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사격심판 이은철 “후배 메달 많이 땄으면”
입력 2013.04.05 (14:37) 수정 2013.04.05 (15:08) 연합뉴스
"제가 심판으로 있는 동안 후배들이 메달 많이 땄으면 좋겠어요."

국제 심판으로 변신한 왕년의 사격 스타 이은철(46)에게 바람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5일 국제사격연맹(ISSF) 창원월드컵 여자 10m 공기소총 경기가 열리는 경남 창원국제종합사격장에서 이은철을 만났다.

사대에 선 모습이 익숙하던 그는 이제 선수들 뒤에서 빨간색 심판복을 입고 서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소구경소총복사 금메달을 따낸 이은철은 2년 전 소총 국제 심판 자격을 땄다. 회사 생활과 병행하느라 심판을 보지 못하다가 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심판으로 나서게 됐다.

이은철은 1980∼1990년대 한국 소총의 간판이었다. 그는 1984년 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올림픽에만 5번 나갔다.

그러나 긴 현역 생활은 그에게 독이었다. 열정이 모두 식을 때까지 타의에 밀려 선수 생활을 한 탓에 은퇴할 때쯤엔 총을 보고 싶지도 않은 정도가 됐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한 그에게 계속 대표팀으로 뛰라는 압박 아닌 압박이 있어 꾸역꾸역 국제 대회를 뛴 탓이었다.

2000년 은퇴하고서 이은철은 작심하고 사격과 담을 쌓았다. 전공인 컴퓨터공학을 살려 통신 장비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오랜 기간 사격과 거리를 둔 생활을 하다 보니 오히려 다시 사격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이은철은 "사격이 내 고향이지 않느냐"며 "다시 열정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심판을 택한 것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불리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는 선수로서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이은철은 "선수들이 심판을 보면 경찰을 보는 느낌"이라며 "뭔가 잘못하지 않아도 괜히 찔리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선수 출신이라 선수 처지에서 좀 더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까 경기에서도 우리나라 선수가 사대에서 쏠 때 다른 심판이 규정 위반이 아니냐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규정 위반은 아니었다"며 "해석의 이견이 있을 수 있어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심판끼리 상의한 끝에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심판 이전에 선배 대표팀 선수로서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보면서 후배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는 "예전에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 뛰었다면 요즘은 개인을 위해서 뛰면서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보인다"며 "진종오(KT), 김장미(부산시청) 등 천재들이 많이 나와서 기쁘다"고 웃었다.

그러나 그를 끝으로 끊긴 소총 금맥에 대해서는 미안함도 남는다.

그는 "후배들에게 전수를 잘 해야 했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아서 제대로 못 해줬다"며 "은퇴하고서는 너무 지쳐서 열정적으로 가르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을 앞으로 심판 활동을 하면서 만회할 생각이다. 대한사격연맹 이사로서 앞으로 사격에 관한 업무도 더욱 많이 볼 계획이다.

사격 업무 때문에 회사를 비울 날이 늘어나자 그는 자신이 이끄는 회사 직원을 더 고용해 여유를 늘리기도 했다.

심판으로서의 목표는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 나가려면 적어도 국제 대회 3개 이상은 뛰어야 한다.

이은철은 "올해 대회에 더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내년 아시안 게임은 어렵겠지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꼭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60∼70대가 될 때까지 계속 심판을 볼 것"이라며 "내가 심판으로 있는 동안 후배들이 메달을 많이 땄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 사격심판 이은철 “후배 메달 많이 땄으면”
    • 입력 2013-04-05 14:37:03
    • 수정2013-04-05 15:08:53
    연합뉴스
"제가 심판으로 있는 동안 후배들이 메달 많이 땄으면 좋겠어요."

국제 심판으로 변신한 왕년의 사격 스타 이은철(46)에게 바람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5일 국제사격연맹(ISSF) 창원월드컵 여자 10m 공기소총 경기가 열리는 경남 창원국제종합사격장에서 이은철을 만났다.

사대에 선 모습이 익숙하던 그는 이제 선수들 뒤에서 빨간색 심판복을 입고 서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소구경소총복사 금메달을 따낸 이은철은 2년 전 소총 국제 심판 자격을 땄다. 회사 생활과 병행하느라 심판을 보지 못하다가 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심판으로 나서게 됐다.

이은철은 1980∼1990년대 한국 소총의 간판이었다. 그는 1984년 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올림픽에만 5번 나갔다.

그러나 긴 현역 생활은 그에게 독이었다. 열정이 모두 식을 때까지 타의에 밀려 선수 생활을 한 탓에 은퇴할 때쯤엔 총을 보고 싶지도 않은 정도가 됐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한 그에게 계속 대표팀으로 뛰라는 압박 아닌 압박이 있어 꾸역꾸역 국제 대회를 뛴 탓이었다.

2000년 은퇴하고서 이은철은 작심하고 사격과 담을 쌓았다. 전공인 컴퓨터공학을 살려 통신 장비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오랜 기간 사격과 거리를 둔 생활을 하다 보니 오히려 다시 사격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이은철은 "사격이 내 고향이지 않느냐"며 "다시 열정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심판을 택한 것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불리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는 선수로서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이은철은 "선수들이 심판을 보면 경찰을 보는 느낌"이라며 "뭔가 잘못하지 않아도 괜히 찔리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선수 출신이라 선수 처지에서 좀 더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까 경기에서도 우리나라 선수가 사대에서 쏠 때 다른 심판이 규정 위반이 아니냐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규정 위반은 아니었다"며 "해석의 이견이 있을 수 있어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심판끼리 상의한 끝에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심판 이전에 선배 대표팀 선수로서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보면서 후배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는 "예전에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 뛰었다면 요즘은 개인을 위해서 뛰면서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보인다"며 "진종오(KT), 김장미(부산시청) 등 천재들이 많이 나와서 기쁘다"고 웃었다.

그러나 그를 끝으로 끊긴 소총 금맥에 대해서는 미안함도 남는다.

그는 "후배들에게 전수를 잘 해야 했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아서 제대로 못 해줬다"며 "은퇴하고서는 너무 지쳐서 열정적으로 가르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을 앞으로 심판 활동을 하면서 만회할 생각이다. 대한사격연맹 이사로서 앞으로 사격에 관한 업무도 더욱 많이 볼 계획이다.

사격 업무 때문에 회사를 비울 날이 늘어나자 그는 자신이 이끄는 회사 직원을 더 고용해 여유를 늘리기도 했다.

심판으로서의 목표는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 나가려면 적어도 국제 대회 3개 이상은 뛰어야 한다.

이은철은 "올해 대회에 더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내년 아시안 게임은 어렵겠지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꼭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60∼70대가 될 때까지 계속 심판을 볼 것"이라며 "내가 심판으로 있는 동안 후배들이 메달을 많이 땄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