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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조선인 혈액형 분류에 집착했다”…이유는
입력 2013.02.28 (07:19) 연합뉴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일본인 우월성 주장하려 혈액형 연구"
"조선 남ㆍ북부 분리…`조선민족' 해체 기도"
"3.1운동 주도 백인제 교수가 조선인의 인종적 열등성 추인"

3.1절을 하루 앞둔 가운데 일제치하 의료진이 식민지 역사관을 만들기 위해 1920년대부터 한국인에 대한 혈액형 분류 연구에 집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가 대한의사(醫史)학회지 최근호에 투고한 논문에 따르면 일제치하에서 대규모 조선인을 대상으로 맨 처음 이뤄진 ABO식 혈액형 분류 연구 결과는 1922년 7월 '동경의사신지(東京醫事新誌)'에 발표됐다. 요즘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ABO식 혈액형 분류를 일제가 당시 처음 도입한 셈이다.

이 연구 보고서의 저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기리하라(桐原眞一) 교수와 그의 제자 백인제(白麟濟)로 돼 있다. 조사 대상은 조선총독부의원의 외래환자와 병원직원, 경성감옥 수감자 등 조선 내 일본인 502명과 조선인 1천167명이었다.
연구팀은 이 보고서를 통해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내놨다.

일제의 이같은 주장은 독일의 학자 힐슈펠트(Ludwick Hirschfeld)가 1919년 의학전문지 '랜싯(The Lancet)'에 게재한 '인종별 혈액의 혈청학적 차이'라는 조사결과에 근거했다.

당시 힐슈펠트는 진화한 민족일수록 B형보다 A형이 많다는 생각으로 '인종계수'라는 수치를 처음 만들었다. 인종계수는 영국인(4.5), 프랑스인(3.2), 이탈리아인(2.8), 독일인(2.8), 오스트리아인(2.5) 등의 순으로 높았다. 반면 유색인종과 식민지에 해당하는 흑인(0.8), 베트남인(0.5), 인도인(0.5) 등은 인종계수가 낮았다.

힐슈펠트는 인종계수가 2.0 이상을 '유럽형', 1.3 미만은 '아시아-아프리카형', 2.0~1.3 사이의 아라비아인(1.5), 터키인(1.8), 러시아인(1.3), 유태인(1.3) 등은 '중간형'으로 분류했다.

힐슈펠트의 이같은 인종계수에 기리하라 교수팀의 조사결과를 대입시킨 결과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로 '중간형'이었지만 조선인은 전남(1.41)만 중간형에 들어갈뿐 평북(0.83), 경기(1.00), 충북(1.08) 등은 아시아-아프리카형에 속했다는 게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기리하라 교수는 특히 이 논문에서 "조선 남부(전남)의 사례로 볼때 일본과 조선 두 민족 사이에 역사적, 언어적 유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논문에서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과학적 사실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남부지역과 일본사이의 '일선동조' 가능성을 열어두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 식민사관 연구자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제시대 조선인에 대한 이같은 혈액형 조사는 1926년 경성제국대학의학부가 설립된 이후 더욱 활발해져 1934년까지 총 4년에 걸쳐 2만4천929명을 대상으로 재차 실시됐다. 조선을 북부(0.99), 중부(1.05), 남부(1.25)로 나눠 실시한 이 조사에서도 평균 인종계수는 1.07로 역시 기존의 '아시아-아프리카형'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경성제대 의학부는 또 1934년부터 5년간은 만주, 내몽고 지역의 동북아시아 민족에 대한 혈액형 조사를 벌여 조선북부와 만주, 몽고인 사이에 '인종적 열등성'을 공통으로 하는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일제의 이런 결론은 조선인 전체보다 조선북부와 조선남부라는 지역범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조선이라는 하나의 민족범주를 해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키리하라 교수와 함께 혈액형 연구를 한 백인제 교수에 대해 "3.1운동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백인제가 조선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추인하면서 혈액형 인종과학의 과학적 권위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문을 통해 "혈액형 분류는 일본민족의 특권적 위상을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식민지배를 하는데 필요했다"면서 "우리가 무심코 따져보는 혈액형 얘기 속에 식민지적 근대를 관통하는 지식과 권력의 계보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일제는 조선인 혈액형 분류에 집착했다”…이유는
    • 입력 2013-02-28 07:19:26
    연합뉴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일본인 우월성 주장하려 혈액형 연구"
"조선 남ㆍ북부 분리…`조선민족' 해체 기도"
"3.1운동 주도 백인제 교수가 조선인의 인종적 열등성 추인"

