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텔루치 “무대는 현실 비추는 어두운 거울”

입력 2013.03.24 (09:15) 수정 2013.03.2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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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 연출


"무대는 현실을 비추는 어두운 거울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탈리아 공연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53)는 그 어떤 '공식'의 제약 없이 강렬한 이미지를 무대에 펼치는 유럽 전위극의 대가로 꼽힌다.

한쪽 가슴이 없는 이브가 무대에 등장하거나('창세기'), 선반 위에 누운 소녀의 형상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게 하는('헤이 걸') 그의 파격적인 설정은 관객과 평단에 충격을 줬다.

그런 그가 작품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On the Concept of the Face, Regarding the Son of God', 이하 '신의 아들을')를 들고 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23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만난 그는 "그리스 비극부터 현대극, 전위극까지, 연극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며 "이번 작품도 이 세계 어딘가의 어두운 현실을 투영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신의 아들을'은 2011년 독일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먼저 선보인 작품.

성스러운 이미지를 비틀고,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연출하는 그가 이번에 차용한 소재는 예수의 초상이다. 안토넬로 다메시나(1430-1479)의 작품이다. 그림 속 예수는 몽환적인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기존 연극에서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는 '응시자'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저는 그런 구도를 깼습니다. 즉, 관객이 일방적으로 무대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예수에 의해 응시를 당하는 겁니다. 무대 위 배우, 예수의 초상, 관객 사이에 3각의 시선이 형성되는 거죠."

예수의 시선을 받는 관객 앞에는 아픈 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아들의 움직임이 펼쳐진다.

아들은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 과정에서 갈색 배설물이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티 없이 새하얀 색으로 된 거실이 엉망이 되는 순간이다. 아버지는 몸을 떨며 신음하고, 아들은 계속되는 아버지의 배설에 인내심을 잃고 괴로워한다.

"배설은 비워내는 행위입니다. 또 추락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하기도 하죠. 죽음, 고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거실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은 극은 후반부로 갈수록 초현실적으로 변한다.

예수의 입술에 키스한 후 아들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 아미 10여 명이 차례로 들어와 예수 초상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다. 논리적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장면의 전환이다.

또 마지막엔 관객과 눈을 맞추던 예수 초상이 처참히 어그러진다. '당신은 나의 목자입니다.(You're my shepherd.)'라는 문장에 'not'이 삽입됐다 사라지는 도발적인 장면도 나온다.

과연 충격과 낯섦이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무대디자인과 회화를 전공한 이력에 걸맞게 그는 조형적인 이미지 중심의 연극을 선보이곤 했다.

한국에서는 '창세기'(2003)를 시작으로 실험극 '헤이 걸'(2007), 설치 퍼포먼스 '천국'(2008)으로 관객을 만났다.

"어린 관객이 보기에 부적합하거나 일부 관객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고문이 그의 작품을 안내하는 팸플릿에 들어갔던 게 10년 전 이야기.

그는 2013년 관객은 '열린 텍스트' 속에서 풍성한 해석을 가져가길 바란다고 했다.

"공연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관객이 어떤 방식으로 극을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만든 작품이지만, 그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니까요. 한국 관객의 집중력은 놀랍습니다.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를 생생하게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작품은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참가작으로, 2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페스티벌 봄 (www.Festivalbom.org) = 무용, 연극, 미술, 음악, 영화 등 현대예술 전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축제로 내달 18일까지 서울 등지 공연장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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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스텔루치 “무대는 현실 비추는 어두운 거울”
    • 입력 2013-03-24 09:15:46
    • 수정2013-03-24 12:22:08
    연합뉴스
연극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 연출


"무대는 현실을 비추는 어두운 거울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탈리아 공연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53)는 그 어떤 '공식'의 제약 없이 강렬한 이미지를 무대에 펼치는 유럽 전위극의 대가로 꼽힌다.

한쪽 가슴이 없는 이브가 무대에 등장하거나('창세기'), 선반 위에 누운 소녀의 형상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게 하는('헤이 걸') 그의 파격적인 설정은 관객과 평단에 충격을 줬다.

그런 그가 작품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On the Concept of the Face, Regarding the Son of God', 이하 '신의 아들을')를 들고 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23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만난 그는 "그리스 비극부터 현대극, 전위극까지, 연극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며 "이번 작품도 이 세계 어딘가의 어두운 현실을 투영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신의 아들을'은 2011년 독일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먼저 선보인 작품.

성스러운 이미지를 비틀고,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연출하는 그가 이번에 차용한 소재는 예수의 초상이다. 안토넬로 다메시나(1430-1479)의 작품이다. 그림 속 예수는 몽환적인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기존 연극에서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는 '응시자'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저는 그런 구도를 깼습니다. 즉, 관객이 일방적으로 무대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예수에 의해 응시를 당하는 겁니다. 무대 위 배우, 예수의 초상, 관객 사이에 3각의 시선이 형성되는 거죠."

예수의 시선을 받는 관객 앞에는 아픈 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아들의 움직임이 펼쳐진다.

아들은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 과정에서 갈색 배설물이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티 없이 새하얀 색으로 된 거실이 엉망이 되는 순간이다. 아버지는 몸을 떨며 신음하고, 아들은 계속되는 아버지의 배설에 인내심을 잃고 괴로워한다.

"배설은 비워내는 행위입니다. 또 추락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하기도 하죠. 죽음, 고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거실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은 극은 후반부로 갈수록 초현실적으로 변한다.

예수의 입술에 키스한 후 아들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 아미 10여 명이 차례로 들어와 예수 초상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다. 논리적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장면의 전환이다.

또 마지막엔 관객과 눈을 맞추던 예수 초상이 처참히 어그러진다. '당신은 나의 목자입니다.(You're my shepherd.)'라는 문장에 'not'이 삽입됐다 사라지는 도발적인 장면도 나온다.

과연 충격과 낯섦이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무대디자인과 회화를 전공한 이력에 걸맞게 그는 조형적인 이미지 중심의 연극을 선보이곤 했다.

한국에서는 '창세기'(2003)를 시작으로 실험극 '헤이 걸'(2007), 설치 퍼포먼스 '천국'(2008)으로 관객을 만났다.

"어린 관객이 보기에 부적합하거나 일부 관객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고문이 그의 작품을 안내하는 팸플릿에 들어갔던 게 10년 전 이야기.

그는 2013년 관객은 '열린 텍스트' 속에서 풍성한 해석을 가져가길 바란다고 했다.

"공연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관객이 어떤 방식으로 극을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만든 작품이지만, 그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니까요. 한국 관객의 집중력은 놀랍습니다.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를 생생하게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작품은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참가작으로, 2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페스티벌 봄 (www.Festivalbom.org) = 무용, 연극, 미술, 음악, 영화 등 현대예술 전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축제로 내달 18일까지 서울 등지 공연장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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