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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4·3과 구럼비가 만나는 ‘비념’
입력 2013.03.22 (13:56) 수정 2013.03.22 (15:14) 연합뉴스
제주의 강상희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녹슨 톱을 곁에 두고 잠을 잔다. 악몽에 시달릴 때 날카로운 쇠붙이를 이부자리 밑에 넣어두는 습관이다.

강 할머니는 4ㆍ3때 교사였던 남편을 여의고 여태껏 혼자 살아왔다.

다큐멘터리 '비념'(감독 임흥순)은 오는 21일 개봉하는 '지슬'에 이은 또 하나의 4ㆍ3 영화다.

영화는 강 할머니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곳곳에 흩어진 4ㆍ3의 쓰라린 흔적을 훑어가면서 섬 전체가 거대한 무덤임을 일깨운다.

천제연ㆍ천지연ㆍ정방폭포처럼 별생각 없이 자연경관을 즐기러 찾는 관광지는 물론이고 올레길마다 많은 희생자가 쓰러져간 참극의 현장이 있다.

구럼비 바위로 유명한 강정마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다.

4ㆍ3 당시 확인된 희생자만 197명. 2006년 정부가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한 이곳은 2010년부터는 거센 반발 속에 해군기지 건설이 진행 중이다.

"4ㆍ3 영혼 통곡한다"는 현수막 문구는 60여년 전의 아픈 역사가 오늘까지 이어짐을 보여주고, 기지촌 건설과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중년여성의 외침은 중장비 소음에 빨려 들어간다.

영화의 힘은 당시 화를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할머니들을 비롯해 다양하고 생생한 인터뷰다.

"제주는 일제강점기에 반공사상이 강해 공산당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거지 같은' 내무장관이 발포명령을 내렸고 우리는 폭도새끼, 빨갱이로 내몰렸다."(4ㆍ3 생존자)

"일본에 살거나 중국, 미국으로 가더라도 한국은 가지 마라."(재일교포 할머니)

영화는 인터뷰 대상의 말뿐 아니라 사이사이의 포즈, 한숨과 표정까지 거르지 않고 남김없이 보여준다.

또 4ㆍ3 현장을 찾아가는 과정과 강정마을 상황을 보여주면서 밀감밭, 바다, 말, 고양이, 쥐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주민 총살 장면, 죽창과 시신 등 낡고 거친 당시의 영상도 중간중간 삽입된다.

사진,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작업을 해온 비주얼 아티스트 출신 감독이 만든 첫 장편 다큐답게 많은 것을 담으려는 의욕이 넘쳐난다.

잘 짜인 틀과 도구로 정해진 메시지를 주려하기보다는 판단은 철저하게 개인에 맡기려 한 의도다.

감독은 거대 담론을 얘기하기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걸친 제주의 아픔을 미시적으로, 인간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는 국가에 의한 범죄나 폭력의 이미지가 짙게 배어 있다.

4월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3분.
  • [새영화] 4·3과 구럼비가 만나는 ‘비념’
    • 입력 2013-03-22 13:56:14
    • 수정2013-03-22 15:14:05
    연합뉴스
제주의 강상희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녹슨 톱을 곁에 두고 잠을 잔다. 악몽에 시달릴 때 날카로운 쇠붙이를 이부자리 밑에 넣어두는 습관이다.

강 할머니는 4ㆍ3때 교사였던 남편을 여의고 여태껏 혼자 살아왔다.

다큐멘터리 '비념'(감독 임흥순)은 오는 21일 개봉하는 '지슬'에 이은 또 하나의 4ㆍ3 영화다.

영화는 강 할머니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곳곳에 흩어진 4ㆍ3의 쓰라린 흔적을 훑어가면서 섬 전체가 거대한 무덤임을 일깨운다.

천제연ㆍ천지연ㆍ정방폭포처럼 별생각 없이 자연경관을 즐기러 찾는 관광지는 물론이고 올레길마다 많은 희생자가 쓰러져간 참극의 현장이 있다.

구럼비 바위로 유명한 강정마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다.

4ㆍ3 당시 확인된 희생자만 197명. 2006년 정부가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한 이곳은 2010년부터는 거센 반발 속에 해군기지 건설이 진행 중이다.

"4ㆍ3 영혼 통곡한다"는 현수막 문구는 60여년 전의 아픈 역사가 오늘까지 이어짐을 보여주고, 기지촌 건설과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중년여성의 외침은 중장비 소음에 빨려 들어간다.

영화의 힘은 당시 화를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할머니들을 비롯해 다양하고 생생한 인터뷰다.

"제주는 일제강점기에 반공사상이 강해 공산당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거지 같은' 내무장관이 발포명령을 내렸고 우리는 폭도새끼, 빨갱이로 내몰렸다."(4ㆍ3 생존자)

"일본에 살거나 중국, 미국으로 가더라도 한국은 가지 마라."(재일교포 할머니)

영화는 인터뷰 대상의 말뿐 아니라 사이사이의 포즈, 한숨과 표정까지 거르지 않고 남김없이 보여준다.

또 4ㆍ3 현장을 찾아가는 과정과 강정마을 상황을 보여주면서 밀감밭, 바다, 말, 고양이, 쥐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주민 총살 장면, 죽창과 시신 등 낡고 거친 당시의 영상도 중간중간 삽입된다.

사진,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작업을 해온 비주얼 아티스트 출신 감독이 만든 첫 장편 다큐답게 많은 것을 담으려는 의욕이 넘쳐난다.

잘 짜인 틀과 도구로 정해진 메시지를 주려하기보다는 판단은 철저하게 개인에 맡기려 한 의도다.

감독은 거대 담론을 얘기하기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걸친 제주의 아픔을 미시적으로, 인간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는 국가에 의한 범죄나 폭력의 이미지가 짙게 배어 있다.

4월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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