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책임까지 하청’…산재 떠넘기는 대기업

입력 2013.03.22 (21:28) 수정 2013.03.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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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직 3월인데 연초부터 이어진 유독물질 누출 사고에 여수산업단지 폭발사고까지 각종 산업재해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OECD가 각국 산업재해를 비교했던 2008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한해 산업재해율은 미국보다 낮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만 명 당 산업재해로 숨진 사람의 수는 미국보다 많은데요.

그만큼 중대 재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는 많은 수의 산업재해가 은폐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현실을 김경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지하철 공사장에서 골조를 담당했던 하청업체에서는 2009년부터 3년 동안 근로자 열 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산재로 신고된 사람은 3명, 7명은 은폐됐습니다.

하청업체측은 신고하지 말라는 원청업체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하청업체 관계자 : "(원청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입니다. 무사고 몇 시간 이렇게 적어놓는 것 있지 않습니까. 과시용."

이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도 2009년부터 3년 동안 하청 근로자 5명이 다쳤지만 한 명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산재가 많으면 정부공사 입찰에서 점수가 깎이기 때문에 원청사가 신고 대신 합의를 종용한 겁니다.

<인터뷰> 하청업체 관계자 : "(신고)는 절대 안된다. 호반(원청업체)에서는 계속 공상(합의)쪽으로 밀어 붙이는 거고요."

원청업체는 강요는 안했다고 주장하지만, 하청업체는 신고를 못해 산재보험을 못 받았고 결국 치료비에 합의금까지 2중 부담을 져야 했습니다.

<인터뷰> 하청업체 관계자 : "너네 알아서 처리해라 그러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병원비라든지 모든 것을 우리가 알아서 하는 거죠."

최근 파산한 한 하청업체의 내부 문건을 입수해 작업장 사고를 분석해 봤습니다.

2006년부터 5년 동안 산업재해가 모두 105건, 이 가운데 확인 가능한 88건을 조사해 보니 13건만 신고돼, 산재 은폐율이 85%나 됐습니다.

지난 2008년 발생했던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근로자 40명이 숨졌지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벌금 2천 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에 50만 원 씩으로 법적 책임을 다 하는 셈입니다.

다른 산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3명이 죽든 4명이 죽든 대부분 수백만 원 정도 벌금을 무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나마도 하청 기업들이 받은 처벌이고 사업의 원청인 대기업은 아예 처벌을 받지 않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숨지는 근로자는 한 해 2천 명이 넘습니다.

하도급 의존이 심한 건설과 조선, 철강제조업 등의 사망자가 이 가운데 3분의 1에 이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강한 처벌 조항이 있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지만 하청 기업에 적용될 뿐 원청인 대기업에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앵커 멘트>

대형사고가 반복되면서 하청업체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들이 위험까지 하청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청업체 근로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런 대형사고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이어서 우한울 기자가 살펴봅니다.

<리포트>

지난해 일본 미쓰이 화학공장.

사상자 12명.

하청업체 근로자 4명도 다쳤습니다.

이튿날 대표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녹취> "진심어린 사과와 유감을 밝힙니다"

하청업체 근로자 5명이 숨진 대림산업 폭발 사고.

대림 측은 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공방 뿐입니다.

<녹취> "2차폭발 우려가 있는데 우리 근로자들 왜 넣었어요.. (지금 발표한 게 사실입니다.) 사실은 뭐 사실이야!!"

우리나라 산업안전법에는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업체의 책임이 우선하게 돼 있어, 원청 대기업은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은 물론 과태료도 면할 수 있습니다.

낮은 처벌 수위도 문젭니다.

삼성 괌 현지법인은 지난 1995년, 근로자 한 명이 숨진 사고로 과태료 820만 달러, 당시 환율로 74억 원을 물었습니다.

영국은 중대 산업 사고엔 과태료 상한액을 없애 버렸습니다.

<인터뷰> 안홍섭(군산대 교수) : "중대한 위반을 했을 경우에는 영업에 타격을 줄 정도로 처벌을 강화해야 해야 합니다."

