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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황금기와 암흑기 보내고 돌아왔죠”
입력 2013.01.31 (13:48) 수정 2013.01.31 (13:55) 연합뉴스
7년 만에 새 음반 '러브 샤랄랄라' 발표

가수로 뜨는 게 서울대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던 시절 이정봉은 데뷔곡 '어떤가요'로 단박에 뜨며 '정상의 봉우리'란 별명을 얻었다.

1996년 데뷔 당시 일간지들은 "이정봉의 앨범은 라디오와 전국 클럽을 중심으로 확산돼 한 달여 만에 10만 장 가까운 판매고를 보였다"고 인기를 소개했다.

정품이 아닌 불법 테이프를 팔던 길거리 리어카에서도 이 곡이 지겹게 울리며 '길보드 차트'를 주름잡았다.

최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봉은 "재미있게도 '어떤가요'는 가요 프로그램 1위 후보에도 오른 적이 없다"며 "대신 KBS '가요 톱 텐' 차트에 6개월간 머물렀다.

당시 1집이 50만 장 가량 판매됐다"고 기억했다.

이후 그는 1997년 2집의 '그녀를 위해', 1999년 3집의 '인연'까지 인기 상승 곡선을 이어갔다. 그러나 4집(2000년)부터 6집(2002년)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4년 만인 지난 2006년엔 잃어버린 초심을 찾기 위해 '레오'란 예명으로 다시 1집을 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리고 7년 만인 31일 다시 이정봉으로 세 트랙이 담긴 싱글음반 '러브 샤랄랄라'를 발표했다.

"레오로 방송 출연과 인터뷰 등 할 건 다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죠. 당시 SG워너비를 시작으로 미디엄 템포 발라드가 유행했는데 저도 미디엄 템포를 들고 나왔지만 당시 유행과 밸런스가 맞지 않았어요. '난 이제 가수로서 안되나'란 좌절감이 왔죠. 1990년대 음반업계 호황기를 누려본지라 가요계가 암흑기란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이후 2007년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를 시작으로 아이돌 광풍이 불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앨범 발매를 멀리 했다.

그는 "음악 시장의 변화가 컸던 탓인지 레오로 음반을 냈을 때부터 적응이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난 훅 올라갔다가 조금씩 하향곡선을 그린 케이스"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공백기 동안 음악에서 멀어진 적은 없다. 백석대에서 실용음악과 강의를 했고 예능 프로그램의 음반 제작도 하고 오는 4월께 개봉할 영화의 음악 감독도 맡았다.

그러던 중 췌장에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침 지난해부터 1990년대 복고 열풍과 함께 8090 가수들이 재조명 받아 다시 앨범을 내도 되겠다는 용기도 얻었다.

실제 '어떤가요'는 지난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삽입돼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MBC TV '나는 가수다'에서 소찬휘가 다시 부르며 귀를 사로잡았다.

이번 음반에는 본인이 작곡하고 편곡한 타이틀곡 '러브 샤랄랄라'와 그룹 SS501 출신 허영생과 듀엣한 수록곡 '사랑아 굿바이' 등이 수록됐다.

'러브 샤랄랄라'를 만들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몇년 전 꿈을 꿨어요. 외길에서 만난 사람을 쫓아갔죠. 그 사람이 바쁘다고 말을 걸지 말라더군요. '왜 바쁘냐'고 물었더니 '1등을 했다'는 겁니다. 외길 끝에 무대와 조명이 보였고 그 사람이 베이스를 치고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르더군요. 노래 제목이 '많지도'라고 했어요. 꿈에서 깨 그 멜로디를 휴대전화에 저장했죠. 후렴구 멜로디와 '러브 샤랄랄라'란 가사는 꿈에서 들은 걸 그대로 옮겼어요."

이 곡에서 이정봉 특유의 바이브레이션과 고음의 가성은 살아있다. 그는 마디를 끊어 녹음하지 않고 '원 테이크(One take:한곡 전체의 노래와 연주를 한번에 녹음하는 방식)'로 여러차례 녹음해 완성했다.

"바이브레이션이 많으면 지저분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만의 특징이니 감추고 가기보다 자연스러운 걸 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곡 '사랑아 굿바이'는 허영생의 음반에 주려던 곡이었지만 이번에 함께 불러 수록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이정봉의 대표곡인 '어떤가요' '그녀를 위해'를 작곡한 신훈철 씨도 함께 했다.

