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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4 이슈] ‘철의 여인’ 잠들다
입력 2013.04.10 (00:08) 수정 2013.04.10 (11:23) 글로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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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혹시 티나라는 말을 아십니까?

TINA(티아이엔에이), There Is No Alternative 의 첫 글자를 딴 건데요.

우리 말로 옮기면 "이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켜나간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일컫는 말 가운데 하나인데요.

영국은 물론 세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대처 여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철의 여인' 대처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국제부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철의 여인'도 결국 인간의 숙명을 피하지는 못했군요...

<답변> 네, 오래 전부터 앓아온 뇌졸중이 사인이었습니다.

나이는 87살이고요, 영국 총리에서 물러난 지 23년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고인이 국장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국장은 아니지만 고인의 명성에 걸맞게 국장에 준하는 장례식이 치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장례식이 치러지면 고인의 유해는 런던 교외에서 화장돼 평생 반려자인 남편 묘 옆에 묻히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질문> 세상을 떠나면 고인의 무게가 드러나는 걸까요... 영국은 물론 세계에서 애도 표명이 잇따르고 있죠?

<답변> 그렇습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고인의 자택 앞에는 시민들이 찾아와 꽃을 바치고 간단한 글귀를 적으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위대한 자유의 투사를 잃었다."며 애도의 뜻을 밝힌 것을 비롯해 세계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잇따라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녹취> 푸틴(러시아 대통령)

그런데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영국과 북아일랜드 등에서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샴페인을 터트리며 춤추고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게리 아담스(아일랜드 민족정당 지도자)

극악무도한 독재자가 사망한 게 아닌 이상, 지도자가 죽었을 때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쁨을 나타내는 건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디든 좀처럼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애도와 환영, 정반대의 반응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린 고인의 삶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앵커 멘트>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건 그녀가 밀어부쳐 이룩한 획기적인 변화를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보기 때문이겠죠.

이와 관련된 얘기는 잠시 후 자세히 하기로 하고... 대처 전총리의 정치 이력을 간단히 정리해드리면, 1925년 식료품상의 딸로 태어나서 1959년 보수당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이어 1975년 영국 최초로 보수당 여성 당수로 선출됐고, 1979년 영국 최초 여성 총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총리를 3연임한 후 1990년 사임했습니다.

<질문> 연설 내용이 참 인상적이네요.. 영국에 총리가 여러 명 있었지만 대처의 위상에 비할 수 있는 사람은 처칠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가 이룬 변화...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답변> 대처 전총리가 이룬 변화는 영국이라는 한 나라 차원을 넘어 범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대처 이전에는 복지국가 이념이 지배적이었다면, 대처 이후에는 경쟁과 효율을 지고의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 국가 이념으로 바뀐 것이죠.

대처는, 국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자율을 중시했기 때문에, 각종 규제를 완화했고요, 복지지출을 비롯한 재정 지출을 감축했습니다.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공기업을 대거 민영화해 시장에 넘겼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1984년 영국의 강력한 노동조합인 탄광노조의 1년여 파업을 제압한 일은 그녀의 신념과 뚝심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습니다.

대처가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공조해 추진한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후 세계의 주류 이념으로 확산됐고요,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죠.

대처리즘이라고 불린 이런 일련의 개혁을 통해 영국은, 고비용.저효율을 특징으로 한 소위 영국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힘이 커지면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는 법입니다.

빈부 격차는 커졌고 고용의 안정성은 더 크게 떨어졌습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의 질도 하락했습니다.

또한 이후 금융자본 중심으로 경제질서가 재편되면서 전지구적 규모로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앞서 노조 파업에 대한 대처 전총리의 강경 대응에서도 드러나지만, 단호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가 있죠?

<답변> 그렇습니다.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투쟁은 영국으로서는 오랜 골칫거린데요.

아일랜드공화국군이라는 단체는 북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입니다.

1981년 이 무장단체 지도자와 단원들이 수감돼 있었는데 이들이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단식이 계속되면서 9명이 숨졌지만, 이 때도 대처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르헨티나와 영유권 분쟁을 겪던 포클랜드와 관련해서도, 1982년 시종일관 비타협적 태도로 임하면서 전쟁을 수행했고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호함이 결국 그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유럽연합에 영국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참여할 것이며, 유럽연합의 미래는 어때야 하는지를 놓고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다가, 보수당내 반발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것이죠.

더욱 복잡해지고 변화무쌍한 21세기에 원리주의자같은 대처의 단호한 리더십이 여전히 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 공과가 있겠지만 신념과 확신의 리더십으로 영국을 확 바꿔놓은 지도자여서일까요. 대처를 롤모델로 삼는 지도자들이 꽤 있죠?

<답변> 네, 주로 여성 지도자들이 대처를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지도자상으로 삼곤 하는데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대표적이고요, 미국의 클린턴 전 국무장관, 오스트레일리아의 길라드 총리가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처 전총리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건 잘 알려져 있죠.

<질문> 대처 전총리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얘기할 때, 냉전 종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죠?

<답변> 물론입니다.

대처 전총리가 동유럽 민주화 도미노나 소련 연방 해체, 그리고 냉전 종식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건 아닙니다.

대처는 옛소련의 정책을 비판한 연설을 1970년대 했는데요.

이것이 계기가 돼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만큼 공산주의 체제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중요한 시기에 레이건 미국 대통령, 콜 독일 총리와 공조해 옛소련의 개혁 지도자 고르바초프를 지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냉전 종식의 초석을 닦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세계를 신자유주의 체제로 변화시켰고,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것만 갖고도, 대처는, 평가와 공과를 떠나, 1980년 이후의 세계사를 쓴 지도자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 [G24 이슈] ‘철의 여인’ 잠들다
    • 입력 2013-04-10 07:08:36
    • 수정2013-04-10 11:23:16
    글로벌24
<앵커 멘트>

혹시 티나라는 말을 아십니까?

