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백현씨 ‘대마도에 한국 불상 133개 있다’”

입력 2013.03.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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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인들의 '요청'(請來)에 의해 넘어간 불상 상당수"


일본 대마도에 133개의 한국 불상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독도 대마도 아카데미' 상임대표인 황백현 박사는 일본문헌을 연구한 결과 대마도 곳곳에 있는 한국 불상은 모두 133개로 조사됐다고 15일 밝혔다.

이 가운데 조선불상 30개, 고려불상 16개, 신라 불상 11개, 백제 불상 3개 등이며 아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시대를 알 수 없는 불상도 모두 73개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조선불상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마도 쯔나야기(津柳)의 석가당(釋迦堂)에 있는 석가여래좌상, 묘상사(妙相寺))의 석조관음보살좌상, 서산사(西山寺)의 목조여신입상불 등이 있다.

또 고려 불상인 원통사(圓通寺)의 동조약사여래불, 신라 불상인 태평사(太平寺)의 동조보살형입상, 백제 불상인 법청사(法淸寺)의 소동불 등도 대표적인 한국 불상으로 꼽히고 있다.

황 박사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일본의 유명한 대마도 사학자인 '오사사쯔꼬'(長節子) 등 10여명의 학자가 공동저술한 '대마도 미술'(1978), '봉정지'(峰町誌·1983), '중세 일조관계와 대마'(1987) 등 모두 30여 권의 일본 문헌을 뒤져 근거를 찾아냈다.

그는 또 대마도에 건너간 한국 불상 상당수가 당시 대마도인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소개했다.

대마도에 있는 한국 불상은 모두 약탈 문화재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지만 실제로는 당시 대마도인의 '정중한 요청'(請來)에 의해 넘어간 것이 상당수라고 것이 황 박사의 주장이다.

당시 대마도는 한국의 '문화영역권'이어서 호국불교 성격인 한국불교가 대마도를 국경지역으로 취급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봉정기 등 다수의 일본 저서에서 1868년 이후 대마도주가 일본 메이지(明治) 조정에 항복하기 전까지 조선의 '관인'(官印·도장)을 썼다"면서 "당시 우리 조정에서도 대마도를 우리의 문화영역과 영토로 취급하고 있어 대마도로 많은 불상과 불경이 넘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황 박사는 그러나ㅣ최근 논란이 된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상과 관련, "이 불상이 넘어간 경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만큼 일본 측의 소명을 듣고 나서 일본에 불상을 넘겨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박사는 대마도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분석한 결과 지리적으로 오랜 기간 본토보다 가까운 한국과 교류를 하면서 경제적인 필요의 의해 한어(韓語)를 많이 쓰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 '대마도의 한어 학습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2010년 동의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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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백현씨 ‘대마도에 한국 불상 133개 있다’”
    • 입력 2013-03-15 08:39:37
    연합뉴스
"대마도인들의 '요청'(請來)에 의해 넘어간 불상 상당수" 일본 대마도에 133개의 한국 불상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독도 대마도 아카데미' 상임대표인 황백현 박사는 일본문헌을 연구한 결과 대마도 곳곳에 있는 한국 불상은 모두 133개로 조사됐다고 15일 밝혔다. 이 가운데 조선불상 30개, 고려불상 16개, 신라 불상 11개, 백제 불상 3개 등이며 아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시대를 알 수 없는 불상도 모두 73개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조선불상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마도 쯔나야기(津柳)의 석가당(釋迦堂)에 있는 석가여래좌상, 묘상사(妙相寺))의 석조관음보살좌상, 서산사(西山寺)의 목조여신입상불 등이 있다. 또 고려 불상인 원통사(圓通寺)의 동조약사여래불, 신라 불상인 태평사(太平寺)의 동조보살형입상, 백제 불상인 법청사(法淸寺)의 소동불 등도 대표적인 한국 불상으로 꼽히고 있다. 황 박사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일본의 유명한 대마도 사학자인 '오사사쯔꼬'(長節子) 등 10여명의 학자가 공동저술한 '대마도 미술'(1978), '봉정지'(峰町誌·1983), '중세 일조관계와 대마'(1987) 등 모두 30여 권의 일본 문헌을 뒤져 근거를 찾아냈다. 그는 또 대마도에 건너간 한국 불상 상당수가 당시 대마도인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소개했다. 대마도에 있는 한국 불상은 모두 약탈 문화재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지만 실제로는 당시 대마도인의 '정중한 요청'(請來)에 의해 넘어간 것이 상당수라고 것이 황 박사의 주장이다. 당시 대마도는 한국의 '문화영역권'이어서 호국불교 성격인 한국불교가 대마도를 국경지역으로 취급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봉정기 등 다수의 일본 저서에서 1868년 이후 대마도주가 일본 메이지(明治) 조정에 항복하기 전까지 조선의 '관인'(官印·도장)을 썼다"면서 "당시 우리 조정에서도 대마도를 우리의 문화영역과 영토로 취급하고 있어 대마도로 많은 불상과 불경이 넘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황 박사는 그러나ㅣ최근 논란이 된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상과 관련, "이 불상이 넘어간 경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만큼 일본 측의 소명을 듣고 나서 일본에 불상을 넘겨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박사는 대마도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분석한 결과 지리적으로 오랜 기간 본토보다 가까운 한국과 교류를 하면서 경제적인 필요의 의해 한어(韓語)를 많이 쓰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 '대마도의 한어 학습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2010년 동의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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