3.1절을 하루 앞둔 가운데 일제치하 의료진이 식민지 역사관을 만들기 위해 1920년대부터 한국인에 대한 혈액형 분류 연구에 집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가 대한의사(醫史)학회지 최근호에 투고한 논문에 따르면 일제치하에서 대규모 조선인을 대상으로 맨 처음 이뤄진 ABO식 혈액형 분류 연구 결과는 1922년 7월 '동경의사신지(東京醫事新誌)'에 발표됐다. 요즘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ABO식 혈액형 분류를 일제가 당시 처음 도입한 셈이다.

이 연구 보고서의 저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기리하라(桐原眞一) 교수와 그의 제자 백인제(白麟濟)로 돼 있다. 조사 대상은 조선총독부의원의 외래환자와 병원직원, 경성감옥 수감자 등 조선 내 일본인 502명과 조선인 1천167명이었다.
연구팀은 이 보고서를 통해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내놨다.

일제의 이같은 주장은 독일의 학자 힐슈펠트(Ludwick Hirschfeld)가 1919년 의학전문지 '랜싯(The Lancet)'에 게재한 '인종별 혈액의 혈청학적 차이'라는 조사결과에 근거했다.

당시 힐슈펠트는 진화한 민족일수록 B형보다 A형이 많다는 생각으로 '인종계수'라는 수치를 처음 만들었다. 인종계수는 영국인(4.5), 프랑스인(3.2), 이탈리아인(2.8), 독일인(2.8), 오스트리아인(2.5) 등의 순으로 높았다. 반면 유색인종과 식민지에 해당하는 흑인(0.8), 베트남인(0.5), 인도인(0.5) 등은 인종계수가 낮았다.

힐슈펠트는 인종계수가 2.0 이상을 '유럽형', 1.3 미만은 '아시아-아프리카형', 2.0~1.3 사이의 아라비아인(1.5), 터키인(1.8), 러시아인(1.3), 유태인(1.3) 등은 '중간형'으로 분류했다.

힐슈펠트의 이같은 인종계수에 기리하라 교수팀의 조사결과를 대입시킨 결과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로 '중간형'이었지만 조선인은 전남(1.41)만 중간형에 들어갈뿐 평북(0.83), 경기(1.00), 충북(1.08) 등은 아시아-아프리카형에 속했다는 게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기리하라 교수는 특히 이 논문에서 "조선 남부(전남)의 사례로 볼때 일본과 조선 두 민족 사이에 역사적, 언어적 유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논문에서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과학적 사실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남부지역과 일본사이의 '일선동조' 가능성을 열어두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 식민사관 연구자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제시대 조선인에 대한 이같은 혈액형 조사는 1926년 경성제국대학의학부가 설립된 이후 더욱 활발해져 1934년까지 총 4년에 걸쳐 2만4천929명을 대상으로 재차 실시됐다. 조선을 북부(0.99), 중부(1.05), 남부(1.25)로 나눠 실시한 이 조사에서도 평균 인종계수는 1.07로 역시 기존의 '아시아-아프리카형'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경성제대 의학부는 또 1934년부터 5년간은 만주, 내몽고 지역의 동북아시아 민족에 대한 혈액형 조사를 벌여 조선북부와 만주, 몽고인 사이에 '인종적 열등성'을 공통으로 하는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일제의 이런 결론은 조선인 전체보다 조선북부와 조선남부라는 지역범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조선이라는 하나의 민족범주를 해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키리하라 교수와 함께 혈액형 연구를 한 백인제 교수에 대해 "3.1운동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백인제가 조선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추인하면서 혈액형 인종과학의 과학적 권위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문을 통해 "혈액형 분류는 일본민족의 특권적 위상을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식민지배를 하는데 필요했다"면서 "우리가 무심코 따져보는 혈액형 얘기 속에 식민지적 근대를 관통하는 지식과 권력의 계보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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