원청기업엔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처벌마저도 솜방망이인 현행 제도가 존속하는 한 산재예방은 헛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KBS 뉴스 우한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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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3-03-22 22: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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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월인데 연초부터 이어진 유독물질 누출 사고에 여수산업단지 폭발사고까지 각종 산업재해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OECD가 각국 산업재해를 비교했던 2008년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한해 산업재해율은 미국보다 낮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만 명 당 산업재해로 숨진 사람의 수는 미국보다 많은데요.

그만큼 중대 재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는 많은 수의 산업재해가 은폐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현실을 김경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지하철 공사장에서 골조를 담당했던 하청업체에서는 2009년부터 3년 동안 근로자 열 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산재로 신고된 사람은 3명, 7명은 은폐됐습니다.

하청업체측은 신고하지 말라는 원청업체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하청업체 관계자 : "(원청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입니다. 무사고 몇 시간 이렇게 적어놓는 것 있지 않습니까. 과시용."

이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도 2009년부터 3년 동안 하청 근로자 5명이 다쳤지만 한 명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산재가 많으면 정부공사 입찰에서 점수가 깎이기 때문에 원청사가 신고 대신 합의를 종용한 겁니다.

<인터뷰> 하청업체 관계자 : "(신고)는 절대 안된다. 호반(원청업체)에서는 계속 공상(합의)쪽으로 밀어 붙이는 거고요."

원청업체는 강요는 안했다고 주장하지만, 하청업체는 신고를 못해 산재보험을 못 받았고 결국 치료비에 합의금까지 2중 부담을 져야 했습니다.

<인터뷰> 하청업체 관계자 : "너네 알아서 처리해라 그러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병원비라든지 모든 것을 우리가 알아서 하는 거죠."

최근 파산한 한 하청업체의 내부 문건을 입수해 작업장 사고를 분석해 봤습니다.

2006년부터 5년 동안 산업재해가 모두 105건, 이 가운데 확인 가능한 88건을 조사해 보니 13건만 신고돼, 산재 은폐율이 85%나 됐습니다.

지난 2008년 발생했던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근로자 40명이 숨졌지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벌금 2천 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에 50만 원 씩으로 법적 책임을 다 하는 셈입니다.

다른 산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3명이 죽든 4명이 죽든 대부분 수백만 원 정도 벌금을 무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나마도 하청 기업들이 받은 처벌이고 사업의 원청인 대기업은 아예 처벌을 받지 않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숨지는 근로자는 한 해 2천 명이 넘습니다.

하도급 의존이 심한 건설과 조선, 철강제조업 등의 사망자가 이 가운데 3분의 1에 이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강한 처벌 조항이 있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지만 하청 기업에 적용될 뿐 원청인 대기업에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앵커 멘트>

대형사고가 반복되면서 하청업체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들이 위험까지 하청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청업체 근로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런 대형사고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이어서 우한울 기자가 살펴봅니다.

<리포트>

지난해 일본 미쓰이 화학공장.

사상자 12명.

하청업체 근로자 4명도 다쳤습니다.

이튿날 대표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녹취> "진심어린 사과와 유감을 밝힙니다"

하청업체 근로자 5명이 숨진 대림산업 폭발 사고.

대림 측은 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공방 뿐입니다.

<녹취> "2차폭발 우려가 있는데 우리 근로자들 왜 넣었어요.. (지금 발표한 게 사실입니다.) 사실은 뭐 사실이야!!"

우리나라 산업안전법에는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업체의 책임이 우선하게 돼 있어, 원청 대기업은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은 물론 과태료도 면할 수 있습니다.

낮은 처벌 수위도 문젭니다.

삼성 괌 현지법인은 지난 1995년, 근로자 한 명이 숨진 사고로 과태료 820만 달러, 당시 환율로 74억 원을 물었습니다.

영국은 중대 산업 사고엔 과태료 상한액을 없애 버렸습니다.

<인터뷰> 안홍섭(군산대 교수) : "중대한 위반을 했을 경우에는 영업에 타격을 줄 정도로 처벌을 강화해야 해야 합니다."

원청기업엔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처벌마저도 솜방망이인 현행 제도가 존속하는 한 산재예방은 헛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KBS 뉴스 우한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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