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원시의 거대한 에너지 ‘비스트’

입력 2013.01.3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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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각색상 후보

선사시대에 살던 거대한 야생 동물 '오록스'. 우주의 균형이 깨져 빙하가 무너져 내리면 오록스가 깨어난다.

빙하, 오록스, 폭풍우, 늪, 게, 동물들, 그리고 여섯 살 소녀가 등장하는 영화 '비스트(Beasts of the Southern Wild)'는 슬프지만 기이하고 마법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현대인들을 이끌고 간다.

원시에 가까운 야생의 삶,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 거대한 에너지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독창적인 이야기와 강렬한 이미지들은 뇌리에 남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세계의 남쪽 끝 자락에는 있는 마을 '욕조섬(bathtub island)'에는 여섯 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월리스)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 아빠 '윙크'(드와이트 헨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남극의 눈이 녹으면 육지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들이 쌓아놓은 둑의 바깥에 있다. 세상과 단절된 늪지 마을 욕조섬에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하루하루가 축제 같은, 나름의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욕조섬 사람들은 우주의 균형이 깨지면 선사시대 빙하기 얼음에 갇힌 거대하고 무서운 동물 '오록스'가 깨어난다고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폭풍우가 몰아치고 욕조섬은 하룻밤새 완전히 물에 잠긴다.

윙크와 허쉬파피는 살아남아 다른 생존자 몇몇과 함께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분투한다.

둑을 부숴야 늪지대의 물이 빠져나갈 거라고 생각한 윙크는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둑을 폭파시키려 한다.

영화 '비스트'는 가상의 공간인 욕조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이 처한 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욕조섬 둑 너머의 회색빛 공장을 바라보며 윙크가 "참 흉하다(ugly)"고 욕하는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을, 우주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이 순간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영화는 판타지와 결합하면서도 극도의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허쉬파피는 내레이션으로 "온 우주는 모든 게 서로 딱 들어맞게 돼 있어요. 한 조각이라도 빠지면, 그게 제일 작은 조각이라고 해도 우주 전체가 무너져버리죠"라고 말한다.

빙하가 녹아내려 세상에 나온 오록스는 균형이 무너져버린 우주를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이 원시의 상태에서 지녔을 거대한 에너지를 표상한다.

그래서 욕조섬으로 들이닥친 오록스 떼와 허쉬파피가 서로 마주 보는 순간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오록스와 허쉬파피의 서로에 대한 응시는 언뜻 기싸움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서로의 영혼을 깊이 꿰뚫어보고 에너지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허쉬파피는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고 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절망 속에서도 우주의 원시 에너지를 몸으로 흡수하며 점점 강해지고 성장한다.

이 영화는 허리케인과 석유유출 사건으로 폐허가 된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한 늪지대에서 촬영됐다. 현실이면서도 현실 같지 않은 풍경들은 이 영화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영화의 팽팽한 긴장은 주인공 소녀와 아버지를 연기한 두 배우에게서 나오는 부분이 크다.

