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쿠바땅 밟은 ‘망명객’ 콘트레라스

입력 2013.01.3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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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서부 도시 피나 델 리오의 한 야구장.

수 백 명의 팬이 불혹을 넘긴 한 야구인을 보려고 운집했다.

그들은 영웅을 맞듯 열렬히 환영했다. 환대에 놀란 이 야구인은 팬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귀국의 기쁨을 누렸다.

호세 아리엘 콘트레라스(42).

미국프로야구에 쿠바 망명 선수 러시를 주도한 오른손 투수가 조국을 등진지 11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

10년 이상 '배신자'로 해외를 떠돌았으나 이날만큼은 국위를 선양한 '영웅'의 위상을 되찾은 듯했다.

쿠바가 15일부터 국민의 국외여행 규제를 완화하고 1994년 이후 쿠바를 탈출한 망명자·난민들의 입국을 허용하는 새 이민 정책을 펴면서 콘트레라스는 망명 운동선수로는 처음으로 조국에 돌아왔다.

세미프로팀 피나 델 리오 베게로스의 대들보이자 쿠바대표팀 부동의 에이스로 아마추어 야구를 평정한 그는 2002년 멕시코에서 대회를 치르던 중 대표팀 숙소를 박차고 나와 미국으로 도망갔다.

콘트레라스는 2002년 12월 뉴욕 양키스와 4년간 3천200만 달러(약 347억원)에 계약하고 '자본주의'의 품에 안겼다.

그는 193㎝의 큰 키에서 뿜어나오는 시속 150㎞짜리 빠른 볼과 낙차 큰 포크볼로 아마추어를 호령했으나 세계최고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양키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콜로라도 로키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4개 팀을 거치고 통산 78승67패, 평균자책점 4.55라는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작년 시즌 뒤 필라델피아에서 방출돼 지금은 무적 상태다.

리반 에르난데스·올란도 에르난데스 투수 형제 등이 1990년대 빅리그에서 쿠바 야구를 세계에 알렸으나 대박 계약의 물꼬를 튼 주인공은 콘트레라스라는 점에 비춰볼 때 쿠바에서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콘트레라스 이후 강속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신시내티·6년 3천25만 달러), 타자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오클랜드·4년 3천600만 달러)·야시엘 푸이그(로스앤젤레스 다저스·7년 4천200만 달러) 등이 망명길에 올라 천문학적인 액수를 받고 메이저리그로 터전을 옮겼다.

쿠바 당국은 콘트레라스 등 조국을 등진 유명 야구 선수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고 기피 인물로 삼았다.

쿠바 언론에서 그들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아마 최강을 자랑하던 쿠바 야구도 급속도로 내리막을 탔다.

그러나 콘트레라스를 필두로 쿠바 야구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을 기억하는 팬들은 인터넷과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정보를 듣고 계속 그들을 가슴에 담아뒀다.

마침내 강산이 한 번 변한 뒤에야 콘트레라스와 그를 추억하는 팬들은 반갑게 해후했다.

병든 어머니를 돌보고자 조용히 고국을 찾은 콘트레라스는 팬들의 예상을 깬 환대에 매우 놀랐다.

쿠바의 반체제인사인 다고베르토 발데스는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콘트레라스가 팬들로부터 영웅대접을 톡톡히 받았다"며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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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년 만에 쿠바땅 밟은 ‘망명객’ 콘트레라스
    • 입력 2013-01-31 09:50:50
    연합뉴스
쿠바 서부 도시 피나 델 리오의 한 야구장. 수 백 명의 팬이 불혹을 넘긴 한 야구인을 보려고 운집했다. 그들은 영웅을 맞듯 열렬히 환영했다. 환대에 놀란 이 야구인은 팬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귀국의 기쁨을 누렸다. 호세 아리엘 콘트레라스(42). 미국프로야구에 쿠바 망명 선수 러시를 주도한 오른손 투수가 조국을 등진지 11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 10년 이상 '배신자'로 해외를 떠돌았으나 이날만큼은 국위를 선양한 '영웅'의 위상을 되찾은 듯했다. 쿠바가 15일부터 국민의 국외여행 규제를 완화하고 1994년 이후 쿠바를 탈출한 망명자·난민들의 입국을 허용하는 새 이민 정책을 펴면서 콘트레라스는 망명 운동선수로는 처음으로 조국에 돌아왔다. 세미프로팀 피나 델 리오 베게로스의 대들보이자 쿠바대표팀 부동의 에이스로 아마추어 야구를 평정한 그는 2002년 멕시코에서 대회를 치르던 중 대표팀 숙소를 박차고 나와 미국으로 도망갔다. 콘트레라스는 2002년 12월 뉴욕 양키스와 4년간 3천200만 달러(약 347억원)에 계약하고 '자본주의'의 품에 안겼다. 그는 193㎝의 큰 키에서 뿜어나오는 시속 150㎞짜리 빠른 볼과 낙차 큰 포크볼로 아마추어를 호령했으나 세계최고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양키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콜로라도 로키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4개 팀을 거치고 통산 78승67패, 평균자책점 4.55라는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작년 시즌 뒤 필라델피아에서 방출돼 지금은 무적 상태다. 리반 에르난데스·올란도 에르난데스 투수 형제 등이 1990년대 빅리그에서 쿠바 야구를 세계에 알렸으나 대박 계약의 물꼬를 튼 주인공은 콘트레라스라는 점에 비춰볼 때 쿠바에서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콘트레라스 이후 강속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신시내티·6년 3천25만 달러), 타자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오클랜드·4년 3천600만 달러)·야시엘 푸이그(로스앤젤레스 다저스·7년 4천200만 달러) 등이 망명길에 올라 천문학적인 액수를 받고 메이저리그로 터전을 옮겼다. 쿠바 당국은 콘트레라스 등 조국을 등진 유명 야구 선수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고 기피 인물로 삼았다. 쿠바 언론에서 그들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아마 최강을 자랑하던 쿠바 야구도 급속도로 내리막을 탔다. 그러나 콘트레라스를 필두로 쿠바 야구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을 기억하는 팬들은 인터넷과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정보를 듣고 계속 그들을 가슴에 담아뒀다. 마침내 강산이 한 번 변한 뒤에야 콘트레라스와 그를 추억하는 팬들은 반갑게 해후했다. 병든 어머니를 돌보고자 조용히 고국을 찾은 콘트레라스는 팬들의 예상을 깬 환대에 매우 놀랐다. 쿠바의 반체제인사인 다고베르토 발데스는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콘트레라스가 팬들로부터 영웅대접을 톡톡히 받았다"며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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