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자처한 이정철, 우승 감독으로 우뚝!

입력 2013.03.29 (21:15) 수정 2013.03.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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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을 창단 2년 만에 한국여자배구 통합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은 이정철(53) 감독은 그동안 선수나 지도자로서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고교 1학년 때 배구를 시작해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0년대 금성사배구단(LIG손해보험의 전신)에서 센터와 라이트로 뛴 그는 국가대표로 발탁된 적 한 번 없을 만큼 평범한 선수였다.

은퇴 후에는 금성사배구단 프런트로 근무하기도 했다.

여자배구와의 인연은 1992년 효성 여자 실업배구단 코치를 맡아 코트로 복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여자 실업배구의 강호로 꼽히던 호남정유와 현대건설 코치를 거치면서 우승도 경험하는 등 나름대로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지도자 수업을 쌓아갔다.

흥국생명 감독(2001∼2003년)으로 처음 사령탑에 올랐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이어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때에는 여자대표팀 코치를 맡는 등 여자배구 발전을 위해 한 길을 걸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주전들의 줄부상 등 악재가 겹쳐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한국여자배구가 올림픽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로는 처음이어서 당시 이 감독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감독은 이후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경기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1년 8월 여자프로배구 '제6구단'으로 공식 창단한 IBK기업은행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돼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프로배구 감독은 처음이었다.

IBK기업은행은 데뷔 무대였던 2011-2012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다가 6개 팀 가운데 3위 현대건설에 고작 승점 1이 뒤진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8월 열린 컵대회에서는 GS칼텍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도 이번 시즌 개막 전에 IBK기업은행을 '복병' 정도로나 봤지 우승 후보로까지 꼽은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IBK기업은행은 막내답지 않은 다부진 실력으로 독주 체제를 굳히더니 결국 국내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처음으로 창단 2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통합챔피언까지 이뤄냈다.

이 감독에게 우승은 사령탑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맨땅'에서 시작한 신생 구단이 두 해 만에 리그를 평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감독의 혹독한 조련이 단단히 한몫했다.

그는 감독이라는 위치에서는 영원히 '코트의 악역'을 할 수밖에 없다고 늘 강조했다.

창단 첫해 김희진과 박정아 등 차세대 스타로 꼽히는 유망주가 여러 명 들어왔지만 IBK기업은행의 전력이나 분위기는 모래알과 같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감독은 "많은 선수가 기본기도 갖춰지지 않아 정말 막막하고 한숨이 나오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방법은 훈련뿐이었다. 이 감독은 오후 훈련만 5시간 가까이 진행하는 때도 있을 만큼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경기 중에도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그는 선수단을 꾸리고 나서 1년 반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선수들을 야단치고 잔소리를 하며 진짜 '프로'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 시즌 막바지가 돼서야 선수들도 "감독님이 왜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탈리아·터키리그 등에서 활약한 '우크라이나 공주' 알레시아 리귤릭도 처음에는 엄청난 훈련량에 놀라 꾀를 부리기도 하고 경기 중 개인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해치기도 했지만 이 감독 밑에서 두 시즌을 뛰면서 싹 달라졌다.

알레시아의 어머니조차 고집이 센 딸이 이 감독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모습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아했다고 한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감독은 부임 후 "창단팀 사령탑은 명예로운 자리다", "나는 스타 감독과는 다르다",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보람이 있다"는 말을 종종 해왔다.

이 감독은 IBK기업은행과 보낸 지난 2년여를 '신혼 생활'에 비유한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하나 둘 가구를 채워가며 살림을 꾸려가는 신혼부부처럼 그동안 조금씩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 왔다는 것이다.

창단 2년 만에 리그 최강으로 우뚝 섰지만 이 감독이 IBK기업은행과 함께 앞으로 더 채워나갈 것이 무엇인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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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역 자처한 이정철, 우승 감독으로 우뚝!
    • 입력 2013-03-29 21:15:44
    • 수정2013-03-30 08:00:22
    연합뉴스
IBK기업은행을 창단 2년 만에 한국여자배구 통합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은 이정철(53) 감독은 그동안 선수나 지도자로서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고교 1학년 때 배구를 시작해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0년대 금성사배구단(LIG손해보험의 전신)에서 센터와 라이트로 뛴 그는 국가대표로 발탁된 적 한 번 없을 만큼 평범한 선수였다.

은퇴 후에는 금성사배구단 프런트로 근무하기도 했다.

여자배구와의 인연은 1992년 효성 여자 실업배구단 코치를 맡아 코트로 복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여자 실업배구의 강호로 꼽히던 호남정유와 현대건설 코치를 거치면서 우승도 경험하는 등 나름대로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지도자 수업을 쌓아갔다.

흥국생명 감독(2001∼2003년)으로 처음 사령탑에 올랐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이어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때에는 여자대표팀 코치를 맡는 등 여자배구 발전을 위해 한 길을 걸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주전들의 줄부상 등 악재가 겹쳐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한국여자배구가 올림픽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로는 처음이어서 당시 이 감독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감독은 이후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경기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1년 8월 여자프로배구 '제6구단'으로 공식 창단한 IBK기업은행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돼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프로배구 감독은 처음이었다.

IBK기업은행은 데뷔 무대였던 2011-2012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다가 6개 팀 가운데 3위 현대건설에 고작 승점 1이 뒤진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8월 열린 컵대회에서는 GS칼텍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도 이번 시즌 개막 전에 IBK기업은행을 '복병' 정도로나 봤지 우승 후보로까지 꼽은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IBK기업은행은 막내답지 않은 다부진 실력으로 독주 체제를 굳히더니 결국 국내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처음으로 창단 2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통합챔피언까지 이뤄냈다.

이 감독에게 우승은 사령탑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맨땅'에서 시작한 신생 구단이 두 해 만에 리그를 평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감독의 혹독한 조련이 단단히 한몫했다.

그는 감독이라는 위치에서는 영원히 '코트의 악역'을 할 수밖에 없다고 늘 강조했다.

창단 첫해 김희진과 박정아 등 차세대 스타로 꼽히는 유망주가 여러 명 들어왔지만 IBK기업은행의 전력이나 분위기는 모래알과 같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감독은 "많은 선수가 기본기도 갖춰지지 않아 정말 막막하고 한숨이 나오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방법은 훈련뿐이었다. 이 감독은 오후 훈련만 5시간 가까이 진행하는 때도 있을 만큼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경기 중에도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그는 선수단을 꾸리고 나서 1년 반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선수들을 야단치고 잔소리를 하며 진짜 '프로'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 시즌 막바지가 돼서야 선수들도 "감독님이 왜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탈리아·터키리그 등에서 활약한 '우크라이나 공주' 알레시아 리귤릭도 처음에는 엄청난 훈련량에 놀라 꾀를 부리기도 하고 경기 중 개인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해치기도 했지만 이 감독 밑에서 두 시즌을 뛰면서 싹 달라졌다.

알레시아의 어머니조차 고집이 센 딸이 이 감독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모습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아했다고 한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감독은 부임 후 "창단팀 사령탑은 명예로운 자리다", "나는 스타 감독과는 다르다",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보람이 있다"는 말을 종종 해왔다.

이 감독은 IBK기업은행과 보낸 지난 2년여를 '신혼 생활'에 비유한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하나 둘 가구를 채워가며 살림을 꾸려가는 신혼부부처럼 그동안 조금씩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 왔다는 것이다.

창단 2년 만에 리그 최강으로 우뚝 섰지만 이 감독이 IBK기업은행과 함께 앞으로 더 채워나갈 것이 무엇인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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