 현행 지원체계에서는 정부가 인가한 어린이집·유치원이 아닌 유아대상 영어학원 등 사설 기관의 경우 아이를 보내도 보육료 지원을 받지 못하지만, '보육시설 미이용자'로 분류돼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은 받을 수 있다. 양미선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지금도 오후 2~3시 어린이집이 끝나면 아이를 바로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개편된 보육 정책에 따라 올해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지고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10만~20만원으로 보육·양육 선택권" VS 부모 "47만원은 줘야 집에서 키운다" = 이처럼 올해 양육보조금 대상자는 기존 '차상위이하' 계층에서 고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가정'으로 확대된 반면, 양육보조금 액수(10만~20만원)는 동결됐다. 앞서 지난해초 보육시설 부족과 어린이집 휴업 등 '보육대란'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부모의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보육시설에 보낼 경우에만 보육비 지원을 받는 제도 아래에서 가정양육이 더 바람직한 만0~2세까지 모두 보육시설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아도 현금으로 10만~20만원을 받게 되는만큼 만0~2세 가정 상당 수는 굳이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 같은 기대와 다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아 양육비용 지원정책의 효과와 개선방안' 조사에서 만0~2세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 보육료를 지원받는 여성 중 차상위이하계층이 "이 정도 양육수당이면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데려와 집에서 키우겠다"고 답한 금액 수준은 47만400원에 달했다. 양육수당을 현재 받고 있는 엄마들이 제시한 적정 양육수당도 ▲만0세 35만8천600원 ▲1세 29만5천600원 ▲2세 28만200원 등으로, 현행 지원액보다 16만~18만원 많았다. 더구나 현행 보육료 지원액이 시설에 직접 지급되는 기본보육료를 포함해 연령에 따라 40만1천~75만5천원에 이르는 만큼 10만~20만원에 불과한 양육보조금은 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기에 턱없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육아정책연구소도 "부모의 양육·보육 선택권 보장 측면에서 양육비를 30만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되 여성의 노동 의지를 저해하지 않도록 40만원 선은 넘지 않도록 하고, 양육비 지원 대상을 불가피한 가정 보육 사례가 많은 영아(만0~2세)로 한정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6~7시간 이용에 12시간 보육비 지원…'맞벌이 아이 기피' 우려 = 만0~5세 모든 가구에 12시간 종일반 보육비를 획일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예산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계층별 출산·양육 행태 분석 및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만0~5세 자녀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는 경우 평균 주당 이용시간은 각각 33.67시간, 30.70시간으로 하루(주5일 기준)로 환산하면 6시간을 조금 웃돌았다. 엄마가 취업한 경우만 따로 계산해도 주당 어린이집 37.49시간, 유치원 33.20시간으로 하루 평균 7시간 남짓이었다. 정부도 지난해 9월 이 같은 선행 수요 조사 등을 근거로 "보육료 지원을 맞벌이 가구 등에는 종일반, 보육시간이 길지 않은 경우에는 반일반으로 차등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국회를 거치며 '차등 없는 종일반 지원'으로 선회했다. 물론 보육교사 보수 등 처우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있으나, 실수요와 무관하게 보육시설 운영자 수입만 늘려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도 "실제 수요 조사를 해보면 짧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꽤 많은데, 저희(복지부)의 (대국회)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똑같은 (12시간) 보육료 지원을 받으면 보육시설 입장에서는 길게 아이를 맡아야 하는 맞벌이 자녀를 기피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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