신씨는 이정봉의 호서대학교 선배로 이번 음반 제작도 함께 한 20년 지기.

이정봉은 "작곡과에 재학하며 교내 서클 '태조산' 밴드에서 활동했다"며 "같은 서클의 훈철 형에게 대학가요제에 같이 나가자고 했지만 결국 혼자 나가게 됐다.

1993년 KBS '대학가요축제'에 출전해 자작곡 '안녕 그때는'으로 대상을 탔다.

이후 여러 곳에서 음반 제의가 왔지만 3년간 매니저 문제 등을 겪으며 데뷔하지 못했다.

군대도 가야하니 마지막으로 해보자며 훈철 형과 만든 게 '어떤가요'였다"고 설명했다.

17년이 흘러 1990년대 추억의 가수로 불리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봐도 가수가 되길 잘했다고 했다.

"공백기 모 작가가 전화해 '요즘 뭐하세요'라며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어요. '잊혀진 가수'란 느낌이 싫어 거절했고 이번에 컴백하면서도 체중을 9㎏이나 감량했죠. 사실 지금까지 히트곡 한곡 없었다면 후회했겠지만 지금까지 앨범을 낼 수 있는 건 행운입니다. 이제 앨범이 아닌 싱글 시장이니 정말 좋은 한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음악은 제게 습관 같아 시대에 적응할 일만 남았죠."

그는 이어 "1990년대는 대중음악의 황금시대였고 2000년대는 춘추전국 시대였다면 지금은 다시 K팝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황금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시대의 희비는 돌고 도나보다"고 웃었다.

참, 그는 아직 미혼이다. 그러나 4년째 만나고 있는 20대 후반의 여자 친구가 있다.

"음악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일관되지 않아요. 고정된 수입도 아니어서 경제적인 관념도 부족하고요. 결혼은 몇살에 하겠다는 삶의 계획을 세우지 못해 나이만 먹었네요. 아직 정신연령도 어리고요. 하하."
  • 이정봉 “황금기와 암흑기 보내고 돌아왔죠”
    • 입력 2013-01-31 13:48:11
    • 수정2013-01-31 13:55:15
    연합뉴스
7년 만에 새 음반 '러브 샤랄랄라' 발표

가수로 뜨는 게 서울대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던 시절 이정봉은 데뷔곡 '어떤가요'로 단박에 뜨며 '정상의 봉우리'란 별명을 얻었다.

1996년 데뷔 당시 일간지들은 "이정봉의 앨범은 라디오와 전국 클럽을 중심으로 확산돼 한 달여 만에 10만 장 가까운 판매고를 보였다"고 인기를 소개했다.

정품이 아닌 불법 테이프를 팔던 길거리 리어카에서도 이 곡이 지겹게 울리며 '길보드 차트'를 주름잡았다.

최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봉은 "재미있게도 '어떤가요'는 가요 프로그램 1위 후보에도 오른 적이 없다"며 "대신 KBS '가요 톱 텐' 차트에 6개월간 머물렀다.

당시 1집이 50만 장 가량 판매됐다"고 기억했다.

이후 그는 1997년 2집의 '그녀를 위해', 1999년 3집의 '인연'까지 인기 상승 곡선을 이어갔다. 그러나 4집(2000년)부터 6집(2002년)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4년 만인 지난 2006년엔 잃어버린 초심을 찾기 위해 '레오'란 예명으로 다시 1집을 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리고 7년 만인 31일 다시 이정봉으로 세 트랙이 담긴 싱글음반 '러브 샤랄랄라'를 발표했다.

"레오로 방송 출연과 인터뷰 등 할 건 다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죠. 당시 SG워너비를 시작으로 미디엄 템포 발라드가 유행했는데 저도 미디엄 템포를 들고 나왔지만 당시 유행과 밸런스가 맞지 않았어요. '난 이제 가수로서 안되나'란 좌절감이 왔죠. 1990년대 음반업계 호황기를 누려본지라 가요계가 암흑기란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이후 2007년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를 시작으로 아이돌 광풍이 불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앨범 발매를 멀리 했다.