TINA(티아이엔에이), There Is No Alternative 의 첫 글자를 딴 건데요.

우리 말로 옮기면 "이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켜나간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일컫는 말 가운데 하나인데요.

영국은 물론 세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대처 여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철의 여인' 대처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국제부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철의 여인'도 결국 인간의 숙명을 피하지는 못했군요...

<답변> 네, 오래 전부터 앓아온 뇌졸중이 사인이었습니다.

나이는 87살이고요, 영국 총리에서 물러난 지 23년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고인이 국장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국장은 아니지만 고인의 명성에 걸맞게 국장에 준하는 장례식이 치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장례식이 치러지면 고인의 유해는 런던 교외에서 화장돼 평생 반려자인 남편 묘 옆에 묻히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질문> 세상을 떠나면 고인의 무게가 드러나는 걸까요... 영국은 물론 세계에서 애도 표명이 잇따르고 있죠?

<답변> 그렇습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고인의 자택 앞에는 시민들이 찾아와 꽃을 바치고 간단한 글귀를 적으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위대한 자유의 투사를 잃었다."며 애도의 뜻을 밝힌 것을 비롯해 세계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잇따라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녹취> 푸틴(러시아 대통령)

그런데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영국과 북아일랜드 등에서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샴페인을 터트리며 춤추고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게리 아담스(아일랜드 민족정당 지도자)

극악무도한 독재자가 사망한 게 아닌 이상, 지도자가 죽었을 때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쁨을 나타내는 건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디든 좀처럼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애도와 환영, 정반대의 반응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린 고인의 삶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앵커 멘트>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건 그녀가 밀어부쳐 이룩한 획기적인 변화를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보기 때문이겠죠.

이와 관련된 얘기는 잠시 후 자세히 하기로 하고... 대처 전총리의 정치 이력을 간단히 정리해드리면, 1925년 식료품상의 딸로 태어나서 1959년 보수당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이어 1975년 영국 최초로 보수당 여성 당수로 선출됐고, 1979년 영국 최초 여성 총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총리를 3연임한 후 1990년 사임했습니다.

<질문> 연설 내용이 참 인상적이네요.. 영국에 총리가 여러 명 있었지만 대처의 위상에 비할 수 있는 사람은 처칠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가 이룬 변화...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답변> 대처 전총리가 이룬 변화는 영국이라는 한 나라 차원을 넘어 범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대처 이전에는 복지국가 이념이 지배적이었다면, 대처 이후에는 경쟁과 효율을 지고의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 국가 이념으로 바뀐 것이죠.

대처는, 국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자율을 중시했기 때문에, 각종 규제를 완화했고요, 복지지출을 비롯한 재정 지출을 감축했습니다.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공기업을 대거 민영화해 시장에 넘겼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1984년 영국의 강력한 노동조합인 탄광노조의 1년여 파업을 제압한 일은 그녀의 신념과 뚝심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습니다.

대처가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공조해 추진한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후 세계의 주류 이념으로 확산됐고요,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죠.

대처리즘이라고 불린 이런 일련의 개혁을 통해 영국은, 고비용.저효율을 특징으로 한 소위 영국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힘이 커지면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는 법입니다.

빈부 격차는 커졌고 고용의 안정성은 더 크게 떨어졌습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의 질도 하락했습니다.

또한 이후 금융자본 중심으로 경제질서가 재편되면서 전지구적 규모로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앞서 노조 파업에 대한 대처 전총리의 강경 대응에서도 드러나지만, 단호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가 있죠?

<답변> 그렇습니다.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투쟁은 영국으로서는 오랜 골칫거린데요.

아일랜드공화국군이라는 단체는 북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입니다.

1981년 이 무장단체 지도자와 단원들이 수감돼 있었는데 이들이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단식이 계속되면서 9명이 숨졌지만, 이 때도 대처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르헨티나와 영유권 분쟁을 겪던 포클랜드와 관련해서도, 1982년 시종일관 비타협적 태도로 임하면서 전쟁을 수행했고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호함이 결국 그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유럽연합에 영국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참여할 것이며, 유럽연합의 미래는 어때야 하는지를 놓고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다가, 보수당내 반발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것이죠.

더욱 복잡해지고 변화무쌍한 21세기에 원리주의자같은 대처의 단호한 리더십이 여전히 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 공과가 있겠지만 신념과 확신의 리더십으로 영국을 확 바꿔놓은 지도자여서일까요. 대처를 롤모델로 삼는 지도자들이 꽤 있죠?

<답변> 네, 주로 여성 지도자들이 대처를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지도자상으로 삼곤 하는데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대표적이고요, 미국의 클린턴 전 국무장관, 오스트레일리아의 길라드 총리가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처 전총리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건 잘 알려져 있죠.

<질문> 대처 전총리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얘기할 때, 냉전 종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죠?

<답변> 물론입니다.

대처 전총리가 동유럽 민주화 도미노나 소련 연방 해체, 그리고 냉전 종식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건 아닙니다.

대처는 옛소련의 정책을 비판한 연설을 1970년대 했는데요.

이것이 계기가 돼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만큼 공산주의 체제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중요한 시기에 레이건 미국 대통령, 콜 독일 총리와 공조해 옛소련의 개혁 지도자 고르바초프를 지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냉전 종식의 초석을 닦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세계를 신자유주의 체제로 변화시켰고,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것만 갖고도, 대처는, 평가와 공과를 떠나, 1980년 이후의 세계사를 쓴 지도자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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