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구제금융안 부결…‘불투명성’ 증폭

입력 2013.03.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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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 의회가 구제금융 협상안 비준을 부결함으로써 부채 위기에 빠진 키프로스의 진로는 더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애초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인 17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요청한 키프로스는 자칫 유로화가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구제금융 비준안이 부결된 직후 "현행 규정에 따라 유동성 공급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유로화가 실제로 원활히 공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에 앞서 영국 정부는 키프로스에 주둔하는 영국 군인과 공무원이 유로화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 군용기에 100만 유로의 현금을 실어 공수하기도 했다.

유동성 공급이 원활하다고 전제할 때 키프로스 의회의 구제금융안 비준 거부는 유로그룹(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 회의체)과 키프로스 정부가 구제금융안을 재협상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준안이 거부된 직후 현지 언론들과 외신들은 일제히 구제금융 재협상 가능성을 점쳤다.

자칫 막가파식의 '할 테면 해보라'로 비칠 수도 있으나 키프로스 의회가 한 표의 찬성표도 없이 비준안을 거부한 것은 키프로스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재협상 가능성

키프로스 정부의 '예금 과세' 조치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는데도 최대 채권국인 독일 의회는 '예금 과세'가 충족돼야 구제금융안을 승인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못박았다.

독일 의회의 이런 태도는 키프로스 은행에 예치된 러시아 자금을 겨냥한 것으로 러시아 측에도 구제금융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라는 압력인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문제가 된 '예금 과세'에 대한 국내외 반발이 갈수록 커지자 키프로스 정부는 예금 잔액 2만 유로 미만에 면세한다는 조정안을 마련했지만 키프로스 의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표결을 강행했다.

특히 표결 과정에서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을 지지한 소수 여당인 '민주회복'당은 임시회 개회에 앞서 표결에 기권하겠다고 밝혔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도 한 TV와 인터뷰에서 '예금 과세'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하며 부결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은 구제금융 협상안이 의회에서 부결될 것을 예상했거나 방조한 채 일찌감치 재협상을 염두에 뒀던 게 아니냐는 추정을 낳는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연이틀 장시간 통화하며 상황을 설명하며 '협조'를 구했다고 한 키프로스 정부 대변인의 발표도 '재협상 시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채무불이행(디폴트) 발생할까

유럽중앙은행이 어쨌든 '유동성 공급'을 지속한다고 밝힌 만큼 디폴트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게다가 키프로스에 '유로존 탈퇴' 또는 '부채 상환 중단' 등 극단의 주장이 나오지도 않는다. 지난해 그리스에서 '유로존 이탈' 주장이 나올 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이 구제금융 비준안이 부결될 때 대비해 마련했다는 이른바 '플랜B'는 디폴트 선언할 때 나올 수 있는 조치가 포함돼 있다.

'플랜B'는 ▲ 모든 사회 보장 기금의 국유화 ▲ EU와 러시아 정부 등이 참여하는 국영 자산회사 설립 등을 포함한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만약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면 이는 대책이라기보다는 '질서있는 디폴트'로 봐야 한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키프로스의 채권단인 EU와 러시아 등이 국유화한 기금과 국유 재산을 관리하는 '국영자산 회사'를 좌우한다면 국가 경제 주권을 장악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키프로스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 그리스의 민영 TV와 한 인터뷰에서 현재의 경제 상황이 1974년 터키가 키프로스 북부를 침공했을 때보다 더 나쁜 상태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키프로스가 '플랜B'를 배수의 진으로 치고 재협상을 시도하더라도 타결짓지 못한다면 끝내 '무질서한 디폴트' 또는 '국가부도' 사태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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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프로스 구제금융안 부결…‘불투명성’ 증폭
    • 입력 2013-03-20 10:14:24
    연합뉴스
키프로스 의회가 구제금융 협상안 비준을 부결함으로써 부채 위기에 빠진 키프로스의 진로는 더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애초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인 17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요청한 키프로스는 자칫 유로화가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구제금융 비준안이 부결된 직후 "현행 규정에 따라 유동성 공급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유로화가 실제로 원활히 공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에 앞서 영국 정부는 키프로스에 주둔하는 영국 군인과 공무원이 유로화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 군용기에 100만 유로의 현금을 실어 공수하기도 했다. 유동성 공급이 원활하다고 전제할 때 키프로스 의회의 구제금융안 비준 거부는 유로그룹(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 회의체)과 키프로스 정부가 구제금융안을 재협상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준안이 거부된 직후 현지 언론들과 외신들은 일제히 구제금융 재협상 가능성을 점쳤다. 자칫 막가파식의 '할 테면 해보라'로 비칠 수도 있으나 키프로스 의회가 한 표의 찬성표도 없이 비준안을 거부한 것은 키프로스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재협상 가능성 키프로스 정부의 '예금 과세' 조치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는데도 최대 채권국인 독일 의회는 '예금 과세'가 충족돼야 구제금융안을 승인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못박았다. 독일 의회의 이런 태도는 키프로스 은행에 예치된 러시아 자금을 겨냥한 것으로 러시아 측에도 구제금융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라는 압력인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문제가 된 '예금 과세'에 대한 국내외 반발이 갈수록 커지자 키프로스 정부는 예금 잔액 2만 유로 미만에 면세한다는 조정안을 마련했지만 키프로스 의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표결을 강행했다. 특히 표결 과정에서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을 지지한 소수 여당인 '민주회복'당은 임시회 개회에 앞서 표결에 기권하겠다고 밝혔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도 한 TV와 인터뷰에서 '예금 과세'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하며 부결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은 구제금융 협상안이 의회에서 부결될 것을 예상했거나 방조한 채 일찌감치 재협상을 염두에 뒀던 게 아니냐는 추정을 낳는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연이틀 장시간 통화하며 상황을 설명하며 '협조'를 구했다고 한 키프로스 정부 대변인의 발표도 '재협상 시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채무불이행(디폴트) 발생할까 유럽중앙은행이 어쨌든 '유동성 공급'을 지속한다고 밝힌 만큼 디폴트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게다가 키프로스에 '유로존 탈퇴' 또는 '부채 상환 중단' 등 극단의 주장이 나오지도 않는다. 지난해 그리스에서 '유로존 이탈' 주장이 나올 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이 구제금융 비준안이 부결될 때 대비해 마련했다는 이른바 '플랜B'는 디폴트 선언할 때 나올 수 있는 조치가 포함돼 있다. '플랜B'는 ▲ 모든 사회 보장 기금의 국유화 ▲ EU와 러시아 정부 등이 참여하는 국영 자산회사 설립 등을 포함한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만약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면 이는 대책이라기보다는 '질서있는 디폴트'로 봐야 한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키프로스의 채권단인 EU와 러시아 등이 국유화한 기금과 국유 재산을 관리하는 '국영자산 회사'를 좌우한다면 국가 경제 주권을 장악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키프로스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 그리스의 민영 TV와 한 인터뷰에서 현재의 경제 상황이 1974년 터키가 키프로스 북부를 침공했을 때보다 더 나쁜 상태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키프로스가 '플랜B'를 배수의 진으로 치고 재협상을 시도하더라도 타결짓지 못한다면 끝내 '무질서한 디폴트' 또는 '국가부도' 사태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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