그는 "음악 시장의 변화가 컸던 탓인지 레오로 음반을 냈을 때부터 적응이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난 훅 올라갔다가 조금씩 하향곡선을 그린 케이스"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공백기 동안 음악에서 멀어진 적은 없다. 백석대에서 실용음악과 강의를 했고 예능 프로그램의 음반 제작도 하고 오는 4월께 개봉할 영화의 음악 감독도 맡았다.

그러던 중 췌장에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침 지난해부터 1990년대 복고 열풍과 함께 8090 가수들이 재조명 받아 다시 앨범을 내도 되겠다는 용기도 얻었다.

실제 '어떤가요'는 지난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삽입돼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MBC TV '나는 가수다'에서 소찬휘가 다시 부르며 귀를 사로잡았다.

이번 음반에는 본인이 작곡하고 편곡한 타이틀곡 '러브 샤랄랄라'와 그룹 SS501 출신 허영생과 듀엣한 수록곡 '사랑아 굿바이' 등이 수록됐다.

'러브 샤랄랄라'를 만들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몇년 전 꿈을 꿨어요. 외길에서 만난 사람을 쫓아갔죠. 그 사람이 바쁘다고 말을 걸지 말라더군요. '왜 바쁘냐'고 물었더니 '1등을 했다'는 겁니다. 외길 끝에 무대와 조명이 보였고 그 사람이 베이스를 치고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르더군요. 노래 제목이 '많지도'라고 했어요. 꿈에서 깨 그 멜로디를 휴대전화에 저장했죠. 후렴구 멜로디와 '러브 샤랄랄라'란 가사는 꿈에서 들은 걸 그대로 옮겼어요."

이 곡에서 이정봉 특유의 바이브레이션과 고음의 가성은 살아있다. 그는 마디를 끊어 녹음하지 않고 '원 테이크(One take:한곡 전체의 노래와 연주를 한번에 녹음하는 방식)'로 여러차례 녹음해 완성했다.

"바이브레이션이 많으면 지저분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만의 특징이니 감추고 가기보다 자연스러운 걸 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곡 '사랑아 굿바이'는 허영생의 음반에 주려던 곡이었지만 이번에 함께 불러 수록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이정봉의 대표곡인 '어떤가요' '그녀를 위해'를 작곡한 신훈철 씨도 함께 했다.

신씨는 이정봉의 호서대학교 선배로 이번 음반 제작도 함께 한 20년 지기.

이정봉은 "작곡과에 재학하며 교내 서클 '태조산' 밴드에서 활동했다"며 "같은 서클의 훈철 형에게 대학가요제에 같이 나가자고 했지만 결국 혼자 나가게 됐다.

1993년 KBS '대학가요축제'에 출전해 자작곡 '안녕 그때는'으로 대상을 탔다.

이후 여러 곳에서 음반 제의가 왔지만 3년간 매니저 문제 등을 겪으며 데뷔하지 못했다.

군대도 가야하니 마지막으로 해보자며 훈철 형과 만든 게 '어떤가요'였다"고 설명했다.

17년이 흘러 1990년대 추억의 가수로 불리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봐도 가수가 되길 잘했다고 했다.

"공백기 모 작가가 전화해 '요즘 뭐하세요'라며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어요. '잊혀진 가수'란 느낌이 싫어 거절했고 이번에 컴백하면서도 체중을 9㎏이나 감량했죠. 사실 지금까지 히트곡 한곡 없었다면 후회했겠지만 지금까지 앨범을 낼 수 있는 건 행운입니다. 이제 앨범이 아닌 싱글 시장이니 정말 좋은 한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음악은 제게 습관 같아 시대에 적응할 일만 남았죠."

그는 이어 "1990년대는 대중음악의 황금시대였고 2000년대는 춘추전국 시대였다면 지금은 다시 K팝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황금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시대의 희비는 돌고 도나보다"고 웃었다.

참, 그는 아직 미혼이다. 그러나 4년째 만나고 있는 20대 후반의 여자 친구가 있다.

"음악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일관되지 않아요. 고정된 수입도 아니어서 경제적인 관념도 부족하고요. 결혼은 몇살에 하겠다는 삶의 계획을 세우지 못해 나이만 먹었네요. 아직 정신연령도 어리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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