촬영 당시 6살이었던 배우 쿠벤자네 월리스는 감독이 루이지애나 지역 4천여 명의 아이들을 만난 끝에 발견한 보석이다. 눈빛만으로도 강한 힘을 뿜어내는 이 소녀는 연기 같지 않은 연기로 미국비평가협회 신인여우상과 LA비평가협회상 신인상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연소(9세)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괴팍하면서도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아빠 역의 드와이트 헨리는 뉴올리언스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던 중 제작진의 눈에 띄어 삼고초려 끝에 캐스팅됐다. LA비평가협회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로 장편영화에 데뷔하는 벤 제틀린 감독은 작곡가, 애니메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영화의 음악 작곡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민중독립영화제작단체인 '코트13'의 창립멤버로, 이번 영화 역시 코트13이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제틀린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받았으며,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도 올라 있다. '비스트'는 또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색상까지 주요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2월 7일 개봉. 상영시간 9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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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원시의 거대한 에너지 ‘비스트’
    • 입력 2013-01-31 07:19:30
    연합뉴스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각색상 후보 선사시대에 살던 거대한 야생 동물 '오록스'. 우주의 균형이 깨져 빙하가 무너져 내리면 오록스가 깨어난다. 빙하, 오록스, 폭풍우, 늪, 게, 동물들, 그리고 여섯 살 소녀가 등장하는 영화 '비스트(Beasts of the Southern Wild)'는 슬프지만 기이하고 마법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현대인들을 이끌고 간다. 원시에 가까운 야생의 삶,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 거대한 에너지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독창적인 이야기와 강렬한 이미지들은 뇌리에 남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세계의 남쪽 끝 자락에는 있는 마을 '욕조섬(bathtub island)'에는 여섯 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월리스)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 아빠 '윙크'(드와이트 헨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남극의 눈이 녹으면 육지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들이 쌓아놓은 둑의 바깥에 있다. 세상과 단절된 늪지 마을 욕조섬에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하루하루가 축제 같은, 나름의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욕조섬 사람들은 우주의 균형이 깨지면 선사시대 빙하기 얼음에 갇힌 거대하고 무서운 동물 '오록스'가 깨어난다고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폭풍우가 몰아치고 욕조섬은 하룻밤새 완전히 물에 잠긴다. 윙크와 허쉬파피는 살아남아 다른 생존자 몇몇과 함께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분투한다. 둑을 부숴야 늪지대의 물이 빠져나갈 거라고 생각한 윙크는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둑을 폭파시키려 한다. 영화 '비스트'는 가상의 공간인 욕조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이 처한 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욕조섬 둑 너머의 회색빛 공장을 바라보며 윙크가 "참 흉하다(ugly)"고 욕하는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을, 우주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이 순간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영화는 판타지와 결합하면서도 극도의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허쉬파피는 내레이션으로 "온 우주는 모든 게 서로 딱 들어맞게 돼 있어요. 한 조각이라도 빠지면, 그게 제일 작은 조각이라고 해도 우주 전체가 무너져버리죠"라고 말한다. 빙하가 녹아내려 세상에 나온 오록스는 균형이 무너져버린 우주를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이 원시의 상태에서 지녔을 거대한 에너지를 표상한다. 그래서 욕조섬으로 들이닥친 오록스 떼와 허쉬파피가 서로 마주 보는 순간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오록스와 허쉬파피의 서로에 대한 응시는 언뜻 기싸움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서로의 영혼을 깊이 꿰뚫어보고 에너지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허쉬파피는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고 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절망 속에서도 우주의 원시 에너지를 몸으로 흡수하며 점점 강해지고 성장한다. 이 영화는 허리케인과 석유유출 사건으로 폐허가 된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한 늪지대에서 촬영됐다. 현실이면서도 현실 같지 않은 풍경들은 이 영화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영화의 팽팽한 긴장은 주인공 소녀와 아버지를 연기한 두 배우에게서 나오는 부분이 크다. 촬영 당시 6살이었던 배우 쿠벤자네 월리스는 감독이 루이지애나 지역 4천여 명의 아이들을 만난 끝에 발견한 보석이다. 눈빛만으로도 강한 힘을 뿜어내는 이 소녀는 연기 같지 않은 연기로 미국비평가협회 신인여우상과 LA비평가협회상 신인상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연소(9세)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괴팍하면서도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아빠 역의 드와이트 헨리는 뉴올리언스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던 중 제작진의 눈에 띄어 삼고초려 끝에 캐스팅됐다. LA비평가협회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로 장편영화에 데뷔하는 벤 제틀린 감독은 작곡가, 애니메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영화의 음악 작곡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민중독립영화제작단체인 '코트13'의 창립멤버로, 이번 영화 역시 코트13이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제틀린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받았으며,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도 올라 있다. '비스트'는 또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색상까지 주요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2월 7일 개봉. 상영시간 9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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